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기록의 힘, 김홍섭 옹 일기
65년간의 일기 박물관에 기증
매일 매일의 사소한 기록들이
생활사·방언 연구 중요자료로

▲ 김홍섭 어르신이 1955년부터 2019년까지 써 오신 일기. 표지에는 ‘비망록’이라 써있다.
▲ 1958년에 쓴 일기
▲ 1958년에 쓴 일기(위)와 울산박물관에 기증한 2019년 7월31일의 감회를 담아 기록한 일기.
얼마 전 김신지 작가의 ‘기록하기로 했습니다’를 읽었다. 책장을 넘기자 뜻밖에도 몇 해 전 찍었던 사진이 실려 있었다. 울주군 두서면 인보리에 사시는 김홍섭 어르신의 일기다.

김홍섭 어르신은 지난 2019년 지금까지 써 오신 65년간의 일기를 울산박물관에 기증하셨다. 초보 학예사로서 오래된 일기를 한 장 한 장 넘겨보며 사진을 찍던 때의 설렘과 즐거움이 떠올랐다.

김홍섭 어르신은 1932년 두동면 삼정리의 하삼정 마을에서 태어나 23살 때인 1955년부터 평생 동안 일기를 쓰셨다. 그리 길지도 않은 매일매일의 날씨와 한 일들을 간단히 기록한 일기다. 장에 나가 물건을 사고, 논에 거름을 주고, 송아지가 태어난 일을 썼다. 사소해 보이는 사건들이지만 60여년의 세월을 거듭하니 울산 농촌의 현대사를 담아낸 대기록이 되었다.

‘도가리(논배미)’, ‘소깝(솔가지)’, ‘삽작문(사립문)’ 등 당시 쓰던 말을 그대로 적었으니 생활사와 방언 연구에도 소중한 자료가 된다. 영상매체에 밀려 글이 외면받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쓴 오래 묵은 기록에는 여전히 힘이 있다는 것을 일기를 보며 알게 되었다.

유물 기증 일을 하며 나이든 분들의 다양한 모습을 목도하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완고하고 강퍅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젊은 혈기가 사라진 자리에 인정과 여유를 대신 채우는 사람이 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내게는 김홍섭 어르신이 너그럽고 선한 분으로 느껴졌다.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을 성찰해 온 일이 그 분을 그런 사람으로 만들었으리라. 우리는 스스로를 어떻게 다듬으며 어떻게 나이들어 갈 것인가. 손때 묻은 작은 일기장이지만 전하는 울림은 다른 어느 보물 못지않게 컸다.

윤근영 울산대곡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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