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 너무 심해 죽고싶을 따름입니다. 제가 이런데 애는 오죽하겠습니까"
 허리보호대를 동여맨 남진근(50)씨는 깊고 긴 한숨부터 내쉰다. 둘째 아들 용준(22)씨만 생각하면 복받쳐 오르는 설움을 참기 힘들다.
 용준씨는 스무살이 넘은 나이지만 키 158㎝에 몸무게는 27㎏로, 초등학교 때 이미 성장이 멈춰버린듯 체격이 왜소하다. 초점 없는 눈에선 광채를 느낄 수 없었고 온 몸의 피부는 검게 일어나 조금만 문질러도 비늘처럼 떨어져 나갔다.
 용준씨가 앓고 있는 병은 선천성 혈우병. 경미한 외상에도 쉽게 출혈이 되며 지혈도 잘 되지 않아 사망할 수도 있는 위험한 질병이다. 피부 각질이 두꺼워지고 갈라지면서 벗겨지는 어린선 피부병도 용준씨를 힘들게 하고 있다.
 아버지는 "용준이는 태어날 때부터 온 몸이 빨갛게 피범벅인 상태였다"며 "병원에서는 혈우병은 평생을 지고 가야할 병이라고 말했지만 소중하게 태어난 생명인만큼 정성껏 키우기로 작정했다"고 말했다.
 용준씨는 혈우병과 함께 오는 합병증으로 무릎 관절이나 발 관절에 종창이 생겨 부어오르면서 제대로 앉기도 힘들다. 깨질듯한 통증으로 무릎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왠만하면 외출은 생각도 할 수 없어 집안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일과의 전부가 돼버렸다.
 또 청각, 언어 장애로 정상적인 의사소통도 불가능해 늘 혼자다. 메아리학교는 용준이가 집을 나서 갈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지금은 방학이라 4평 남짓한 작은 방에 놓여진 텔레비전만이 용준이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있다.
 시력은 5살때 부터 점점 잃어가고 있다. 두 차례 수술을 했음에도 시력이 자꾸만 떨어지고 있다.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이 모두 어렵게 된 셈이다.
 육체적 고통보다 더 힘든 것은 지독한 외로움을 혼자서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다.
 암흑이 가져다주는 공포를 어릴 때부터 경험했던 용준씨에게는 혼자라는 사실이 너무나 익숙하면서도 두려운 존재다. 외로움은 앞으로 용준씨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할 짐이 됐다.
 자신의 감정조차 마음편히 드러내지도 못하는 용준씨를 볼 때 아버지는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낀다고 말한다.
 "자기도 답답한지 가끔 신경질을 부립니다. 밥도 안먹을려고 하고 표정 없이 텔레비전만 응시하고 있을 때는 화가 단단히 난 겁니다. 그런 용준이를 볼때마다 어금니를 깨물며 눈물을 삼킵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아버지 남씨는 강원도 정선 탄광에서 일을 하다 지난 92년부터 울산에 정착한 뒤 환경미화원으로 취직해 네 식구의 생계를 유지해 왔다. 첫째 아들(27)은 군대 제대후 소식이 끊어져 현재는 식구가 셋으로 줄었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전 부인과 6년전 헤어진 뒤 재혼해 살고 있지만 현 부인도 몸이 아파 용준씨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
 진근씨도 3년전 쓰레기를 들어올리다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허리수술을 세차례씩이나 했지만 아직 완쾌되지 못한 상태이다.
 그래도 세 식구를 위해 허리보호대를 질끈 동여매고 매일 아침 집을 나선다. 일을 나가더라도 용준씨 걱정으로 일이 손에 잡히질 않지만 어금니를 깨물고 쓰레기를 주워 담는다.
 집 냉장고에는 항상 주사기와 약이 준비돼 있다. 용준씨가 넘어져 피가 흐르면서 멎지 않을 때나 고통스럽다고 울부짖을 때마다 아버지는 냉장고에서 주사기를 꺼내 혈관주사를 놓는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처방과 투약을 받아야 하나 병원비가 만만찮아 늘 약과 주사기만을 구입해 위급할 때 사용하고 있다. 부인은 시력이 나빠 혈관을 잘 찾지 못하기 때문에 응급처치는 진근씨의 몫이다.
 진근씨의 한달 평균 수입은 80여만원. 자신의 허리치료비, 용준씨 병원 약값, 생활비까지 모두 충당하기엔 턱없이 벅찬 금액이다. 보증금 2천500만원에 월 10만원 전세집은 오는 4월이면 계약이 만료된다.
 변변찮은 수입에 병원비 등 이것저것 들어가는 곳이 많다보니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 1천500만원을 넘어섰다. 진근씨는 우선 집을 빼 빚부터 갚고 월세집을 찾아볼 생각인데 속은 타들어가고 있다.
 "형편이 된다면 서울의 큰 병원에 애를 데리고 가 진료를 받아보고 싶습니다. 용준이가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질 않습니다. 어떻게 용준이가 이런 병에 걸렸는지 가혹한 현실이 원망스럽습니다".
 오늘도 용준씨는 텔레비전 앞에 바짝 붙어 내용도 모른채 화면을 응시하고 있다. 어쩌면 용준씨는 거스를 수 없는 운명 앞에서 자신과 끝없는 내면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병우기자 kbw@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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