▲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관. 경상일보 자료사진
▲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관. 경상일보 자료사진

아랫목은 식당되고 윗목은 뒷간이라
물통을 책상하여 책으로 벗 삼으니
봄바람 가을 비 소리 창 밖으로 지나다

벽력같은 기상 호령 놀라와 일어나니
네 벽만 둘러 있고 말동무 하나 없다
외로운 독방 고생은 새벽마다 새롭네

 

시조에 담아낸 외솔 선생의 문화적 소회

한분옥 시조시인
한분옥 시조시인

어느 시대에서나 선각자는 있다. 시대를 짊어지고 나갈 선각자를 그 시대, 그 사회가 요구하게 되고 그 시대를 이끌고 나갈 시대의 영웅은 태어난다.

울산에서도 지금의 서동 외솔기념관 바로 위에 있는 외솔생가에서 1894년(고종31) 외솔 최현배 선생이 태어났다. 갑오경장이 일어난 해로 폐쇄적인 조선사회의 새로운 여명기였으니, 외솔 선생의 개척적이고, 혁명적인 일생이 우연은 아니다.

이 시조는 외솔 선생이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함흥형무소에서 쓴 옥중 시조다. “몸은 비록 옥중에서 죽어 없어질지라도, 한글의 가로글씨만은 세상에 남기어 뒷자손에게 전하고자. … 우리 민족이 해방되어 나 개인도 옥에서 석방되어 죽지 않고 가로글씨를 가지고 이 세상에 나왔다. 나의 여생은 덤으로 사는 게라, 이 덤살이를 마칠 때까지, 나는 한글 가로쓰기를 외치고자 한다” 이후 미군정청 학무국에서 한글 가로글씨를 가결로 이끌어 내시고 이로 말미암아 한글은 가로쓰기 시대를 열어 타자기에 올려지고 현대판 컴퓨터에 장착돼 한글로부터의 한류문화, 문화혁명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이어 외솔 선생의 손자인 최홍식(세종대왕 기념사업회 이사장) 연세대 이비인후과 명예교수는 ‘훈민정음 음성학: 초성, 종성(닿소리) 제자해에 대한 음성언어의학적 고찰’이란 명제로 영상의학과 교수들과 연합해 닿소리 형성의 구개구조 분석 영상 촬영으로 한글의 창제원리를 과학적으로 분석, 증명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한글학자이시고 독립운동가인 외솔 선생은 자신의 문학적 소회를 담을 때는 민족의 시(詩)인 시조라는 그릇에 채워줬다는 사실, 또한 의미심장하다.    한분옥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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