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동에 베옷 입고 암혈(巖穴)에 눈비 맞아
구름낀 볕뉘도 쬔 적이 없건마는
서산에 해지다 하니 눈물겨워 하노라

‘매화’처럼 선비의 지조를 지켜내

▲ 한분옥 시조시인
▲ 한분옥 시조시인

봄의 전령사 매화소식이 여기저기 터진다. 가까이 자장매 소식이 엊그제 들리더니 먼 곳 지리산 아래 남명매도 봉오리를 틔웠다는 소식이 왔다.

남명매를 만나러 가는 길은 지리산 산천재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수령이 450년된 남명매가 만개하는 3월이 되면 짙은 매향에 조식 선생의 인품, 학풍의 향기를 잊지 못하는 수많은 탐매 객이 성시를 이룬다.

좌 안동, 우 함양·산청이라는 말, 퇴계선생의 문하와 남명 조식선생의 문하, 양대 산맥을 일컫는 말이다.

남명 선생은 조정에서 크고 높은 벼슬자리를 내렸으나 한 번도 받지 않았다. 추운 날에도 베옷으로 바위틈에 눈비 맞으며 햇볕은 고사하고 구름 낀 볕도 쬐어 본 적 없어도 나랏님인 해가 서산을 넘어가니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중종의 승하 소식을 듣고 읊은 시조다.

조선 성리학 영남학파의 거두이신 선생은 명리와 출세를 헌신짝 버리듯 하며 학자로서 부패한 정치를 통렬히 비판했으며 조선 선비의 책무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선생의 학문은 곧 선비정신과 실천철학의 중심 가치였다. 생의 마지막까지 오로지 처사이기를 자처하며 오로지 학문 연구와 제자 양성에 매진했다.

선생의 가르침을 실천한 제자, 임진왜란 경상도 3대 의벙장 곽재우 장군, 정인홍 장군, 김면 장군 등, 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한 50여명이 의병장으로 임진왜란의 중심에서 나라를 구했다.

요즘 정치는 어제의 주군도 오늘의 원수가 되는 현실이다. 삼국지연의가 아직도 명저로 읽히는 이유는 유비와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와 재갈량이 주군 유비와 2대 황제 유선에 대한 출사표 1, 2를 보며 사람들은 그 충정에 열광하는 것이다.

아무리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 선비의 지조를 칼같이 지킨 남명선생을 매화향기와 함께 떠올리는 삼월 초하루이다. 한분옥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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