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뮤어 트레일을 가다 - 1.상상하는 모든 걸 다 아우른 산맥

시에라 산맥 속 숨은 비경을 찾아서

티끌 없는 하늘 아래 사막 넘어서면

요세미티 계곡과 숲 완벽 반전의 묘

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길을 꼽으라면 전문가들은 미국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존 뮤어 트레일(John Muir Trail)을 뽑는데 주저함이 없다. 이것은 시사타임지나 산악전문지 그리고 트레블지에 의해 선정된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시에라네바다 산맥에 위치한 이 트레일(JMT)은 요세미티 계곡(Yosemite Valley)부터 미 본토 최고봉인 휘트니(Whitney·4418m)까지 약 340km의 산길을 말한다. 미국의 엄격한 환경법이 적용되는 자연생태보호구역으로 야성의 자연이 보존된 곳이다. 산악인 신영철(소설가)씨를 탐사대장으로 한 2008 존 무어 트레일(JMT) 탐사대가 지난해 8월18일부터 장장 17일간에 걸쳐 존 뮤어 트레일을 성공리에 종주했다. 신씨의 글에 재미교포 사진작가 윤재일씨의 사진을 담아 JMT 종주기를 연재한다. 존 뮤어 트레일 종주기를 국내 일간지 가운데 처음으로 본보 지면을 통해 소개한다.

당신은 소름이 돋을 만큼 멋진 풍경을 본 적이 있는가? 고개를 넘나들 때마다 넋을 잃고 주저앉은 이유는, 시야 가득 압도하며 다가서는 풍경 때문이다. 와이드 스크린처럼 눈앞에 펼쳐진 시에라는 우리가 산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걸 품고 있었다.

존 뮤어 산길에선 언제나 두 에너지가 맞부딪쳤다. 체력과 풍경. 누가 이기는가. 거친 숨결 속에서도 망막에 맺힌 영상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만큼의 천국이었다. 하얀 화강암 연봉, 빙하, 만년설, 세코이아 숲, 비취빛 셀 수없는 호수. 폭포에 뛰어 오르는 송어, 사슴, 곰, 다람쥐, 마모트는 우리와 함께 한 길 친구가 되었다.

그랬다. 종일 걷는 고된 노동에 적응되면서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모두 노래였고 시(詩)였다. 장쾌하면서도 시선을 압도했던 소품들은 아름다운 수채화 속 정물들이었다. 3000m 넘는 고개 10여개와 두 개의 4000m를 넘나들며, 17일간 고립되어 보낸 가공되지 않았던 야성 속의 시간들.

화가 황혜지씨, 사진작가 허준규씨와 함께 한국에서 출발한 날은 지난해 8월이었다. 미국에선 재미교포 친구인 윤재일이 길라잡이로 합류했다. 미국 속 한국이라는 LA에서 식량과 장비를 보충하고 7월18일 새벽, 출발지인 요세미티로 향했다. 북쪽을 향해 달리는 5번 고속도로를 따라 14번 도로를 만날 즈음 강렬한 태양 볕이 퍼붓는 모하비 사막을 만났다. 광활하고 편평한 사막의 끝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진정한 의미의 지평선이다. 선(線)처럼 불타는 사막에 죽- 그어진 도로는 원근법을 보는듯했다.

모하비 시(市)라는 갈림길 마을, 맥도널드에서 커피를 사기위해 차 밖으로 나섰을 때 얼굴에 다가서는 열풍은 사막이라는 걸 여실히 증명한다. 그 동네 곁 우주왕복선 비상착륙에도 사용되는 에드워드공군 비행장을 지나자 드디어 왼쪽으로 시에라 산맥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스페인어로 눈 덮인 산맥이라는 시에라 산맥을, 자연주의자이며 시에라클럽 창시자인 존 뮤어는 ‘빛나는 산맥’이라고 정의했다. 4000m가 넘는 산봉우리 연봉은 7월의 사막 태양아래에서도 만년설을 하얀 버짐처럼 군데군데 붙이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도저히 생물이 살 것 같지 않은 사막 속의 산. 저 산속에 존 뮤어 트레일이라는 비경이 숨어있다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 불가능이다.

차를 달린지 5시간 만에 큰 나무가 있어 이름 붙였다는 전형적 서부마을 ‘빅 파인’이 나타났다. 포장마차를 끌고 서부를 횡단하는 총 찬 존 웨인 류의 서부극에 실제로 자주 등장한 마을이다. 이곳은 긴 여정을 끝낸 우리 팀이 하산할 마을이기도 하다. 존 뮤어 산길을, 남에서 북쪽으로 운행할 때는 이곳이 시발점이다. 우리처럼 북에서 남쪽으로 내려 올 땐 종점이 되는 곳이다. 우린 고소적응을 위하여 요세미티에서 남으로 내려오는 경로를 선택했다. 트레일의 북쪽 끝은 요세미티 계곡이고 남쪽 끝은 미 본토 최고봉인 마운틴 휘트니를 거친 휘트니 포털이다. 포털에서 차량으로 이동하며 처음 만나는 마을이 빅 파인이다.

이곳에선 마운틴 휘트니(4450m)가 자세히 보인다. 비현실적으로 파란 하늘을 찌르듯 솟구친 화강암의 날카로운 정상이다. 그 아득한 산정을, 우리는 반대쪽에서 17일을 걸어 올라설 것이다. 곰과 사슴이 어슬렁거린다는 산길은 먹고 자야 할 짐을 스스로 지고 가야하는 곳이다. 팀원 중 누구 한명이라도 탈이 난다면 전원이 하산해야 한다. 탈출도 쉽지 않다. 최소 2박3일은 걸어야 겨우 도로를 만난다. 과연 우리가 무사히 탐사를 마칠 수 있을까.

사람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가장 이상에 가까운 곳이 시에라네바다 국립공원이라 말한다. 그 산맥 속살을 헤집으며 이어진 340km의 존 뮤어 트레일 종주는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으나 입산 허가를 받는데 상당히 까다롭다. 자연을 보존하고자 입산인원을 엄격하게 제한하기 때문이다. 막막한 두려움 속에 다시 올려다 본 휘트니는 올 테면 와 보라는 듯 홀로 고고하다.

아무리 사막이라지만 어떻게 구름 한 조각 없을까. 저 광폭한 햇볕 아래의 산에 그렇게 많은 호수가 있고, 고생대 나무라는 세코이아 숲과 동물이 서식한다는 게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프랑스 소설가 생텍쥐페리는 그의 성인용 동화 어린왕자에서 이렇게 속삭인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그 속에 오아시스를 숨겨 놓은 때문”이라고. 사막의 산맥이라 그래서 물을 숨겨 놓아 아름다운 걸까.

겨울이면 폐쇄 된다는 티오가 고개를 넘으며 풍경은 사막에서 홀연히 숲으로 바뀌었다. 거기서 내려다 본 요세미티 계곡 풍경은 굉장했다. 1000m 높이로 솟아 오른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인 하프돔이 보였고, 900m미터 깊이로 파인 요세미티 계곡이 한눈에 든다. 계곡은 세코이아 나무숲으로 푸르렀다. 완벽한 반전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야할 방향이 어딘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우리의 행정은 첩첩 겹쳐진 산 속 미로 찾기가 될 건 분명했다.

오후 6시가 넘어 출발지인 요세미티 계곡 초입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수직고도 1000m가 넘는 대장바위 엘캐피탄이 반기고, 표고 739m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요세미티 폭포가 하얗게 물을 뿜고 있다. 과연 이곳 사진이 세상 달력 그림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는 말을 실감한다. 재미한인 산악회 회원들이 미리 잡아 놓은 ‘어퍼 파인 캠프장’에 종일 고단했던 여장을 풀었다. 내일이면 본격적으로 다리품을 팔아야한다.

글=신영철(산악인·소설가) 사진=윤재일(재미교포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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