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 상류 반고사서 사미승 생활한 원효의 발자취를 찾아
(1) 원효를 품지 못한 세상, 세상을 품은 원효
화해와 공화를 위해 불응한 사람
수직 질서의 폭력성 비판하고
각자의 색깔과 차이 존중받으며
호혜적으로 어울리는 세상 꿈꿔

▲ 새 희망, 유화, 세로 45.0×가로 24.0㎝

본보는 새해 들어 새로운 기획물 ‘태화강 상류 반고사서 사미승 생활한 원효의 발자취를 찾아서’를 월 한 차례씩 연재합니다.

삼국시대 신라의 고승인 원효(元曉 617~686)는 울산 태화강 상류 반구대 반고사(磻高寺)에서 사미승(沙彌僧)으로 생활하며 문수산 고승 낭지를 스승으로 삼아 공부를 했습니다. 이 같은 원효의 옛 발자취를 박태원 울산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의 글과 권영태 화백의 그림을 통해 독자들과 함께 짚어가보고자 합니다.

주류 질서에 불응하는 선택을 하기란 실로 어렵다. 소속집단 주류의 사유 방식과 선호를 거슬리면 즉각적으로 응징받는다. 그 징벌적 위해(危害)는 치명적이며 장기적이다. 시대의 주류 질서는 강자들의 이익에 유리한 방식으로 수립되어 온 측면이 있다. 다양한 의견과 다채로운 이익을 수렴해 가는 절차가 외면되었던 시대에는 특히 그러하다. 그러나 민주적 절차와 제도가 등장한 이후에도 사정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강자들이 자신의 관점과 이익을 합법적으로 정당화시킬 수 있는 방식과 기술을 발전시켜 절차와 제도를 장악하기 때문이다.

주류의 관점과 이익은 흔히 법과 제도로 정당화된다. 전근대 사회에서는 사상·종교·문화가 노골적으로 가세하였다. 이런 직·간접 장치들은 주류 질서가 요구하는 관점과 행위에 대한 신뢰와 충성을 구성원들의 내면에 각인시킨다. 그러나 불응하는 인간들이 있다. 비록 소수이지만, 어느 집단에서나 언제든지 등장한다. 강력한 권력이 된 주류 질서에 양들의 침묵으로 순응하는 이들과는 달리, 이들은 치명적 위협과 가해에 굴하지 않고 저항한다. 대부분은 주류 권력의 탄압에 밀려 진압되거나 제거된다. 집단에 소속해야 생존할 수 있었던 군집문명의 불가피한 비극이다. 문명 차원에서는 희망의 조짐도 보인다. 소속을 바꾸어도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이 문명적 수준에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집문명 자체가 존속하는 한, 완전히 막을 내리기는 어려운 비극이다.

세상과 시대의 주류 질서에 불응하는 사람들의 행보에서 목격되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정의를 위한 불응’인데, 부당한 대우에 불응하는 유형이다. 성공하면 새로운 강자가 되어 새 주류 질서의 주인이 되고, 실패하면 잔혹하게 거세되고 제거된다. 다른 하나는 ‘진리를 위한 불응’이다. 주류 질서의 불합리성과 부당함을 성찰적으로 비판하고, 더 좋은 대안을 제시하면서, 그 구현을 위해 근본적 불화를 선택하는 경우이다. 인간의 몽매 그 자체와의 불화이기 때문에 끝없어 보이는 싸움이다.

정의형 불응은 선과 악, 정의와 불의의 규정 다툼이기도 하다. 승자는 선과 정의의 자리를 차지하고, 패자는 악과 불의의 자리로 밀려난다. 윤리적 명분을 이용한 자리다툼이다. 그런 점에서 ‘차지를 위한 불응’이다. 응집력과 투쟁력이 강하고 단기간에 변화를 이룰 수 있는 강점이 있지만, 세상의 진리다운 변혁에는 약점을 노출한다. 이에 비해 진리형 불응은 윤리적 명분의 기만적 유혹을 뿌리치고, 차이들을 우열의 위계적 체계로 조작하는 수직 질서의 폭력성을 비판한다. 그리고는 활짝 열린 수평의 대지 위에서 온갖 차이들이 저마다의 색깔을 존중받으며 호혜적으로 어울릴 수 있는 세상으로 향한다. 그런 점에서 ‘화해와 공화(共和)를 위한 불응’이다. 세상은 진리형 불응의 주인공들을 품지 못하지만, 그 주인공들은 세상을 모두 품으려 한다. 좋은 진리의 구현을 지향한다는 강점이 있지만, 단기간의 변화와 성취가 어렵다는 약점을 보인다. ‘진리형 불응을 전망으로 품는 정의형 불응’과 ‘정의형 불응을 품는 진리형 불응’이 이상적이다.

한반도에서 진리형 불응을 선택하여 탁월한 성취를 이룬 사례 가운데서도 우뚝 돋보이는 인물이 있다. 원효(617~686)다. 그는 혈통에 의해 평가받고 대접받는 속(俗)의 수직 질서에 불응했고, 종교의 의상을 입고 새로운 유형의 차별 질서를 형성하여 강자들이 기만과 허세를 부리는 성(聖)의 수직 질서에 순응하기를 거부했다. 그래서 속(俗)과 성(聖)의 세상은 모두 그를 품지 못했다. 원효 사후 100여 년이 지나 만들어진 서당화상비(誓幢和上碑)는 ‘붉은 활이 그를 겨누었다’라고 하여, 죽일 것 같은 비판이 그에게 쏟아졌음을 전한다. 성(聖)의 주류 질서에도 순응하지 않는 그의 행보와 관련 있는 기술로 보인다. 원효의 삶에 관한 <삼국유사>의 총평도 ‘원효는 굴레에 매이지 않았다’(元曉不覊)이다.

속(俗)과 성(聖)의 세상은 모두 그를 품지 못했지만, 그는 속(俗)과 성(聖)을 모두 품으려 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불교 탐구를 통해 성취한 내공 덕분이다. 원효는 대승불교의 탐구를 통해 붓다와 성공적으로 대화한 인물이다. 속(俗)과 성(聖)을 모두 품는 그의 통찰을 집대성한 저술은 <금강삼매경론>이다. 주류 교학의 시선으로서는 해독하기도 어렵고 수용하기도 쉽지 않은 내용이다.

원효는 울산 태화강 상류 반고사에서 사미 시절을 보내며 문수산에 은거하던 고승 낭지를 스승으로 삼아 공부했다. 스승의 권유로 저술한 책 두 권의 서명과 책을 바치면서 쓴 시가 전한다. ‘서쪽 골짜기 사미가 머리 숙여 예를 올립니다. 동쪽 산봉우리 큰 스님의 높은 바위 앞에. 티끌 먼지를 불어 영취산에 보태고, 가는 빗방울 날려 (태화강) 용연에 던지나이다.’
글=박태원 울산대 철학과 명예교수·그림=권영태 화백

※경상일보의 제안에 응해 9회에 걸쳐 원효를 음미합니다. 울산 인문학의 활력에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귀한 작품들의 삽화 사용에 응해주신 권영태 화백에게도 감사드립니다.
문수산 옆 남암산 자락 회향재(廻向齋)에서.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작가약력

▲ 박태원 울산대 철학과 명예교수
▲ 박태원 울산대 철학과 명예교수

박태원 울산대 철학과 명예교수
불교철학자. 원효 관련 주요 저서로는 <원효전서번역>(교육부 주관 2021년 학술연구지원사업 우수성과), <원효의 화쟁철학>(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원효의 통섭通攝철학>(우수학자지원사업,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원효학술상) 등이 있다.

 

 

 

▲ 권영태 화백
▲ 권영태 화백

권영태 화백
·전업작가
·개인전 및 초대 개인전 17회
·한국미협, 울산미협, 신작전회 회원
·창작법인 ‘좋은 사람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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