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고비를 한차례 넘기고 나니 조금이나마 희망이 생겼습니다, 지금처럼 살아 있다는 것도 믿어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아직 어린나이라 혼자서 끙끙 앓아가며 아파서 울 때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마냥 부둥켜안고 우는 수 밖에 없습니다"

울주군 온양읍 남창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황경희(35)씨는 큰 아들 인석(9·삼평초 2년)이 생각에 연신 가슴 아파하다가 그만 눈시울을 붉혔다.

어머니 황씨는 항상 건강했던 인석이가 난치병에 걸렸다는 사실이 순간순간 악몽이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병마와 싸우고 있는 아들을 바라보면 그저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앞서 인석이 이야기만 하면 눈물부터 글썽인다.

지난 2003년 2월 만성골수성 백혈병이란 판정이후 투병중인 인석이는 지금까지 4~5차례에 걸친 대형 수술과 치료를 받았지만 현재 수술후유증으로 양쪽 볼이 심하게 부워올라 있는데다 오른쪽 다리를 제대로 걷지 못해 목발에 의지해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조그마한 가슴에 항암제를 투입하기 위해 심장쪽으로 호스를 연결해 놓은 장치를 2년째 매달고 있기 때문에 똑바로 누울 수 조차 없으며, 부딪치거나 넘어지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 한다.

인석이는 병을 앓기 전까지만 해도 또래 아이들과 별반 차이없는 튼튼하고 건강한 아이였지만 일곱살이 되던 해부터 몸에 이상이 발견됐다.

배가 아파 대수롭지 않게 들린 병원에서 피검사 등 정밀검사를 실시한 결과, 비장이 부워오르는 만성골수성 백혈병이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진단결과를 받았다. 설마 아니겠지라는 생각으로 서울의 큰 병원을 찾았지만 빠른 시일내에 골수이식을 받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을 뿐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다행히 인석이는 어리고 연약한 여동생(6)의 골수를 이식받아 무사히 한차례 수술을 마친 뒤 눈부위를 제외하곤 별다른 거부반응이 없어 한시름 놓았지만 엎친데 덮친격으로 지난해 말 병이 재발되고 말았다.

골수이식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기에 인석이는 다니던 학교를 포기한 채 올해 초 다시 여동생으로부터 조혈모세포를 이식받았지만 수술 한달 후 피부전체가 붉고 눈이 노랗게 변하는 숙주반응이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정상인들의 황달수치가 1인데 비해 인석이는 40까지 올라가는 심각한 상황에 처했다.

어머니 황씨는 "가망이 없다", "방법이 없다"는 병원측의 말을 듣고 충격에 쓰러졌지만 마냥 넋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기에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병간호에 모든 애정을 쏟아 부었다.

"병원에서 더이상 기대할 수 없다는 소리를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았았어요, 무슨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꼭 살릴테니 포기만은 하지말아달라고 병원측에 애원했습니다. 중환자실에 누워 아파하는 인석이를 바라보며 얼마나 많은 밤을 눈물로 지샜는지 몰라요"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닿았는지 인석이는 지난 5월 기적적으로 생명의 끈을 이었고 현재 약물치료로 병마와 싸우고 있다.

하지만 잦은 수술과 약물치료로 인해 오른쪽 무릎에 물이 차면서 걸을 수 없게 되자 최근 무릎수술을 받았는데 혼자서 움직이는 것 조차 힘들어 하고 있다.

그래도 인석이는 면역억제제와 보조제, 호르몬제, 혈압약 등 6가지 약물복용으로 속이 아프고 힘들지만 엄마 손을 붙잡고 집앞 계단을 이용한 재활치료에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인석이는 매일밤 꿈을 꾼다. 병이 나으면 하고 싶은 것을 마음속에 그려 놓는 것이다. "제일먼저 학교에 가고 싶어요, 친구들과 재미있게 뛰어놀고 선생님과 같이 공부하고 싶어요, 아빠와 엄마, 동생과 함께 손을 잡고 나들이 갈거에요"

또 자신에게 두번이나 생명을 전해준 동생에 대한 마음이 남다르다. 몸이 아파 제대로 놀아줄 수는 없더라도 어린이집에 다니는 동생의 귀가시간이 제일 기다려진다. 아픈만큼 성숙해진 것인지 눈물부터 보이는 엄마보다 인석이가 더 어엿해졌다.

그러나 어머니 황씨는 인석이 병이 완치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을 놓을 수가 없는데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지금까지 6천만~7천만원의 인석이 수술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세들어 살던 집을 옮기면서 받은 전세금도 모잘라 2천만원의 빚을 진데다 앞으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치료비를 감당하기가 벅차기 때문이다.

인석이 아버지가 일용직으로 일하면서 한달평균 150만원 정도를 벌고 있지만 치료비용만 70만원정도 들어가고 있어 생활비 등을 모두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 울주군보건소에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선정될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을 전하고 있다.

황씨는 앞으로 적어도 5년정도는 수술경과를 지켜봐야 완치여부를 알수 있기 때문에 통원치료와 재활치료에 많은 시간을 보낼 계획이다.

"백혈병 환자에게 골수를 주는 사람은 어떠한 문제도 발생하지 않아요, 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일인데도 잘못된 선입견으로 너무 어려워 하는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어린아이에게 새생명을 줄 수 있도록 사회의 관심이 절실합니다"

이형중기자 leehj@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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