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앞이 깜깜했어요. 병실에 의식을 잃고 누워있는 아이를 끌어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희귀성 뇌혈관 질환인 '모야모야병'을 앓고 있는 박경은(10·가명)양의 어머니 장영희(41·가명·동구 방어동)씨는 외동딸이 처음 병원에 입원했을 때를 생각하자 곧 눈시울을 붉혔다.

옆에 있던 경은이도 엄마의 울음에 같이 눈물을 글썽인다. 경은이는 엄마가 우는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은이는 당시 엄마의 심정을 속속들이 알 수가 없다. 엄마가 느꼈을 절망감과 서러움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린 열살박이일 뿐이다.

모야모야병은 뇌로 가는 동맥이 선천적으로 좁은 탓에 혈액이 잘 통하지 않아 갑자기 몸에 마비 증세가 오는 선천적인 희귀 질환으로 간질, 반신마비, 실어증 등을 동반한다.

경은이는 2002년 봄 중이염으로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집으로 오다 쓰러졌다. 맞기 싫은 주사를 억지로 맞은 대가로 얻은 아이스크림도 땅바닥에 같이 떨어뜨렸다.

"차에서 내리는데 경은이가 '엄마'하면서 푹 쓰러졌어요. 놀라서 뒤를 돌아보는데, 너무 무서워서 몸이 덜덜 떨리더군요. 곧장 아빠한테 전화하고 병원으로 옮겼어요"

정밀진단 결과 경은이의 병명은 모야모야병. 생전 처음 듣는 병명에 엄마와 아빠는 기가 막혔지만 수술이 빠를수록 좋다는 말에 곧장 서울의 한 병원으로 향했다.

당시 경은이의 집은 아버지의 잇단 사업실패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하나 밖에 없는 딸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백방으로 돈을 꾸러 다녔다. 수술비 500만원이 필요했다.

겨우 수술비를 마련해 2002년 6월 1차 수술을 했다. 오른쪽 두개골을 들어내야 하는 대수술이었다. 그러나 수술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오른쪽 뿐만 아니라 왼쪽 뇌혈관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당장에 수술을 해야 했지만 경은이는 너무 지쳐 있었다. 2년이 지난 지난해 8월 경은이는 다시 한번 수술대 위에 올랐다. 이 때의 상황이 생각났는지 경은이는 울기 시작했다.

두 번째 수술 결과도 좋지 않았다. 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경은이가 모야모야병 환자 10명 중 1명에 해당하는 특이한 경우에 속한다며 또 한 번의 수술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경은이는 3차 수술을 기다리고 있지만 수술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어머니 장씨는 수술비 마련이 여의치 않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지난 달에는 돈이 없어 두 달에 한 번씩 받는 정기검진도 받지 못했다.

경은이네 월수입은 100만원 정도. 하는 일마다 잘 되지 않는 아빠 대신 엄마가 밤에 식당일을 하며 버는 수입이 전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두 번에 걸친 경은이의 수술을 위해 빌린 돈과 아파트 보증금도 아직 갚지 못하고 있다. 의료보험금을 제대로 납부하지 않아 의료보험 혜택마저 중지됐다.

장씨는 이제는 어디에다 부탁할 데도 없는 현실이 더 서럽다. 가난해서 서러운 것이 아니라 부모 역할 못하는 못난 자신의 모습 때문이다.

"그래도 꼭 수술을 시킬거예요. 집안 형편도 어려운데 애까지 평생 병으로 고생시킬 순 없잖아요. 병원에서는 이번이 마지막 수술이 될거래요. 수술하면 정상적인 아이들처럼 클 수 있대요"

경은이는 말수가 적었다. 말도 거의 하지 않고 부끄러워 하며 엄마 품 속으로 파고들었다. 몸에 힘이 빠질 때마다 부를 수 있는 엄마와 오랫동안 함께 있을 수 없어서인지 경은이는 엄마 곁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경은이는 좋아하는 라면도, 친구들이 집에 오는 길에 먹는 떡볶이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다. 맵고 짠 음식은 혈관을 수축시키기 때문에 경은이에게 치명적이다. 김치 두 조각이면 경은이 한 끼 반찬이다.

학교 급식도 조심해야 하고, 친구들과 밖에서 뛰어노는 것도 힘들다. 좋아하는 가수가 TV나 라디오에 나와도 노래를 따라부를 수 없다. 주위 모든 것이 경은이에게는 가시밭길이다.

이 가시밭길은 엄마도 함께 걷고 있다. 경은이가 밖에 나가 놀아도 걱정이고, 가끔 친구들에게 머리를 맞고 들어올 땐 아예 속이 타들어간다. 수술 자국이 짙게 남아있는 경은이 머리를 볼 때는 눈물이 난다.

"엄마하고 절에 가서도 기도하고, 할아버지 제사 때도 빨리 낫게 해달라고 절 하거든요. 수술하면 정말 무서운데요. 그래도 수술해서 빨리 낫고 싶어요" 서대현기자 sdh@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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