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유공자로서 받았던 사랑 이웃과 나누고파
태연재활원서 부모…시립요양원서는 자식 역할
일년에 두 번씩 협충탑 주변 청소…해설 봉사도

"부모님께 못다한 효도한다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울산시지부(지부장 고일성)에 소속된 회원들은 대부분 전쟁 중에 부모나 가족을 잃었다. 너무 어렸을 때라 부모님 얼굴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회원들이 부지기수다. 몇 십년이 흐른 지금 그들은 부모님께 하지 못한 효도, 형제·자매와 나누지 못한 정을 지역사회에 소외된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윤명숙 과장은 "어린 시절 부모님 없이 자랐던 기억 때문인지 노인들을 보면 어머니, 아버지 같아 한 번이라도 손길이 더 가는 것이 사실"이라며 "못다한 효도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는 지난 2003년부터 정기적인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국가유공자라고 해서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나누고 싶단 생각에 시작했다.

처음에는 태연재활원과 울산 곳곳의 경로식당 중 몇 곳을 돌아다니며 활동했다. 요즘은 중구 성안동의 시립노인요양원과 북구장애인보호작업장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유족회 회원 중에는 평소 일을 나가야 하는 이들도 있어 정기적인 봉사활동에는 30~40여명의 주부들이 많이 참석한다. 봉사활동을 시작한 이후 약 5년동안 장소는 바뀌었지만 매주 첫 번째와 세 번째 수요일마다 사회복지시설을 찾는 점은 똑같다.

유철식 사무국장은 "나눔은 전파될 수록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많은 사회복지시설이 있지만 항상 도움이 더 필요한 곳에 보탬이 되기 위해 시설을 옮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태연재활원에서는 유족회 회원들이 음식 솜씨를 발휘해 아이들에게 맛있는 간식을 만들어 준다. 태연재활원에 들어온 여러 가지 재료를 잘 이용해 감자를 삶기도 하고 전도 부친다. 조금은 부족해도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에 회원들이 얻어가는 즐거움은 더욱 컸다.

시립노인요양원에서는 자식이 된다. 가벼운 운동이 될 수 있는 레크리에이션도 하고 발마사지도 해 준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다.

윤 과장은 "손톱을 깎아주기도 하고 식사를 돕기도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그렇게 어렵거나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서 봉사활동이라 말해도 될 지 부끄럽다"고 말했다.

몸이나 마음이 아픈 노인들이 많다보니 순간 화를 내기도 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기분을 맞춰 주기 힘들때도 있다. 잠깐이나마 섭섭했던 마음은 고맙다는 말 한 마디에 눈 녹듯 사라진다.

또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반갑다고 얼굴에 한가득 웃음 짓고 버선발로 반겨주는 노인들을 보면 봉사활동을 시작하기 잘 했다 느낀다.

윤 과장은 "수지침이나 대체의학을 공부한 회원들은 봉사활동을 통해 어르신들의 쑤시는 몸 이 곳 저 곳을 만져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저마다 갖고 있는 기술이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이다.

유족회 회원들이 북구장애인보호작업장에 봉사활동하러 가면 일의 능률을 올리는 데 큰 몫을 담당한다. 비누를 만드는 작업장에서 두 세시간씩 장애인들과 어울려 포장작업을 돕는다.

보훈단체이다 보니 보훈가족 일에도 앞장선다. 고령이나 저소득 회원들의 안부를 묻고 형광등을 갈아달라거나 밭에 잡초 좀 뽑아달라는 일이라도 도움을 요청하면 언제든지 달려간다.

일년에 두 번씩 1400여 위패를 모셔둔 현충탑 주변 청소에도 회원들이 마음을 모은다. 또 각 지회별로 동천강, 정자 등을 돌며 환경정화활동을 벌인다. 자주는 아니지만 대전 현충원에 올라가 안내나 환경정리 봉사활동도 펼친다.

고일성 지부장은 "현충탑에 생각보다 많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찾는다. 아이들이 그냥 보고 스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설명을 해 주고 싶다"며 "지금은 요청이 들어올 때만 나서고 있지만 앞으로 꾸준히 해설이나 안내 봉사를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회원들은 국가유공자라서 예우만을 바라지는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고 지부장은 "처음에는 우리 보훈식구만 돌보기에도 빠듯해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에 인색했던 적도 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는 "나라를 위해 희생했던 만큼 우리의 자부심도 크다. 예우를 받는 만큼 직접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몫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홍은행기자 redbank@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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