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일보-울산대 인문대학 공동기획
韓문학 ‘근현대 희귀도서’ 컬렉션
울산대 중앙도서관에 116점 소장
교과서로 접해본 작가·작품 즐비
울산지역과 관련한 작품도 상당수
우리 문학사의 주옥같은 작품들
장서의 ‘아우라’ 느끼기도 좋지만
더 중요한 건 직접 읽어보는 것

박정희 울산대 교수 국어국문학과
박정희 울산대 교수 국어국문학과

이 글을 쓰기 위해 울산대 중앙도서관에 있는 ‘근현대 희귀도서’ 컬렉션을 톺아보고 있을 때다. ‘<혈의 누> 재판본 2억 5000만원에 낙찰’이라는 인터넷 신문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기사는 1908년 간행된 <혈의누> 재판본이 온라인 경매에서 2억5000만원에 낙찰됐으며 이는 근현대문학 경매 최고가 기록이라고 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사 말미에는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1925)이 1억6500만원으로 종전의 최고가 기록(?)이었다고 덧붙여 놓았다.

한국 근현대소설을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지만, 근대문학 작품이 이렇게 엄청난 금액에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신소설 <혈의누>와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의 문학적 가치와 그 문학사적 위상이 대단함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더라도 가늠조차 안 되는 가격은 그저 다른 세상의 이야기로만 여겨질 뿐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 기사를 읽는 동안, 내 손에 100년 전에 출판된 이광수의 <무정>이 놓여 있었다는 사실이다. 고백컨대 이 기사를 보기 전에는 복사 영인본 만지듯 막(!) 다루었다. 이 기사를 보고 나서 손이 떨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심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광수의 그 <무정>이 아닌가, 그것도 지구상에 몇 권 안 남은 책 가운데 한 권. 이 ‘놀람’과 ‘손떨림’은 뒤에 밝히기로 한다.

첫 문장에도 썼지만, 이 글은 울산대 중앙도서관에 있는 ‘근현대 희귀도서’ 컬렉션을 소개하기 위한 목적이었으므로 우선 거기에 맞춰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컬렉션은 중앙도서관 홈페이지 메인화면에 있는 ‘컬렉션/전자책’ 속에 한 항목으로 되어 있다. ‘근현대 희귀도서’를 클릭하면 116권 장서의 알록달록한 표지와 저자이름, 출판사, 출판년도 정보가 소개되어 있다. 이 컬렉션은 2012년, 울산대 중앙도서관 장서 100만권 기념 희귀도서전을 열면서 마련되었다고 한다(“이광수의 <무정> 희귀본 구경오세요”, 본보 2012년 5월10일자 참고).

▲ 울산대 소장 .
▲ 울산대 소장 .

그런데 ‘근현대 희귀도서’라는 이름은 약간의 오해를 살 수 있겠다. 사실 이 컬렉션의 장서는 국어학자 최현배 선생님의 도서와 시인, 소설가, 극작가, 동화작가 등의 문학작품과 문예지 및 잡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까 ‘근현대 국어학과 국문학 관련 희귀도서’ 컬렉션이라고 해야 정확하다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장서는 ‘희귀도서’임에는 틀림없다.

이 컬렉션에는 중고등학교 때 국어 혹은 문학 교과서를 통해 만나본 작가와 작품들로 즐비하다. 이 짧은 글에서 116권의 장서 하나하나의 문학적 가치와 그 ‘희귀성’을 소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우리 지역과 관련해서만도 상당하다는 점을 짚어놓는다. 울산 출신의 국어학자 최현배 선생님의 <한글의 바른길>(1945)을 비롯한 도서들, 울산 유일의 문학관을 가진 작가 오영수의 <머루>(1954)를 비롯한 소설집들, 가까운 경주에 자리한 동리·목월문학관 작가들의 작품들 등등. 그야말로 우리 문학사의 주옥같은 작품들이며 원본들이다. 알아두면 가족들과 이들 기념관과 문학관에 나들이라도 갈 때 ‘한 자락’ 깔 수 있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 울산대 중앙도서관이 소장한 근현대 희귀도서 목록.
▲ 울산대 중앙도서관이 소장한 근현대 희귀도서 목록.

이쯤에서 첫대목에 쓴 ‘손떨림’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 바로 <無情>에 대한 것이다. ‘근현대 희귀도서’ 컬렉션이 소장한 춘원의 <무정>은 1925년에 출간된 이른바 ‘6판본’이다. “초판도 아니고 ‘6판’이라니, 그다지 희귀할 것도 아니네”라고 말할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오산이다. ‘6판본’의 희소성은 이렇다. 1917년 ‘매일신보’ 연재본을 이듬해인 1918년 7월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그 후 계속해 간행되었으나 현재로서는 초판본과 ‘5판본’ 각각 2권을 제외하고 ‘6판본’뿐이다(‘4판본’을 일본 어느 학자가 소장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긴 하다). 이 ‘6판본’은 현재까지 국내외를 막론하고 서너 권밖에 없다. 국립중앙도서관과 인천 근대문학관, 동경외대 도서관에 있다고 알려져 있을 뿐이다. 여기에 그 한 권이 울산대 중앙도서관에 있다. 그러니 그 희소성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허나, 한 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이 장서에는 ‘한샘’이라는 필명으로 육당 최남선이 쓴 4쪽짜리 ‘서문’이 낙장(落張)되어 있다.

이 <무정>의 소장 경위는 이렇다. 울산대 화학과 교수로 정년퇴임을 하신 정한모 선생님이 기증한 것이다. 이 장서는 정한모 교수의 부친이 소장하고 계시던 것이라고 한다. 부친 정신득(鄭辛得:1911~1994) 선생은 교사이자 <그물 한 코>(1976)라는 수필집을 간행할 만큼 부산에서 수필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신 분이다. 이 장서에는 다른 그 어떤 소장본에도 없을 흥미로운 사항이 포함되어 있다. 정신득 선생은 책 속지에 이런 기록을 남겨놓았다. “昭和六年三月十九日入. 備考: 第一讀了 六年三月二十六日.” 그러니까 1931년 3월19일에 구입해 3월26일에 일독(一讀)했다고. 독후감도 궁금하지만 알 길이 없다. 그런데 그 후 60년이 지난 1991년, ‘춘원 이광수의 최후가 최근에 밝혀졌다’ 신문 기사와 ‘春園묘 평양에 있다’는 신문 기사 등을 오려서 책 표지 안쪽에 붙여 놓았다. 그러니 이 장서는 한 독자와 60년 이상을 같이한 ‘유일무이’한 <무정>이다.

마지막은 이런 말을 덧대는 것으로 마무리해야겠다. 디지털 세상이다. 앞서 필자가 흥분하며 소개한 <무정> ‘6판본’은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에 이미지로 올라와 있으니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디지털 세상이 제공하는 이미지 <무정>보다 ‘희귀도서’ 컬렉션의 장서가 갖는 ‘아우라’를 느껴보시라고, 가격으로 환원할 수 없는 그 가치를 느껴보시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무정>은 근처 도서관과 인터넷 서점에 수도 없이 많다. 심지어 아파트 분리 수거장에도 가끔 출몰한다. 교과서에서 읽은 그 유명한 첫 장면, 그보다 더 유명한 삼랑진 음악회 장면만 꼽으며 마치 다 읽은 양하던 독자는, 이참에 <무정>을 읽어보시라. 읽은 사람은 알게 될 것이다, 영채가 겁탈을 당했는지 그렇지 않은지가 왜 중요한지, 그리고 영채와 월화의 동성애 장면이 주는 울림이 크다는 것을. 이로써 내내 ‘그래서 <무정>의 가격이 얼마냐?’고 따지던 독자는,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근현대 희귀도서’ 컬렉션의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박정희 울산대 교수 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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