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시내 나무의사·수필가

한낮의 햇살이 제법 톡톡하다.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물오른 나무에서 겨울눈이 사부작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마음이 급한 녀석은 인편 사이로 빼꼼 얼굴을 내밀기도 한다. 바야흐로 봄이다.

새 가지와 어린잎이 나오기 시작하는 3월에서 5월은 봄전정 하기에 좋은 시기다. 전정은 필요 없는 가지를 잘라주는 일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가지치기라 하면 나무의 모양을 아름답게 만들거나 품질이 좋은 과실을 얻기 위한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가지치기는 나무의 건강이나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안전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어떤 가지를 잘라내는 것일까. 말라죽거나 생장을 멈춘 것, 병충해의 피해를 입은 가지, 아래로 자라거나 웃자란 것이 대상이다. 통풍이나 광합성에 방해가 되는 것 역시 없앤다. 사람이나 자동차의 통행에 장애가 되거나 태풍에 쓰러질 위험이 있는 것도 제거한다. 전정 전에 대상목의 생리적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하며, 불필요한 큰 가지부터, 위에서 아래로, 밖에서 안의 순서로 진행한다.

▲ 후피향나무의 상처유합재-유합조직은 시간이 지나며 수피와 목질부를 갖춘 상처유합재로 변한다. 나이띠의 개수를 통해 상처의 나이를 알 수 있다.
▲ 후피향나무의 상처유합재-유합조직은 시간이 지나며 수피와 목질부를 갖춘 상처유합재로 변한다. 나이띠의 개수를 통해 상처의 나이를 알 수 있다.

가지치기 이후에 나무는 상처를 어떻게 극복할까. 치명적인 것이 아니라면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 노력한다. 전정이 끝난 절단면은 전쟁터와도 같다. 상처 입은 나무는 미생물 침입을 막고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스스로 방어벽을 만들어 저항한다. 이와 함께 상처 가장자리의 부름켜에서 새로운 세포인 유합조직을 만들어 상처 부위를 감싸기 시작한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병원균과 전쟁을 치르며 나무는 안으로 더 단단해지는 것이다.

이 세상에 아픔 없이 자라는 삶이 있을까. 상처가 지나면 흉터가 남는다. 쉽게 아무는 것도 있을 테지만 오래 고생하며 굵은 옹이가 생기기도 할 것이다. 그러면서 성장하게 되겠지. 보드라운 햇살을 받은 나무들이 은빛으로 빛난다. 휴일의 오후를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가지치기가 끝난 무궁화나무가 아름다운 그림처럼 보인다. 아이들도, 나무도 고통이 두려워 성장을 포기하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이제까지 마음이 심약한 내 아이를 위한 기도는 ‘상처받지 말기를’이었다. 오늘부터 기도를 바꿔야겠다. ‘상처를 두려워하지 말기를, 그것을 통해 큰 재목으로 발전하기를’

송시내 나무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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