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잃지않은 봄, 또 다른 봄

설성제 수필가

입춘 지나고 우수도 지난 봄이다. 말만 들어도 부드럽고 향기롭고 따사로운 계절이다. 그런데 우리는 봄을 잃어버린 것 같이 생각하고 산다. 황사에 뺏긴 봄, 삭막한 세상에 뺏긴 희망. 작년이나 올해나, 겨울이나 봄이나 무에 달라질 것이 있냐고 살아온 경험들이 칭얼거려대는 날들을 걷지도 못하고 치달려간다. 차갑게만 변해감으로 마음에 꽃을 피우지 못하는 병든 시대를 산다고 아예 치부해버린 이 즈음 <또 다른 봄을 기다리며>(에디아)의 울산 작가 진영식의 산문집을 펼친다.

실로, 봄을 잃은 독자들이여! 아니 희망을 잃고 하루하루 하루살이처럼 살아가는 독자들이 있다면 우리에겐 또 다른 봄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난(蘭)은 자신의 생명이 끝나는 줄 알 때 꽃(향)을 피운다고 한다. 작가는 세상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자신의 생태에 혼신을 다하고 있다고 사유한다. 이것이 바로 또 다른 생명의 시작 아닌가. 생명이 있음에도 죽음같이 살아가는 지금의 봄이 아니라, 죽음 같은 지금이 바로 다시 시작할 또 다른 봄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봄을 기다리는 작가는 교계에서 은퇴를 한 나이이지만 글 속에 나타난 그의 생 자체가 봄이다. 늦봄이 아닌 봄의 절정을 유지하는 힘을 보여준다. 그것은 자연 사랑으로 나타난다. 그의 눈길 닿는 것마다 애잔한 마음의 불이 임하여 생명으로 돋움한다. 어쩌면 이리 꺼지지 않는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자연을 사랑할 수 있는지. 산문(散文) 절절마다 봄빛이 스며있다.

이 뿐이 아니다. 그의 가족사랑, 이웃사랑, 나라사랑, 먼 나라사랑도 말이 아닌 삶으로 피어나 있다. 언뜻 보면 외로움의 주자 같지만 엄살이다. 그는 사랑 없이는 못 산다고 늘 귓속말하듯 말하고 있다. 뒤에서 옆에서 앞에서 대놓고 사랑한다고 말함으로 그냥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져온다. 잃어버린 사랑을 또 다른 사랑으로 회복되게 하는 군불 같은 문체를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 잃어버린 봄이 또 다른 봄으로 피어난다고 봄빛으로 내려오는 책이다.

설성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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