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을 가르치는 것보다 아이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 더 힘든 일이에요"

가정에서 학대받는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미술을 지도하고 있는 정윤(여·35·중구 우정동)씨는 미술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받은 어린이들이 조금씩 밝아지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울산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있는 정윤씨는 중구 우정동에서 작은 학원을 운영하며, 인근 아동학대예방센터 부설 사랑의집 원생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고 있다.

정윤씨는 3년 전 처음 사랑의집 원생들을 만났다. 당시 학원 개원 준비에 한창인 정윤씨에게 사랑의집 교사들이 미술 교육을 의뢰해 왔고, 정윤씨는 흔쾌히 수락했다.

"개원에 한창 바쁠 때 사랑의집에서 연락이 왔어요. 원생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고 싶어서 큰 학원 몇 군데에 의뢰를 했는데 다 퇴짜를 맞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별다른 생각없이 승락했어요"

정윤씨의 이같은 결정에는 어머니의 존재가 큰 힘이 됐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는 시장에서 생선을 팔며 어렵게 살았지만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정윤씨가 처음 아이들을 맡게 됐을 때 모든 가족들이 염려를 했지만 어머니는 오히려 "축복받았다"고 말하며 정윤씨의 든든한 후원자를 자처했다.

지금도 어머니는 아이들을 위해 물감, 헝겊 같은 미술 재료와 옥수수, 고구마 등 먹거리를 들고 찾아온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정윤씨의 여동생도 틈틈이 학원을 찾아 도움을 주고 있다.

정윤씨는 일주일에 3번 정도 1시간 가량 아이들을 지도한다. 각자 마음의 상처를 입은 아이들이지만 미술을 배우는 시간에는 보통 아이들 못지 않게 열심이라고 한다.

"사실 그림에는 많은 차이가 나지 않아요. 어두운 색 계열을 많이 사용한다는 데 꼭 그렇지도 않구요. 처음에도 다소 그림이 어둡지만 6개월 정도 지나면 그림이 조금씩 밝아지는 것이 보입니다"

정윤씨가 이 아이들에게 주는 특혜(?)라면 아이들이 완성한 그림에 대한 정성스런 평가와 짧막하게 편지를 써 주는 것이 전부이다. 칭찬과 애정에 목마른 아이들에게 편지의 효과는 의외로 좋았다. 정윤씨는 간혹 사랑의집 교사들에게도 편지를 쓴다. 아이들이 그림을 대하는 태도 변화와 평범한 아이들 못지 않게 밝아지고 있는 모습 등이 주요 소재이다. 교사들이 감사하다고 보내는 답장을 받을 때 정윤씨는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계속 빗나가고 말을 듣지 않을 때는 돌보는 것이 부담되고 힘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가진 재주로 뭔가를 나눌 수 있고, 아이들이 점점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어머니 말씀대로 정말 축복인 것 같아요" 서대현기자 sdh@ksilbo.co.kr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