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직동리의 신흥마을은 경부고속도로가 철옹성처럼 가로막아 너른 들판을 끼고 있는 신화마을과는 같은 법정리에 속하지만 분위기는 전혀 딴판이다.

 언양~경주간 국도를 끼고 양 옆으로는 꽃집과 자동차 정비공장들이 늘어서 있지만 고속도로 아래의 출입구로 들어서면 완전히 다른 모습의 마을이 나타난다.

 야트막한 야산 등성이를 따라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과 그 사이사이에 놓여 있는 논과 밭들이 전형적인 시골농촌의 형상을 나타낸다.

 경부고속도로가 마을을 가로질러 한마을이 "도시티"가 물씬 나는 곳과 시골의 여느 마을같은 분위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으로 이색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토끼굴"같은 고속도로 아래로 난 출입로가 가슴에 "못"이 박혀 답답한 것을 싫어한다. 탁 트인 것이 모든 마을 사람들의 바람이다. 그래서 도로공사측에서 방음벽을 쌓아 주겠다고 하는 것도 마다했다. 방음벽이 들어서면 그나마 눈에 들어오는 언양읍네나 신불산쪽의 전경이 차단돼 동네가 산속에 같히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최근에 마을 주민들의 신경을 거슬리는 것이 또 들어서고 있다. 울산~상북간 4차선 도로가 언양읍을 비껴 직동리 방면에 들어서는 것이다. 평지보다 7m나 높게 쌓아 도로를 만들고 있기 때문에 혹시나 마을의 시야를 가로막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유지태 신흥마을 이장은 "신설·확장되는 울산~상북간 도로가 마을을 더욱 고립화 시킬 수 있다는 우려로 다리형식으로 고가차도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7m나 성토해 도로를 만들어 놓으면 향후 언양읍이 뻗어나갈 진출로를 가로막는 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언양읍에서 봉계방면으로 국도를 따라 가다보면 4차선 도로가 좁아지는 곳부터가 신흥마을이다. 가장 많은 가구가 거주하고 있는 새동네와 마을 구분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이어져 있는 왜골, 곧은골, 동사마을 등으로 이뤄져 있으며 언양읍과는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을 정도로 지척간이다.

 언양읍과 가까운 이점 때문에 "한지붕 두가족"이 많다. 출퇴근이 편하면서 시골의 전원생활을 할 수 있고 게다가 전세가 싸 인기다. 일반 농촌과는 색다른 모습이다. 지난 78년 정부의 취락구조개선사업의 일환으로 띄엄띄엄 흩어져 있던 동사마을과 돈밖고개 가구들을 한 곳으로 옮겨놓은 새동네(새마을)는 집들이 반듯반듯해 세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발걸음이 잦다. 새동네는 현재 50호가 채 안되지만 87가구에 이른다. 한집에 4가구까지 살기도 한다.

 세들어 사는 사람들이 늘면서 도심 번화가 골목에서나 있을법한 주차문제가 반상회의 주의제다. 지그재그가 주차하면 다니기 불편함으로 한 방향으로 주차해주기를 당부하는 것이 이장의 단골 방송메뉴다.

 중소기업과 변전소 등이 들어서면서 국도를 따라 땅값이 많이 올랐다. 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안쪽과 바깥쪽이 2배 가까운 격차를 보이게 됐다. 새동네로 이주할 당시 새로 집을 지을 형편이 안돼 돈밖고개와 동사마을에 그대로 눌러 앉은 10여 가구들은 땅값이 오른 덕에 훨씬 나아졌다. 반면 새동네로 이주해온 사람들은 그 당시 되레 비싸게 구입한 땅들이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해 다소 억울한 심정이다.

 새동네에서 "조합장"으로 불리는 이용규씨(74)는 "이주할 당시만 해도 새동네 땅값이 훨씬 비쌌으나 최근에 들어서는 완전히 역전돼 도로변이 2배는 더 비싸져 손등과 손바닥이 뒤바뀌었다"고 말했다.

 추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는데서 이름이 유래된 추성못과 그 아래의 추성들은 이름을 그대로 가지고 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현재 신흥마을에는 추씨가 1명도 없다. 각성받이들이 모여 살뿐이다.

 신흥마을 주민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부지런하다. 마을분위기가 아예 게으른 사람은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나이가 든 노인들도 움직일 힘만 있으면 어떤 형태로든 농사일을 돕는다. 그래서 이 마을 농군들 평균 연령대가 70대에 이를 정도다. 주부들도 식당일이든 중소기업이든 가리지 않고 한몫하고 있다. 언양읍이 가까운 이점도 있겠지만 전체적인 마을분위기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기와를 굽은 곳이었다는 데서 유래한 와골이 변한 왜골과 곧은골은 작은 고개를 경계로 이어져 있으며 대부분 논농사에 의존하고 있다. 골짜기마다 논밭이 있지만 주된 농터는 직동들이다. 구불구불한 시골길이 불편하기 짝이없지만 고속도로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10년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외부로부터 왕래가 차단된 것이 부작용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보니 시골의 순박함을 그대로 갖고 있다.

 국도를 따라 들어선 벽돌·석재공장 등으로 인해 농사를 짓는데 피해를 입기도 하지만 제대로 항의한번 하지 않고 그저 알아서 개선해 주기를 바랄뿐이다. 비가 온 뒤 흘러나온 돌가루로 논이 굳어지는 현상을 보이기도 했지만 주민들이 몰려가 피해보상을 요구한적이 없다.

 이용규씨는 "작은 업체들이 10여곳이 신흥마을에 속해 있으면서 마을을 위해 작은 도움도 준적이 없지만 어느 누구하나 큰 불만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주민들이 순박하다"고 말했다. 최석복기자 csb7365@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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