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이제는 당당한 울산인 - 몽골어 통·번역사 강나라씨 -

5년전 몽골서 낯선 울산으로 시집와 문화 격차도 거뜬히 적응
통·번역사로 맹활약…몽골 결혼이민자들의 해결사 역할 척척
사회적 편견 아프지만 사랑하는 한국에 도움되는 인재 되고파

▲ 강나라씨가 몽골 결혼이민여성의 전화 상담을 하고 있다.
#장면1. 한 여성이 중앙병원 응급실로 후송됐다. 손짓 발짓 모두 동원해 통증을 호소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다. 간호사와 의사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누군가를 기다린다. 10여분 후. 키 160㎝에 검정색 단발머리를 한 여자가 다가오더니 다친 여성의 자초지종을 듣고, 의사에게 곧바로 전달한다. 덕분에 무사히 치료가 끝났다.

#장면2. 울산가족문화센터 3층에 위치한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사무실. “바야르타이 바이나(반갑습니다)” “하람살테(안타깝군요)” “후츠테바이(힘내세요)” “히체즈 암드르차가아야(열심히 삽시다)”…. 알 수 없는 이상한 언어들이 전화선 너머로 오간다. 얼굴을 찌푸리기도 하고, 안타까운 듯 눈시울을 적시기도 한다. 전화 수화기를 움켜쥔 이 여성은 중앙병원 응급실에서 봤던 이다. 옆자리 한 직원에게 물어보니 몽골에서 갓 시집온 이주여성과 전화상담을 하고 있단다.

보슬비가 지겹게도 내리던 지난 11일 오전 몽골 출신 강나라(29)씨가 일하는 모습이다. 언뜻 보면 한국사람 같기도 하고, 달리보면 러시아사람 같다. 본래 몽골 사람이다.

그런데 한국 남자에게 시집을 와 귀화까지 했으니 한국사람, 울산사람이다. 이름도 헤를렝치멕에서 강나라로 바꿨다. 시아버지가 붙여준 이름에 친정아버지의 이름 ‘간바트(Ganbat)’에서 한 글자를 따 강나라로 지었다.

강씨의 직업은 울산과 경남지역에 사는 몽골 출신 결혼이주 여성들을 대상으로 통역과 번역 서비스를 해주는 전문 직업인이다. 한국 이름도 가졌고, 한국인 남편 사이에서 딸도 낳아 5살이 됐고, 한국인들이 인정하는 직업도 가진 당당한 한국인, 당당한 울산인이다.

◇몽골 출신 결혼이민자들의 해결사

▲ 강나라씨가 종합병원 응급실로 들어온 몽골 결혼이민여성 환자와 의료진 사이에서 통역을 하고 있다.
강나라씨는 지난 3월16일 울산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몽골어 통·번역사로서 한국에서의 첫 직장을 얻었다. 2004년 울산으로 시집 온 이후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고급 수준까지 한국어 실력을 연마했다.

또 한국외국어대학교 다문화연구센터에서 통·번역 전문교육을 받았고, 3개월마다 한 번씩 보수교육도 따로 받고 있다. 지난 5년간 전업주부로만 지내다가 직장을 갖게 돼 날아갈 듯이 기뻤단다.

항상 기쁜 마음으로 일한다는 강씨는 몽골 출신 결혼이민자들의 구세주다. 울산과 경남지역에서 살고 있는 결혼이주 여성 100여명과 그 가족들에게 의사소통의 끈을 이어주고 있다.

결혼이주 여성 당사자들에게는 한국생활의 고충, 문화차이에서 오는 어려움, 고부갈등 등에 대한 상담을 해준다.

또 몸이 아파 병원에 갈 때도, 은행 업무를 볼 때도 강씨는 어김없이 그들의 입과 귀가 돼주고, 결혼이주 여성 자녀들을 위해 학교, 어린이집, 유치원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간다.

특히 용어가 어렵고 절차도 까다로운 출입국 관련 업무도 척척 도와준다.

결혼이주 여성 가족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한국말이 서툰 몽골 며느리와 원활한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서로 간에 생긴 오해와 상처를 따뜻하게 보듬어주기도 한다.

매일 3~4통의 상담전화를 받기도 하고, 몸이 다쳐 병원에 누워있는 결혼이주 여성을 위해 한 달음에 달려가기도 한다. 강씨는 통역 봉사 외에도 다문화가정을 위한 각종 설문조사 자료를 몽골어로 번역해 그들에게 지원해 주기도 한다.

강나라씨는 “비록 국적을 포기하긴 했지만 모국 출신 결혼이주 여성들의 선배로서 내가 익히고 배운 지식과 노하우로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게 너무 보람있고 즐겁다”며 웃었다.

◇사랑해서 온 한국, 편견은 가슴 아파

몽골대학 다음으로 명성이 높은 과학기술대를 졸업한 강씨는 평소 외국인과 결혼해 더넓은 세상에서 살고 싶었다.

그래서 업무차 몽골에 체류중이던 현재의 남편 이재호(37)씨를 지인의 소개로 만나 사랑했고, 2004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007년 6월 남편의 권유로 귀화신청을 했고, 지난해 12월 주민등록증도 받았다.

자랑스러운 한국인이 된 그녀였지만, 상처 또한 많이 받았단다.

“말은 잘 타느냐”, “못 사는 나라 몽골에는 초원만 있느냐”는 등의 편견과 오해 때문에 세상에 나올 엄두 조차 내지 못했단다.

한국의 TV프로그램이 몽골의 시골모습만 집중 조명하다보니 몽골의 본 모습이 제대로 알려지지 못하고 있다는 게 안타깝단다.

강씨는 “나 또한 한국이 잘사는 나라로만 알았는데, 어두운 면도 많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국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인들이 잘못 알고 있는 몽골의 모습을 제대로 알려나가고 싶다”며 두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남자가 여자보다 더 대접받는 풍토와 고부갈등 등은 아직도 낯설다는 강씨는 이내 “하이르타이 한국”이라는 말로 분위기를 바꿨다. 한국을 사랑한다는 말이다.

◇한국인 위해 도움 주는 한국인 되고 싶어

강씨는 보다 전문적으로 공부를 해 몽골 출신 결혼이주 여성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주는 최고 수준의 통·번역 전문가가 되고 싶단다.

또 남편과 시부모님이 가장 인정해 주는 ‘김치찌개’ 요리솜씨를 넘어서는 필살기 요리도 배우고 싶다고 했다.

나아가서는 대학에 진학해 사회복지학을 전공, 몽골 출신 결혼이주 여성 뿐만 아니라 사회소외계층들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사회복지사로 자리매김하고 싶단다.

“귀화 전 몽골인으로서 한국인으로부터 받았던 것들을, 같은 한국인, 같은 울산인이 돼 고스란히 베풀고 싶습니다.”

몽골인 아닌, ‘울산아지매’ 강나라씨의 맹활약이 기대된다.

글=배준수기자 newsman@ksilbo.co.kr 사진=임규동기자 photolim@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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