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취업 어려움과 급여공백으로
퇴직이후 곤란 겪는 장애인 위해
연금 수령 앞당길 제도적 보완을

▲ 이준희 미국변호사

30년 전 대학생이던 갑은 불의의 사고를 당해 양 눈의 시력을 잃는 영구 장애를 얻었다. 한동안 실의와 좌절에 괴로워하던 갑은,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힘을 얻고 마음을 돌이켜 시각장애인으로서의 삶을 받아들였다. 이후 갑은 맹학교에 진학하였고, 이어서 사범대 특수교육과에서 교육과정을 이수한 뒤 고향에 있는 사립 특수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며 자신과 같은 장애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사회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직업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올해로 만 53세, 사립학교 교원으로 재직한 지 22년이 되는 갑은 최근 일신상의 사유로 퇴직을 고민하고 있다. 결심을 주저하게 하는 가장 큰 현실적인 어려움은 자신과 가족의 생계유지에 필요한 고정적 근로소득이 없어진다는 것. 50대의 나이로 20년 넘게 일했던 직장을 떠나 새로운 일자리를 얻는 일은 정안인(正眼人)에게도 어려운 일이나 시각장애인인 갑에게는 그 벽이 더 높아진다. 교원에서 퇴직할 경우 사학연금법상 퇴직연금이 그 대안이 될 수 있으나, 퇴직연금은 2024년 퇴직 시 62세가 되어야 지급이 개시되고, 수령 시점을 앞당기기 위해 지급률이 줄어드는 패널티를 감수하는 조건으로 조기 수령을 선택할 수도 있으나, 이렇게 해서 수령 시점을 앞당길 수 있는 한도는 최대 5년이므로, 결국 갑으로서는 재취업을 하지 않는 이상 상당 기간 급여 공백을 감내해야 하는 문제를 안게 되었다.

이후 백방으로 해결책을 찾던 갑은, 장해 상태를 이유로 퇴직연금 지급개시시점을 퇴직 시로 앞당기는 관련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자신이 그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는지 변호사 을에게 자문을 구했다. 을은 관련 법조와 제도 운영 관련 실무 자료들을 조회해, 사학연금법과 연금준용법에 따라 공무원연금법상 장해 상태가 되어 퇴직하거나 퇴직 후 연금 지급개시연령에 도달하기 전에 장해 상태가 된 경우 급여 사유 발생 다음 달부터 연금 지급 개시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 제도는 비공무상 재해급여로서 재직 중 또는 퇴직 후 장해 상태가 된 때를 지급 요건으로 하고 있어, 갑과 같이 해당 장애를 이미 가진 상태에서 교원 또는 공무원으로 임용된 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의뢰인을 위해 장해 상태 요건의 확대 적용 사례가 있는지 확인하고자 을은 유관 부처인 인사혁신처 연금복지과에 문의했으나, 관련 선례가 없을 뿐 아니라 해당 제도를 임용 전 장애에까지 적용하는 것은 법령해석의 문언적 한계를 벗어나는 것으로서 불가하다는 회신을 받았다. 을은 자문 결과를 의뢰인에게 알려주면서, 제도의 취지를 고려하더라도 갑의 사례가 달리 취급되어야 할 이유가 없으며 임용 전 장애도 퇴직연금 즉시 지급 개시 요건인 장해 상태에 포함하는 보완 입법이 필요함을 절감하게 되었다.

우리 정부는 2008년부터 중증장애인에 대한 국가공무원 경력 채용을 시작해 지난해까지 총 442명을 선발했다. 지방공무원의 경우 서울시와 수원시가 경력 채용을 시행한 바 있으나, 울산시의 경우 아직은 임용 사례가 없다. 만일 위 제도를 통해 임용되어 현재 재직 중인 이들이 갑과 같은 결정을 하게 될 경우 장애로 인한 재취업의 기회 제한과 함께 장기간의 급여 공백이라는 이중의 어려움을 겪는 것을 피하기 어렵게 될 것이나, 이를 관련 입법에 반영하기에는 사례도, 필요성에 대한 인식도 부족해 보인다. 소수중의 소수인 이들 중증장애인 교원, 공무원들의 생계를 고려한 제도 개선은 사치인 걸까.

교원연금제도를 운영하는 국가들은 대부분 비공무상 재해급여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각 주별로 교원퇴직시스템(TRS) 안에 재해급여(disability retirement benefits)를, 영국의 경우 장해퇴직(ill-health retirement) 시 지급연령(normal pension age) 전에도 연금을 수령할 수 있도록 해 가입자인 교원들을 두텁게 보호한다. 이 경우 지급요건으로서의 장애는 업무수행이 불가능한 정도로 영구적이어야 하고 퇴직의 직접 원인이어야 하나, 임용에 후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입법이 현실보다 선행하는 예방적 규율까지는 아니더라도, 제 목소리를 크게 내기 어려운 이들이 법의 공백으로 인해 겪는 생계의 곤란을 돌아보도록 관련 제도가 보완되고 운영되기를 바란다.

이준희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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