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내는 것이 아닌, 그저 살아가는

▲ 설성제 수필가

하늘에서 뭔가 하나 툭, 떨어졌다. 그는 옆으로 쓰러진 채 잠깐 숨을 고른 후 일어서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사람이라곤 보이지 않는 들판에 산들바람이 불고 있었다. 이 책의 서두를 내 식대로 표현하자면 이런 느낌이다.

그가 가장 잘하는 것은 걷는 것. 그래서 그는 그냥 걷기로만 했다. 야생 열매를 따먹고 야생 옷을 걸치고 거미줄이 보이는 나무 아래에서 잠을 잤다. 무려 2년 가까이 홈리스로. 그러자 그는 그대로 자연이 되어버렸다. 하늘과 바람과 햇빛과 풀과 꽃과 땅과 새와 벌레가 되어 자신이 누구인지 분간하고자하는 마음조차 사라졌다.

그런데 자연 모든 생물에겐 저마다의 생존전략이 있는 법이다. 그도 살아야했기에 두더지 잡이가 되었다. 두더지 언덕을 발견하면 그 언덕 아래 있을 두더지 집의 크기를 측량하고 내부를 상상했다. 그는 함께 살아있는 것을 죽여야만 하는 괴로움으로 두더지를 비인격화시키기를 노력했고 남다른 두더지 잡이가 되었다. 또한 정원사로도 일하게 되었다.

마크 헤이머의 <두더지 잡기-노년의 정원사가 자연에서 배운 것들>(카리칼)을 독자들은 무엇을 기대하며 펼칠까 궁금하다. 낯선 두더지의 생태와 포획 기술? 한 홈리스의 자연예찬? 결국 인간은 자연 속 외로움과 고독에서 인간과 인간의 연합과 사랑을 갈구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책 속에 있다. 그리고 미사여구나 스킬 없는 담백한 문장에서 자연의 한 점(點)으로 살아가는 저자 헤이머의 순백한 깨달음이 우리 독자의 뼛속까지 파고든다. 인간이며 자연이자 자연이며 인간인 한 존재의 깊디깊은 고독과 사랑, 또 작디작은 행복의 울림이 너무나 장엄해서 뭉클뭉클 눈물이 솟기까지.

지금 마크 헤이머는 아내 페키와 한집에 사는 무당벌레 한 마리에 사랑을 다하며 작가로 산다. 물론 헤이머와 자연은 서로를 그저 바라보아주는 한몸으로. 나는 자연에서 무엇을 배우고 깨달으며 살아가는가. 이 책속으로 툭, 떨어진 나는 다시 눈을 뜬다. 주변은 살아내느라 부산스러우나 일단 나는 헤이머처럼 걸어야겠다. 설성제 수필가

(26)마크 헤이머의 <두더지 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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