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어음리(於音里)는 고헌산에서 발원해 직동들을 적시는 감천과 화장산에서 시작돼 마을을 감싸고 도는 남천이 합류되는 곳에 자리하고 있어 흡사 물위를 떠다니는 배 형국을 하고 있다.

 마을이 배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이 주민들에게는 단순한 형상으로 지나칠 일이 아니었다. 지금은 터만 남았지만 한 마을이 길을 잃지않고 풍요로워 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졌던 주민들은 배의 중심 역할을 하는 돛대를 마을 중앙에 높이 세워 놓았다. 사라호 태풍때 넘어진 돛대를 다시 세우지 않아 지금은 볼수 없지만.

 배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우물을 많이 파면 배가 가라앉아 마을이 번성하지 못한다고도 믿었다. 그래서 40~50년 전만해도 우물 파는 것을 마을주민들 스스로가 자제했다고 한다.

 이학봉(67) 어음상리 이장은 "풍수지리설에 따른 미신일 수도 있지만 우물이 여러 개 있었던 어음상리는 늘 먹고 살기에 바쁠 정도였으나 우물이 한개 뿐이었던 어음하리는 부자가 여러 명이나 있었다"며 "어음하리에 어느때부터인가 우물갯수가 급속히 늘면서부터 여러명이었던 부자들이 대부분 사업을 실패하거나 재산이 시름시름 줄어들어 다른 곳으로 떠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어 전혀 근거없는 이야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언양읍내 재화의 기운이 태화강으로 휩쓸려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위해 인공으로 산을 만들었다. 만든 산이라하여 "조산"이라 불렸던 이 산은 어음하리 끝부분에 있었으나 지금은 도로확장 공사에 파묻혀 형체를 찾기가 어렵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서 있어 농사일을 마친 농부들이 잠시 쉬어가는 쉼터가 되었고 어린이들의 놀이터로서도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자연을 슬기롭게 이용할 줄 알았던 조상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어음리는 70년대 이전만해도 꽤 오붓한 들판을 가졌으나 경부고속도로와 울산~언양간 지방도, 고속도로 진입로 등에 농지를 빼앗기고 그나마 남아있던 농토도 최근 또다시 울산~상북간 4차선 확장도로 또 잠식을 당했다.

 어음리는 동, 서, 남부리와 함께 언양읍을 이루고 4개리에 속하지만 읍내라는 분위기보다는 도시와 농촌이 만나는 중간지점으로 경부고속도로와 언양~울산간 고속도로, 울산~언양간 국도에 둘러싸여 있다. 언양 자연과학고등학교(옛 언양농고)를 기점으로 어음상리와 어음하리가 갈라진다.

 "차 떼고 포 떼고"라는 말처럼 고속도로와 국도 확장에 농토를 잃어버려 날개잃은 새처럼 농토도 없이 그저 마을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어음상리는 지난해 서울산인터체인지가 신설되기 전만해도 교통요지라는 이점이 있어 불고기 식당들이 번성했으나 지금은 원조격인 감나무집을 비롯한 5~6개 식당만이 명맥만 이어올 뿐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울산방면에서 언양을 찾는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어음하리에는 언양 명물이 2곳이나 있다. 걸죽한 인심이 묻어나는 우시장과 상큼한 향으로 이름난 언양 미나리꽝.

 우시장은 언양장날인 2, 7일에 선다. 인근 울주군 서부 5개면과 언양을 통틀어 유일한 "소전걸"이다. 장이 서는 날이면 걸쭉한 입담과 흥정을 붙이는 소장수들의 거래가 오간다. 멀리 청도, 밀양, 부산 인근지역에서까지 장꾼들이 몰려 북적댄다. 바쁜 걸음으로 먼길을 온 장꾼들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국밥집과 막걸리집들도 오전 8시부터 10시 사이 반짝 장사를 한다.

 지난 79년 언양장에서 떨어져 나와 어음리로 자리를 옮겨온 우시장은 언양장과 함께 어음리 주민들에게 짭짤한 수익을 선사했으나 조만간 다시 삼남지역으로 장터를 또 옮겨 갈 예정이어서 아쉬움을 주고 있다.

 강철우씨(72)는 "새벽부터 밤 늦도록 왁자지껄하던 소전걸에 모처럼 목돈을 쥔 농부들이 막걸리를 한잔 걸치고 그냥 돌아가기 섭섭해 소전걸을 배회하던 모습들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며 "요즘은 트럭에 소를 싣고 온 거간꾼들이 오전 한때만 반짝 장을 운영하고는 마무리한다"고 말했다.

 미나리꽝은 어음리 주민들의 생활터전인 동시에 언양을 대표하는 명물이다. 지난 90년대 중반 정부의 지원을 받아 대규모 미나리꽝이 들어섰다. 언양 사람들은 부푼 꿈을 안고 미나리를 재배했지만 판로가 뒷받침되지 않아 생각만큼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하지만 아직도 어음하리 들판에는 논 사이사이마다 미나리꽝이 농가 텃밭처럼 흔하게 늘려 있다. 평당 수확량이 한때 논농사보다는 짭짤하다는 소문이 돌면서 너도나도 미나리농사를 시작, 과잉 공급으로 가격이 폭락하기도 했다. 요즘도 일반 시중에서는 한단에 2천원가량 하지만 실제 생산자들 손에는 1천원도 쥐어지지 않는다.

 김옥선씨(64)는 "여름철 물량이 쏟아질 때는 1단에 500원 아래까지 떨어져 하루종일 베내도 4만~5만원 건지기 어려워 품삯도 안될 때가 종종 있다"면서도 "미나리는 초봄의 초벌과 가을 미나리가 맛과 향이 가장 뛰어나 가격도 제일 좋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6년여째 3천500평의 대규모 미나리꽝을 운영하고 있는 최재곤씨(30)는 "뻘밭이나 다름없는 미나리꽝 안에서 모든 작업이 이뤄지기 때문에 몸이 성한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여러가지 지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체계적인 판매망만 확보되면 제값을 받고 미나리를 생산할 수 있는데 아쉬움이 많다"고 말했다.

 미나리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들은 언양 미나리꽝이 예전같지 않은 수질로 소비자들로부터 믿음을 잃어가는데다 전문적인 생산체계가 갖춰지지 않아 생산자들끼리 가격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어음리 주민들은 미나리가 언양명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농협이나 울주군 등의 체계적인 행정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최석복기자 csb7365@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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