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이 솔이라 하니 무슨 솔만 여기느냐
천심 절벽의 낙락장송 내 긔로다.
길 아래 초동의 접낫이야 걸어볼 줄 있으랴 (송이:강화 기생)

“천심절벽의 곧은 소나무 처럼…”

▲ 한분옥 시조시인
▲ 한분옥 시조시인

여자의 아름다움이 어찌 얼굴과 웃음에만 있겠는가. 여인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절개와 지조, 진정한 사랑에 있는 것을.

붉은 꽃 흰 꽃이 봄바람에 다투어 피는 계절이 다가오지만 꽃들은 하나하나 자신만이 지니는 개성을 갖고 있다. 너무도 쉽게 만나고 너무도 가볍게 헤어지는 이 시대를 함께 사는 사람으로 오히려 한 송이 꽃 앞에 부끄럽다.

이름 없는 농가의 담장 안에서도 꽃은 핀다. 이른 봄 눈 속에 피는 매화를 보면 절개 높은 여인을 생각하게 되고, 불굴의 기백을 지닌 사나이를 생각한다. 꽃이든 여인이든 절개가 높으면 사람들에게서 수이 잊혀 지지 않는 법. 정작 의리에 사는 사나이 옆에는 반드시 정절의 여인 또한 자리함이 당연한 역사의 속살이다. 천한 기녀로 살아가지만 스스로 천길 절벽위에 곧은 소나무와 같다고 자부하는 소녀가 있었다. 누구나 그를 송(松)이, 송이라 막 불러대고 하찮게 대하지만 스스로를 절벽 위의 낙락장송을 그녀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천한 신분의 기생일망정 고아한 기상과 굳센 의지를 가진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자신의 이름자 송이, 소나무에 담아 절벽 위 낙락장송을 노래한 시조다. 감히 땔나무하는 초동, 소인배의 작은 낫들이야 걸지도 범접도 못하는 소나무 ‘내 긔로다’. 라고 의연한 지조를 시조로 읊었다.

이름 없는 기생으로 살아갔지만 어찌 기생이라고 지조가 없겠느냐, 비록 어린 나이의 삶으로 인생을 맵고 칼칼하게 씻어내며 녹록치 않은 현실을 헤쳐 나갈 수 있는 가슴으로 살아 간 소녀 솔이다.

밑바닥의 깊은 고독과 적막을 관통하며 높은 절개를 간직할 줄 아는 자신만의 기상을 지닌다는 것, 그것이 귀한 인생인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하던 자신은 천심절벽의 곧은 소나무인 것이다.

이름 없는 기생 송이는 이 한편의 시조를 통해 천년을 살아, 앞으로 누천년을 지조와 절개의 이름으로 읊어질 것이다. 하여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은 것인가. 송이의 소나무 한 그루를 나의 가슴에 심는다.

한분옥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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