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들에게 사랑이 있다잖아.
실험을 해봤대.

그렇다면 인간에게도 사랑이 있을지 모르지.

사랑은 인류를 위협하고 통제하는 오래된 책일지 몰라.
읽어봤어?
어쩌면 삶에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다.

그 책은 공개하지 않는대. 어디 있는지 사서들도 모를걸.

나는 겹낫표처럼 생긴 귀를 움직이며
아무 의미 없는 문장을 받아 적는다.

의미없는 곳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인간의 사랑

폐가식 도서관은 도서목록에서 자료를 확인한 뒤 대출표를 작성해 책을 빌리는 도서관이다. 지금은 도서관이 대개 개가식이나 반개가식으로 운영되니, 요즘 폐가식 도서관은 고서나 희귀본 등을 소장하고 대여하는 곳이기 십상이다.

▲ 송은숙 시인
▲ 송은숙 시인

시인은 이런 폐가식 도서관에서 사랑을 찾는다. 하지만 그 태도는 꽤나 시니컬하다. 인간의 사랑은 쥐들의 사랑과 별로 다를 바 없고, 사서조차 어디 있는지 모르는 ‘오래된 책’ 같다는 것. 그 책은 공개되지 ‘않’는다 하였는데, 사실 공개를 ‘못’하는 것은 아닐까. 이미 존재하지 않으므로. 모르지, 몰라, 모를걸, 이란 서술어는 그 존재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킨다. 아니면, 인간에게 사랑이란 그 이름하에 ‘인류를 위협하고 통제’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얼마나 많은 전쟁과 참화를 보아왔던가.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겹낫표처럼 생긴 귀’를 움직인다고 하였다. 겹낫표는 책의 제목을 표현하는 문장부호니, 찾지 못했던 책, 곧 사랑은 메테르 링크의 파랑새처럼 우리 가까이 있다는 말? 그러나 시인이 듣는 것은 그저 ‘의미 없는 문장’이다.

아, 인간은 의미 없는 곳에서 의미를 찾는 존재이고, 우리는 그걸 사랑이라고 해두자. 송은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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