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류주 고량주·배갈을 바이주라 하며
40~60도로 알코올도수가 센 중국술로
13억 인구 입맛 맞춘 수천수만종 생산

▲ 정일근 경남대 석좌교수 UMFF 집행위원

어느 해인가 ‘경상일보’와 함께 북해도를 포함한 일본 동북 지역 문학관을 취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북해도 시내 큰 서점에서 홋카이도를 소개한 여행안내 책자를 구했는데, 책 제목이 ‘북해도, 남자의 길’이었습니다. 저는 북해도를 둘러싼 거친 바다와 험난한 지형, 눈과 바람이 많은 기후 등을 볼 때 ‘남자의 길’이란 비유가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제가 할 이야기의 주제인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의 술, 전통 바이주 역시 모두(冒頭)부터 ‘남자의 술’이란 결론을 내리고 시작합니다.

우리 세대인 베이비붐 세대는 청소년 시기에 한 번씩 경험한 일탈이 있을 것입니다. 동네 중국집에서 짜장면이나 짬뽕 국물을 안주 삼아 마신 ‘빼갈’ 한 잔의 독한 추억 말입니다. 그때 대구에서 나오던 ‘수성 고량주’와 제천의 ‘동해 고량주’ 상표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머뭇거리다가 한 잔 입안으로 탁 털어 넣으면 목젖이 타들어 가는 듯이 독했던 배갈이 있었습니다. 그 도수가 40도를 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수성 고량주는 지금까지 생산 판매되고 있고, 동해 고량주는 당시 경영난으로 진로가 인수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중국집에 가면 ‘이과두주’나 ‘옌타이고량주’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 그 시절엔 수성과 동해가 고량주 자리를 지켰습니다. 고량주(高粱酒)는 ‘수수로 만든 술’이란 뜻입니다. 증류주인 배갈이나 고량주를 중국에서 백주(白酒) 즉 바이주라 합니다.

중국은 바이주의 나라입니다. 수천 수만 종류의 바이주가 생산되는데 자신이 아무리 애주가라고 해도 평생을 마셔도 못 마신다고 합니다. 1992년 중국과 수교로 바이주 시장이 열렸습니다. 중국으로 오가며 한 병 두 병 맛본 바이주는 대단했습니다. 서양의 술과 비교해 손색이 없었습니다.

고량주의 정의는 ‘바이주의 일종으로 고랑(高粱, 수수)을 원료로 하여 만든 중국의 증류주’입니다. 그 도수가 높으면 50~60도이고 낮으면 30~40도로 강한 편입니다. 그러니 호기롭게 맥주잔으로 털어 마시다가 탈이 난 분이 많을 것입니다. 중국의 바이주 전용 잔은 우리 소주잔의 1/3이나 2/3 크기며 그것도 한 번에 마시지 않고 흔히 ‘베어 먹듯이’ 나눠 마십니다. 좀 큰 잔을 이용할 때는 물이나 음료수로 희석해 마셔야 합니다.

중국을 대표하는 바이주는 ‘마오타이’입니다. 이 술의 역사는 2000년이라 자랑하고 있습니다. 중국을 대표하는 명주이자 ‘세계 3대 명주’의 반열에까지 올라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니 가격이 비싸고 중국답게 그만큼 가짜가 판을 치는 술입니다. 2004년에 10위안이었던 이 회사 주가가 2020년 초에 1250위안으로 120배 넘게 상승했다고 합니다. 중국의 대장주로 미국의 코카콜라, 스타벅스의 시가 총액을 뛰어넘고 우리나라 삼성전자와 비슷한 규모라니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뒤를 이어 5가지 곡식으로 만든다는 ‘우량예’를 비롯해 ‘루저우라오쟈오’ ‘펀주’ ‘젠난춘’, 한국인이 좋아하는 ‘수이징팡’ 등 중국 정부가 인정한 중국 명주가 상위권을 지키고 있습니다. 중국은 공산국가입니다. 그러다 보니 중국 인민을 위해 싼값의 명주를 장려하고 있습니다. 좋은 술은 비싸다는 등식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3억 인구의 입맛과 주머니 사정에 맞는 바이주가 즐비합니다.

최근 중국을 대표하는 3대 명주에 마오타이, 우량예에 이어 ‘멍쯔란’(夢之藍)이 3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시진핑이 좋아하는 술’이란 입소문과 함께 한국, 일본의 젊은이까지 즐겨 마신다고 합니다. 저도 시음을 해 봤는데, 알코올도수 52도인데 입안에서 향기롭고, 목을 넘어갈 때 부드럽고 그 향기의 여운이 오래 남았습니다.

전통 바이주에 대해 저는 ‘불같이 취하고 얼음처럼 깬다.’라는 비유를 즐겨 사용합니다. 앞에서 ‘남자의 술’이란 정의를 미리 내렸듯이 남자가 쓰는 ‘!’(느낌표)로 시작해서 ‘.’(마침표)로 끝나는 ‘굵고 짧은 문장’같은 술입니다. 우리 술을 두고 사대(事大)하는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좋은 바이주를 만나면 늘 그렇듯, 우리에게는 왜 이런 술이 없는가, 라는 아쉬움이 크기 때문입니다.

정일근 경남대 석좌교수 UMFF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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