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관 청소…방과후 학습지도…교통안전봉사
26명의 노인들 인생경험 바탕 '사랑나눔' 실천
"대접받기보다 베푸는 삶 인생의 또다른 즐거움"

고령화 사회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부양 대상자로만 대접받아 왔던 '노인'에게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역할이 요구되는 게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다. 의료 발달로 젊은이 못지 않은 건강미를 과시하는 노인들이 늘어나면서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는 데 거부감을 느끼는 노인들도 늘고 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아직도 현장에서 땀을 흘리는 노인들이 있는가 하면 은퇴한 뒤 봉사활동을 통해 인생의 또다른 즐거움을 찾는 노인들도 있다.

봉사활동으로 인생 제2막을 열어가고 있는 노인들은 소개한다.

울산시 남구 문수실버복지관은 매일 오전 11시가 되면 시끌벅적해 진다. 이 시간이면 어김없이 복지관 식당문을 열고 들어서는 이영복(65)씨 때문이다. 젊어서 일하느라 봉사와는 거리가 멀었던 이씨는 이제 복지관 식당에서 청소 등 각종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며 걸쭉한 농담으로 웃음바다를 만드는 분위기 메이커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올해 초 문수복지관 개관 이후 이씨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식당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아파트 경비를 하면서 하루 4시간 밖에 잠을 못자지만 뭔가 보람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피곤한 줄도 모른다.

문수실버복지관에는 이씨 처럼 봉사활동으로 아름다운 노년을 만들어 나가는 노인들이 있다. 모두 26명의 노인들로 구성된 행복나눔 봉사단(단장 이영복)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젊었을 때의 경험과 능력을 바탕으로 스스로 아직 사회에 유용한 존재라는 인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아름다운 노후를 만들고자 모였다.

봉사단원 대부분은 복지관 내 탁구실, 도서실 등 9곳에서 청소와 관리 업무를 하며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봉사활동을 한다.

이들 중에는 옥현중학교에서 교사 섭외 요청이 들어와 방과후 학교 교사로 독서지도와 함께 한문, 과학을 가르치는 노인들도 있다.

젊은 시절 교수나 선생님, YMCA이사 등으로 활동한 노인들도 있고 주부, 농부로 평생을 산 노인들도 있다. 이들은 각기 다른 인생을 살아왔지만 지금은 봉사활동을 통해 인생의 제2막을 힘차게 펼치고 있다.

다소 힘이 들어도 봉사활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 노인들은 하나같이 나이 들어서도 뭔가 의미있고 보람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도서실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김옥순(70)씨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그만 두고 집에서 쉬고 있으니 처음엔 무릎만 아프던 것이 나중엔 마음까지 허해져 운동을 시작하고 봉사활동도 하게 됐다"며 "나이가 많다고 집에 있기 보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시간도 잘 가고 훨씬 보람있다"고 봉사활동 예찬론을 폈다.

대학교수로 후학 양성에 젊음을 바쳤던 박한래(78)씨는 "남을 돕는 봉사활동을 하는 것은 노인이 아름답게 늙어가는 과정"이라고 자신있게 대답했다.

행복나눔 봉사단원들의 활동은 남이 시켜서 하는 봉사가 아니라 마음으로 우러난 봉사인 만큼 뜻깊고 열정적이다.

이영복 단장은 "지난 여름방학 때 손자뻘되는 아이들이 봉사활동을 하러 왔는데 표정없이 의무감에 하는 걸 봤다. 그 아이들한테 나 같은 노인도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활동을 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었다"며 "나이 들었다고 대접받기보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걸 직접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 단장의 말은 일선에서 은퇴해 특별한 일없이 소일하고 있는 또 다른 노인들에게도 봉사활동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노후를 살아가라는 메시지인 셈이다.

이 단장은 "복지관 내 시설 봉사활동 뿐만 아니라 방과 후 교사나 교통안전 봉사단 처럼 활동영역을 외부로 더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며 "특히 정보가 없거나 손자들에게 묶여 활동하지 못하는 노인들을 앞에서 적극적으로 끌어주기 위해 홍보도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홍은행기자 redbank@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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