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범죄의 피고인인 야당의 대표
수사한 검사는 여당의 총선을 지휘
검사-피고 장외전 기이한 총선구도

▲ 신면주 변호사

한국에서 총선의 대진표가 속속 완성돼 가는 순간, 미국에서는 2024 대통령 선거의 공화당 후보로 믿기지 않게도 트럼프가 확정됐다. 현직인 민주당의 바이든과 리턴 매치를 벌이게 된 것이다. 대선에서 패배한 트럼프는 자신에게 닥친 사법 리스크를 오히려 지지층 결집의 기회로 이용해 선거자금 모금에 나섰고, 미국 연방대법원은 지난 3월4일(현지시각) 트럼프에 대한 대통령 출마 자격 유지를 결정했다. 다음날 트럼프는 슈퍼화요일의 경선에서 완승해 미 공화당의 사실상 차기 대통령 선거 후보자로 결정됐다.

트럼프는 현재 의사당 난입사태와 탈세·횡령 등 각종 개인적인 추문으로 91개 항목의 모두 4개의 사건으로 기소돼 있다. 그럼에도 그는 건재하며 지지자들에게는 정치적 탄압에 맞서 싸우는 의로운 선지자로 묘사되고 있다. 미국 200년 민주주의 역사상 주요 범죄의 피고인의 대통령 당선이 유력시되는 유례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사정은 총선을 불과 한 달여 앞둔 우리의 사정도 비슷하다. 입법권을 장악하고 있는 거대 야당의 대표가 부패 혐의 등으로 기소돼 일주일에 2~3회 법정에 출석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직접 출마해 총선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야당은 지지자들은 그를 중심으로 결집하는 태세를 보인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확정되자 자녀 입시 비리로 2심에서 2년 실형을 받은 조국은 ‘조국혁신당’을 만들어 지지자를 모으고 있고, 부정선거 혐의로 1심에서 3년 선고를 받은 황운하도 여기에 합류했다. 전 야당 대표 송영길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구속된 상태에서 ‘소나무당’을 창당해 국회 진출을 노리고 있다. 야당의 총선 지도자들은 주요 범죄로 재판 중인 피고인으로 구성돼 있고, 반면에 여당의 총선 지휘자는 이들을 수사한 검사들의 세력으로 구성돼 있다. 피고인과 검사 간에 장외 법정이 벌어진 기이한 총선 구도가 됐다.

정치 지도자가 부패 등의 범죄의혹을 받거나 기소될 경우 물러나 자숙하며 사법적 문제 해소에 전력하는 것이 상식으로 여겨져 왔다. 트럼프나 한국의 야당 지도자들은 연방정부의 탄압이라거나 검찰 권력의 탄압으로 맞서고 있지만, 정치 상식을 능가할 만한 설득력은 없다. 오히려 전문가들은 민주헌법의 근간인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보는 우려의 시각이 대부분이다.

트럼프와 그 동조 세력인 미국 보수주의 연맹 등 풀뿌리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은 명백하고 간결하다. 즉 미국 우선주의, 반 이민정책, 반 낙태, 반 기후변화, 세금 동결 등의 정책을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트럼프를 통해 실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깨끗하지 못한 사생활과 저품격 캐릭터, 사법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의 여타 정치인들보다 덜 위선적이고 돌파력 있는 트럼프를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에 한국의 야당 지도자들은 사법 리스크를 상쇄할 만한 정치적 지향점이 명확하지는 않다. 검찰 독재, 검찰개혁 등을 내세우고 있으나 설득력이 많이 떨어진다. 가장 중립적이고 독립적이어야 할 검찰의 지나친 정치화는 그 자체로 개혁의 소지가 충분하지만 이를 가지고 정치인 자신의 범죄를 상쇄하고자 함은 논리의 비약일 뿐이다. 오히려 그 지지기반은 정책이나 정치적 지향점보다 강고한 지역주의 정치, 확증편향에 기반한 팬덤 정치, 적대적인 양당정치의 부작용 등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현상의 근본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양국이 권력이 1인에게 집중되는 대통령중심제를 취하고 있다는 점을 꼽고 있다. 범죄자에 대해서도 지지자가 몰리는 것은 지난 대선에 대한 불복 감정의 누적된 현상이라는 것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대통령 탄핵사태 이후 제왕적 대통령중심제의 폐해가 꾸준히 지적돼 왔다. 집중된 권력은 정치뿐 아니라 중립적이어야 할 언론, 문화·예술 나아가서는 독립적이어야 할 사법 작용에까지 영향을 미쳐 국민을 반으로 갈라놓고 있다. 민주공화국의 근간을 흔드는 이 제도의 효용성을 심각히 논의해야 할 시점에 온 것이다. 올해 선거에서 한·미 국민의 선택에 따라 밀려올 파급력을 전 세계는 주목하고 있다.

신면주 변호사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