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기리는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에서 최고 "오지"다. 읍지역에 속해 있지만 시내버스가 다니지 않아 외부로 출입하려면 2시간은 걸어야 하는 옹태마을을 품고 있어 "산골중에 산골"로 통한다.

 언양읍에서 국도를 따라 봉계 쪽으로 가다가 직동들 한 가운데서 경부고속도로 아래로 우회전해 접어들면 태기리가 나온다. 마을 전체가 50여가구에 불과할 정도로 아담한 동네다. 사연댐 속에 절반 이상이 잠겨 반쪽을 잃어버린 마을이다.

 태기리는 1914년 태동(台洞)과 기지동(機池洞)이 합쳐진 이름이다. 기지동은 야산을 사이에 두고 긴 골짜기 2개가 나란히 뻗어 내려 가다가 사연댐에서 만나는 모습이 베틀 형상을 하고 있어 베틀 기자를 써서 기지동이라 했고 태동은 마을이 독처럼 생겼다거나 옹기를 구운 곳이라하여 생긴 지명이라 한다.

 태기리는 산으로 둘러쌓여 마을이 형성돼 있다보니 경부고속도로와 직선거리가 1㎞ 남짓하지만 불편한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이미 생활필수품이 돼버린 휴대폰 마저 이 마을에서는 무용지물이다.

 김정학씨는 "요즈음 같은 세상에 휴대폰 통화가 안되는 지역이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011이나 016, 017 할 것 없이 모두 다 먹통이어서 휴대폰은 외부에서 마을로 전화할때 밖에 사용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또 "토끼굴"같은 출입로가 경부고속도로 아래로 하나밖에 없다. 승용차만 겨우 다닐 수 있는 높이로 대형차량은 아예 드나들지를 못한다. 그래서 집이나 축사 등을 새로 짓거나 고치려해도 비용이 2배 가까이 든다. 고속도로 건너편까지 레미콘 차량이 와서 기다리면 작은 짐차(세렉스)로 받아 다시 마을까지 옮겨야 한다. 추가부담이 들 수밖에 없다. 그나마 비가 많이 오면 물에 잠겨 아예 통행을 막는다.

 많은 수는 아니지만 반곡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최소한의 통행이라도 할 수 있도록 해줬으면 하는 것이 마을주민들의 바람이다.

 서울에서 우체국장으로 퇴직한 뒤 현재 이 마을에 노후를 보낼 집을 짓고 있는 김성모씨는 "건축자재를 옮기기가 쉽지 않고 중장비와 대형차량이 다닐 수 없어 모든 건축 모든 공정에서 추가 공사비가 들었다"며 "수십년째 겪어온 불편에 대한 보상차원에서라도 출입로 확장대책이 따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노인들의 단체 나들이도 제약을 받는다. 관광버스가 마을까지 들어오지 못해 1㎞가량 걸어서 국도까지 나갔다가 돌아와야 한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많다보니 불편함 때문에 어지간하면 엄두를 내지 않는다.

 좁다란 골짜기를 따라 논과 밭이 이어져 있어 다닐 수 있는 길도 좁고 굴고이 질 수밖에 없다 경운기 한대나 겨우 다닐만한 농로가 2년전에 시멘길로 포장됐다. 양 골짜기가 연결되는 지점은 아직도 비포장으로 남아있다. 한전에서 철탑을 세우기 위해 포장한 덕을 본 셈이다.

 시멘길로 포장된 것이 최근엔 오히려 불편함으로 바뀌었다. 차량이 다닐 수 있게되면서 비만오면 낚시꾼들이 몰려 골칫거리로 등장했다. 교행이 어려운 농로에 차량 출입이 늘면서 차량과 마주치는 일이 잦아졌다. 후진도 제대로 하기 어려울 정도인 좁은 농로 탓에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다.

 김유식 이장은 "주말이나 비가 많이 오고 난 뒤에는 평균 30~40명의 낚시꾼들이 몰려 쓰레기를 마구 버려 사연댐을 오염시키는 주범"이라며 "심지어 동네 과수원에 피해를 입히는 낚시꾼들도 있다"며 단속을 주장했다.

 일요일인 1일 오후 7시께 두개의 골짜기가 만나는 지점에는 낚시꾼 차량이 20대나 가까이 길 가에 세워져 있어 차량 통행이 힘겨울 정도였다. 쓰레기도 여기저기 흩어져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사연댐에 마을 일부가 잠기기 전만해도 태기리는 여느 마을 못지않은 규모를 자랑했다. 현재 남아있는 옹태마을 주민들은 그 당시 수몰민들중 일부로 남은 농토를 버리지 못하고 주저앉은 사람들이다. 일부는 태기 본마을로 이주를 했다.

 김정학씨는 "만평짜리 밭과 3천석꾼이 살았다는 이야기가 내려 올 정도로 들판이 넓고 비옥했다"며 "지금 있는 논과 밭은 물에 잠기고 남은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물쓰듯 쓴다"라는 말은 이 마을에서는 맞지않는 말이다. 골짜기의 윗부분에 마을이 형성돼 있어 사연댐의 엄청난 물을 눈앞에 두고도 물부족에 시달린다. 지하수를 끌어 올려 흐드렛물은 그런대로 사용할 정도지만 식수가 문제다. 그래서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대곡댐이 완공되고 나면 상수도가 연결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러가지 불편한 점을 얘기하면서도 "자랑이랄 것 까지는 아니지만 태기사람들은 거의 다 가족처럼 지내고 있어요"라며 은근히 마을의 단합을 자랑한다. 마을이 외진 곳에 있다보니 서로에 대한 믿음이 남다르다. 이웃이 이웃이 아니고 가족이다.

 태기리 본 마을에서 10여분 이상 차를 타고 골짜기를 타고 내려가 긴 골짜기라는 뜻의 "장골"로 접어들면 집들이 띄엄띄엄 흩어져 있는 곳이 옹태마을이다. 물사정은 조금 나은 편이지만 언양읍까지 걸어서 2시간이상이 걸린다. 언양장에 가려면 새벽밥을 먹고 나서야 다른 동네사람들과 비슷한 시간에 맞출 수 있다. 그래서 이 마을에서는 젊은이들은 찾아 볼래야 찾을 수가 없다.

 옹태마을에서 "새댁"이라 불리는 한 아주머니(58)는 "옹태마을 만큼 남의 돈 구경하기 힘든 곳은 없다"며 "첩첩산중에 갇혀 있어 직업을 가질 수도, 하다못해 식당일을 할 수도 없다"고 푸념했다. 논과 밭이 생명줄인 셈이다. 최석복기자 csb7365@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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