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규 울산시의사회 회장

올해 입시부터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구체화하면서, 의대생들은 휴학계를 내고 학교를 떠나고, 전공의들은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병원을 떠났다. 의대 교수들의 겸임해제 논의와 사직행렬도 시작되고 있다. 정부는 보건의료 위기 경보를 ‘심각’ 단계로 격상해서 대응하고 있으나 남아있는 의대 교수들과 의료진들의 피로도가 임계점에 달해 의료현장은 마비 상태 일보직전이다.

긴급상황도 아닌데 정부와 의료계가 이렇게까지 강대강으로 맞서고 있는데 팩트를 중심으로 상황을 들여다보자.

문제의 발단은 가속화하고 있는 ‘필수의료 붕괴’와 ‘지역의료 붕괴’의 해법 찾기에 있어서 원인에 대한 인식 차이 때문이다. 정부는 2006년부터 현재까지 18년 동안 의대 정원이 3058명으로 동결돼 의사 수가 모자라서 필수 의료와 지역의료에 의사가 충분히 유입이 안 된다고 진단을 내리고 의대 증원을 추진하고 있지만, 의료계는 필수 의료가 업무의 강도와 스트레스가 많은 데 비해 턱없이 모자라는 저수가의 개선과 더불어, 선한 의도로 환자를 살리기 위한 의료행위를 했음에도 결과가 좋지 않을 때 민·형사상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사법리스크의 개선을 우선 요구하고 있다.

우선 우리나라 의사 수가 한 해에 2000명 증원을 해야 할 정도로 정말 부족한지, 의사 수 부족을 거론할 때 항상 인용되는 OECD 통계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OECD 국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 평균은 3.6명인데 우리나라는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5명으로 적은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하지만, OECD 통계상 외래진료의 경우, 우리나라 국민은 1년에 17.2회 진료를 보는데 OECD 국가 평균 진료 6.8회보다 2.5배 더 많은 진료를 본다. 또 OECD 평균 환자의 53%가 고관절 치환술을 받기 위해 3개월, 백내장 수술은 3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환자의 비율이 44%에 이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수술 대기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이다.

‘소아과 오픈런’도 15세 미만 소아 인구가 매년 줄어들고 있지만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늘어났다. 결국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부족한 게 아니라, 열악한 의료환경으로 인해 소아청소년과 표방을 포기하고 다른 일반과의 진료를 하고 있고, 맞벌이 부모의 증가로 출근 전에 아이를 진료받기 위해 일정 시간대에 몰려서 이런 사회적인 현상이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전반적인 OECD 통계의 의료지표들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경우 의사 수가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의사가 부족하지는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 어디에도 의대 증원에 대한 내용은 없는데, 의료 개혁이라는 미명하에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포함한 허점투성이의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를, 공권력을 동원해 밀어붙이고 있다. 왜 하필 총선을 앞둔 이 시점에, 의료계의 입장은 무시하고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서둘러야 할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저임금에 장시간의 중노동에 시달리는 전공의들의 처우개선은 뒤로하고, 잘못된 의료정책에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의업을 포기하려는 전공의들을 온갖 공권력으로 집단사직서 수리금지명령, 업무개시명령, 진료유지명령, 법정최고형, 군미필자 출국금지, 면허정지, 면허취소 등으로 운운하며 겁박하고 있다. 급기야 3개월 면허정지 시행을 위한 미복귀 전공의들의 행정처분조사를 진행하면서 전공의가 복귀할 수 있는 퇴로마저 차단하고 있다. 군사독재 시절보다 더한 후진적 정치행태를 보인다.

보건의료정책과 교육정책은 백년지대계다. 상식을 넘어서는 의대 증원으로 의료비 지출 부담, 건보재정의 악화, 이공계 교육의 대혼란으로 국가경쟁력 저하, 사교육의 급팽창 등의 부작용은 명약관화하다.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은 미래 대한민국의 의료계를 짊어질 소중한 자산이다. 정부는 의대 증원 2000명을 못 박지 말고, 그들이 왜 병원을 사직하고, 학교를 휴학하는지 정부는 당사자인 전공의, 학생들과 원점에서 허심탄회하게 대화해서 접점을 찾아야 한다. 이솝우화에서처럼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해님이다.

이창규 울산시의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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