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센터서 출가 5개월 '5인의 동거'
복지사 닥달(?)덕 삶의 방식 체득중
반자립홈 '화봉댁이'따라가기 먼 길

몇 달재 꿈쩍않던 그들 변화의 징조 드러냈다

5개월 전 20대 남자 5명의 동거가 시작됐다. 이 집의 가장 격인 장준성(27·사회복지사)씨와 맏형 박민수(24·가명·정신지체장애 1급)씨 그리고 22살 동갑내기 권동권(가명·정신지체·언어장애 1급), 정천수(가명·정신지체장애 3급), 오상은(가명·정신지체장애 2급)씨가 바로 그들이다.

지난 11일 저녁, 준성씨와 4형제는 목욕탕을 다녀왔다. 목간 나들이는 '화봉댁이'와 함께 하는 큰 월례행사 중 하나다. 북구 연암동에 살고 있는 준성씨와 4형제는 '연암네'로 통한다. 이렇게 두 공동생활가정은 서로를 연암네(어울림연암공동생활가정)와 화봉댁이(어울림화봉공동생활가정)로 부른다.

이날 장애인복지센터 공동작업장에서 일과를 마친 이들은 평소같으면 저녁 준비, 세면, 빨래, 청소 등으로 한창 바쁠 시간이었지만 이날은 목욕 뒤 햄버거로 저녁을 대신해서인지 연암네로 돌아오자 이내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준성씨와 맏형인 민수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말수가 적은 편이지만 피곤해서인지 이날은 유독 말이 없었다. "전기코드 뽑을까요? 선생님" 동권씨가 입을 열었다. "세탁기 돌릴까요? 내일 아침밥 할까요" 준성씨와 4형제는 항상 이런 식의 말을 주고 받는다.

준성씨와 4형제 사이에 이 정도의 말을 자연스럽게 주고 받은 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장애인복지센터내에서 공동 생활을 하다 연암네로 출가(?) 한 뒤 한동안 4형제는 도무지 꿈쩍을 하지 않았다.

"옷 정리 하세요, 청소하세요, 씻으세요"라고 타이르는 준성씨와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4형제.

일반인들보다 새로운 환경에 조금 더 낯설어하고, 조금 더 어려워하는 4형제지만 연암네에 익숙해지면서 곧 제 할일을 찾아갔다.

2주 전께, 준성씨와 4형제가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날 저녁 메뉴로 어묵국이 선택됐다. 준성씨는 동권씨와 파트너가 되어 어묵국에 들어갈 재료들을 설명하고, 조리법을 알려줬다. 그리고 1주일 뒤. 저녁을 준비하려던 찰나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동권씨가 이미 어묵국에 쓰일 재료들을 조리대 위에 진열하고선 "선생님, 어묵국 해요"라고 말했던 것.

비록 사소한 변화지만 4형제는 이렇게 살아가는 방법을 익혀가고 있다. 센터에서 출가한 지 5개월 째, 준성씨와 4형제는 이제 서로 먹을 것을 챙겨주고 서로를 염려하는 어엿한 가정의 형태를 갖추어 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 배울 것도 많고, 해야할 일도 많다. 준성씨는 "아직 공동생활을 한 지 얼마되지 않아 옆에서 챙겨주지 않으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며 "하지만 5년째 공동생활을 하고 있는 화봉댁이 식구들을 보면 우리 식구들도 곧 혼자서 장도 보고, 식당도 이용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막 공동생활을 시작한 연암네가 '훈련홈'이라면 화봉댁이는 '반자립홈'으로 볼 수 있다.

연암네와 화봉댁이 등 정신지체장애인들이 공동생활가정에서 살 수 있는 것은 35세까지다. 이후 이들이 갈 곳이 마땅치 않다. 그때까지 공동생활가정에서 익힌 방법으로 홀로 살아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울산장애인복지센터 류춘희 원장은 "이들이 이곳에서 직업훈련을 통해 배운 기술만으로 일반 기업에 취업하는 것도 어렵고, 그렇다고 언제까지 가족에게 의탁해 살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아직 많은 장애인들이 공동생활가정과 같은 조금의 복지혜택을 누리지도 못할 뿐더러,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며 울산시와 북구청의 적극적인 장애인 정책 지원을 당부했다.

비록 지금은 이들이 다른 정신지체장애인들에 비해 조금 나은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들 역시 언제까지나 수혜의 대상일수만은 없다. 공동생활가정을 떠나 언젠가는 혼자서 살아가야할 날이 올 것이다.

장호정기자 zzangij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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