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종현 울산 남구 복지교육국장

주차를 하려고 이리저리 둘러보니 조금은 넓으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모양으로 표시된 공간이 있다. 바로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이다. 차량 앞면 유리창에 둥근 주차표지가 부착된 차량만 주차가 가능하고, 보행상 장애가 있는 사람이 차량에 타고 있을 때만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을 이용할 수 있다. 폭 3.3m의 넓이는 기본적으로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 휠체어 이용자를 염두에 두고 지정됐다. 휠체어가 있든 없든 보행 장애에 해당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 구역에 초대받지 않은 자가 들어간다면 어떻게 될까.

1997년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등편의법)’이 제정된 이래 주차표지 없이 장애인전용주차구역에 주차한 차량에는 과태료가 부과된다.

주차구역 앞을 가로막는 이중주차 차량도 부과 대상이다. 1면 주차위반 10만원, 2면 이상은 주차방해 50만원이다. 물건을 적재하는 경우도 주차 방해에 해당된다.

또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차량번호가 불일치한 주차표지를 사용하거나 사망한 장애인의 표지를 사용하는 등 부당한 표지를 사용한 차량은 200만원이 부과된다.

울산 남구는 사회적 약자의 편의를 증진하고 장애인전용주차구역 이용 방해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우선, 누구나 부적절한 차량을 발견했을 때 편하게 신고할 수 있다. 안전신문고 모바일 앱으로 시차 1분마다 촬영(‘불법주정차’ 탭→유형선택→장애인 전용구역 선택)된 사진 2장 이상을 담아 제출하면 된다. 신고사진은 주차구역 표시와 차량번호가 명확하게 찍혀야 한다. 남구는 신고사진을 면밀히 검토하고, 부당한 행위에 대해 판별한 뒤 차량 소유주에게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계도 공문을 발송해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한 해 남구에서 접수된 신고만 5274건에 달했다. 남구민의 협조가 큰 도움이 됐다.

구민들의 신고로 장애인전용주차구역 질서가 잘 유지되고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운전자들의 준법의식이다. ‘비어있는데 뭐 어때’라는 이기적인 생각을 버리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하는 마음이 생활화 돼야 할 것이다. 최근 들어 주차난이 갈수록 심해져 위반기준을 완화하자는 의견도 있다. 물론, 주차난이 일부 해소되겠지만 장애인 편의를 보장하고자 만든 법률의 근간이 흔들리고 유명무실해질 것이다.

나아가 장애인의 ‘접근권’도 훼손될 수 있다. 접근권이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고 비장애인 중심의 시설을 동등하게 이용할 수 있는 권리다.

누군가를 위해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을 비워두자는 약속은 배려라기보다 엄연한 의무사항이다. 늘 속도를 줄이고 빨간불에 멈추는 것처럼 말이다. 익숙하지만 낯선 주차구역이 되지 않도록 남구는 2023년 하반기부터 주민들이 알기 쉽게 각종 위반사진을 넣은 현수막을 새로 제작해 상습 신고구역에 배포하고 있다. 또 장애인전용주차구역 전방에 한 번 더 바닥면 표시를 해 식별을 돕는 ‘장애인전용주차구역 픽토그램 설비 렌탈사업’도 시행 중이다.

특히, 픽토그램 설비 렌탈사업은 남구 적극행정 우수사례로 선정된 만큼 시행 후 월평균 신고 건수가 20% 이상 감소했다. 도색비용도 40~70만원 절감하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가 있다. 남구는 앞으로도 적극적인 홍보로 보다 많은 구민들이 알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지난 1월 복지교육국장으로 부임한 뒤 짧은 기간이지만 장애인전용주차구역 민원 처리과정을 보며, 직원들이 정말 어려운 일을 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량 한 대뿐인 사진에 여러 의견을 좁혀가며, 신고인과 차량 소유주, 넓게는 우리나라 장애인 260만명까지 누구를 위해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지 고심하는 모습을 보았다. 3.3m 주차구역 앞에서 어느 누구도 속상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남구의 주차문화를 바꿀 열쇠는 사진 두 장과 과태료 고지서 한 장보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구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이 먼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문종현 울산 남구 복지교육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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