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가 구름의 뿌리를 파고 이곳을 만들었던가?/ 한 가닥 샘 줄기는 유리처럼 쏟아지네./이 마음 그래도 맑고 깨끗함을 마시노니, 백이숙제의 고상함이 이곳에 숨었네."(수오 서석린의 "화장굴 염천", 언양읍지(1916))
 중국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 주왕을 쳐 주왕조를 세우자 무왕의 행위가 인의에 위배되는 것이어서 주나라 녹을 먹기 부끄럽다며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으며 살다 갔다는 백이숙제의 청절이 숨었다는 곳, 화장산은 은자의 삶과 오누이의 혼을 담고 있는 공간이다.
 울주군 언양읍과 상북면 향산리에 걸쳐 있는 화장산은 백이숙제의 청절 뿐만 아니라 오누이의 죽은 혼이 도화로 환생해 피어났다는 전설과 그 도화를 먹은 신라시대 어느 왕(혹은 왕후, 공주라는 설도 있다.)이 무슨 병인지도 모르는 병을 고쳤다는 전설을 갖고 있는 산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름이 "꽃 화"자와 "감출 장"자를 써서 화장산(花藏山·꽃을 감추고 있는 산)이다. 또 어떤 전설에는 도화 대신 "도화"란 이름의 비구니가 왕의 병을 낫게 했다고도 전해진다.
 7월 지리한 장마속에 전설 속의 도화가 있을리 없지만 열매라도 만날까 기대에 부풀어 울주군 언양성당에서 화장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랐다. 어쩌면 설화의 주인공이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같은 짙은 녹음이 현실을 애써 외면하게 만든다.
 느린 걸음으로 20분~30분 남짓 유난히 키가 큰 소나무를 지나 아직도 연둣빛을 간직하고 있는 대숲을 지나 화장산의 굴암사에 다다랐다.
 백약이 무효한 병에 걸린 신라시대 어느 왕(21대 소지왕이란 설이 있다)의 명을 받아 겨울에 도화를 찾으러 왔다는 사자가 이상한 기운에 이끌려 이곳 큰 바위굴(굴암사) 앞 양지바른 곳에 올랐을 때 두 그루의 도화나무에 도화가 곱게 펴 있었다고 한다. 한 겨울의 도화라니, 뛸 듯이 기뻐한 사자가 화장산에서 꺾어간 도화는 당연히 임금의 병을 씻은 듯이 낫게 했다.
 그 때 사자가 너무 기뻐한 나머지 도화를 꺾을 때 떨어뜨린 두 송이의 도화에서 오누이의 혼이 나와 오빠의 정령은 대나무가 되고, 누이의 혼은 소나무가 돼 만고에 푸르렀다는 전설은 화장산 일대에 유난히 소나무와 대나무가 많은 점과 딱 들어맞는다. 이 오누이의 혼은 이어 언양읍 송대리라는 지명으로 이어졌다.
 도화에서 나온 오누이의 혼은 어디서 온 것일까. 화장산 오누이에 얽힌 전설은 또다시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화장산 아래 두 남매를 둔 사냥꾼 내외가 살고 있었다. 화장산의 굴 속에는 인근 짐승을 모조리 잡아먹는 곰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곰사냥을 나간 사냥꾼 내외가 곰에게 화를 당한 줄 모르는 오누이는 기다리다 지쳐 부모를 찾아 나섰고, 엄동설한에 화장산을 헤매다 눈 속에서 가엾게 얼어 죽고 말았다. 오누이의 혼이 바위굴 앞 양지바른 곳에 한 그루씩의 도화나무로 환생했던 것이다.
 안타까운 오누이를 생각하며 고개를 돌려 산 아래를 내려다 본다. 언양읍이 한 눈에 들어온다. 오누이와 도화의 전설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벼운 복장을 한 언양 일대 사람들이 쉼없이 산을 오르내린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해발 285m의 야트막한 산이 정겹다.
 지금은 암자가 들어선 화장굴의 돌 틈에서 새어나오는 염천의 맑고 깨끗함을 수오 서석린(조선 영조때 성균진사를 지낸 학자)은 백이숙제의 청절에 비했다. 높지도, 낮지도 않아서 적당히 겸손한 화장산에는 또 백이숙제에 비길만한 지조와 절개가 전해진다. 바로 상북면 능산마을과 가까운 곳에 있는 "세이지(洗耳池·못)"와 지내리쪽 "소부당(巢父堂·골)"이 그것이다.
 능산마을 사람들은 신라말기 간신에 의해 외면당한 충신들이 직을 사임하고 이곳 화장산 기슭에 입향해 세이지에서 귀를 씻어 과거를 잊고, 여생을 보냈기 때문에 "세이지"란 이름이 붙었다고 전했다.
 또 조선후기 규장각 제학 정원용 대감이 선비 정윤택과 함께 세이지에 갔다가 옥수같은 물에 반해 세수를 하고 귀의 염증을 나았다고 해서 "세이곡"이라고도 불린다고 덧붙였다.
 "숨어 사는 은자"로 소문난 허유가 벼슬을 권하는 요임금의 권유를 거절하고 더러워진 귀를 씻는 것을 본 소부가 망아지에게 귀를 씻은 물을 먹이지 않겠다며 더 높은 곳으로 몰고 가 물을 먹였다는 "소부와 허유의 기산영수 고사"에 얽힌 이름을 포용하고 있는 화장산은 그만큼 은자의 삶을 추구하기 좋은 곳이란 의미로 다가온다. 박은정기자 musou@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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