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 울주군 범서읍 굴화리(屈火里)는 울산시가지와 울주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마을로 최근들어 신흥 주택지로 급부상한 마을이다.

 삼한시대 굴아화촌(屈阿火村)이라는 부족마을을 형성했을 정도로 역사가 깊은 굴화리는 태화강변의 풍요로운 시골에 불과했으나 70년대 공업화 물결에 파묻혀 점점 그 모습을 잃어 가고 있다.

 울산시가지의 팽창에다 울산~언양간 고속도로, 24호 국도가 마을을 3등분하면서 굴화리는 토막나기 시작했다. 송전탑에다 부산~포항 고속도로, 인터체인지 등도 조만간 들어설 예정이다. 울사시가지와 인접해 있으면서 울주군에 속한 탓에 고스란히 피해를 입고 있는 지역이다.

 굴화리의 굴화마을은 굴화초등학교 옆 길을 따라 무거동과 경계를 이루면서 국도 24호선을 따라 대형음식점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신유흥지로 급부상하고 있으며 도로 건너편 강변 그린빌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면서 더욱 번창하고 있다. 불고기식당과 횟집, 노래방, 칼국수 식당 등에다 최근엔 대형 목욕탕, 정형외과, 약국, 카센터까지 가세해 여느 시가지 못지않다.

 IMF 당시만 해도 주택공사에서 세일분양을 할 정도로 천덕꾸러기였으나 지금은 금싸라기 땅으로 변했다. 평당 땅값도 430만~440만원을 호가할 정도다. 분양 당시 170만~180만원에 비하면 3배 이상 급등했다.

 이같은 현상은 인근 주택가에 까지 영향을 미쳤다. 도로 사정이 좋아진데다 울산시가지나 다름없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하루가 다르게 빌라 등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굴화리 주민 강영복씨(43)는 "최근 짓기 시작한 빌라는 건물이 올라가기도 전에 분양이 끝날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장검마을도 무거초등학교 인근을 중심으로 빌라와 아파트가 한창 들어서고 있다. 한라아트빌 아파트 150가구를 비롯해 현재 건물이 거의 완공단계에 이른 아람프라임빌 등 최근 3년여새 모습이 크게 바뀌었다. 한솔농원을 경계로 백천마을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백천마을은 3개 자연마을 가운데 유일하게 30여년 동안 개발제한구역에 묶여 있는 곳이다. 주택 증·개축도 엄격한 통제를 받아 온 마을 주민들은 피해의식이 크다. 백천마을 윤준열씨(68)는 "정부가 마음대로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어 30여년 동안 꼼짝 못하도록 해놓고서는 고속도로 확장공사나 부산~포항 고속도로 신설, 인터체인지, 송전탑 건립때마다 엄청난 불이익을 주고 있다"며 "같은 굴화리에 속한 땅인데도 불구하고 보상 땅값이 3~4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고속도로와 국도로 3등분 된 백천마을은 조만간 다시 갈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인터체인지가 들어서면서 안마을 6가구는 완전히 고속도로에 포위 당하는 꼴이 됐다.

 홍풍길 백천마을 이장은 "고속도로에 둘러싸이게 된 가구에 대해 이주를 요청했으나 묵묵부답"이라며 "주민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말이 "백천마을 사람들은 사람도 아인기라"라는 자조섞인 푸념"이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주민들의 정서까지 메마르게 하고 있다. "이장 하겠다"는 사람이 나서지 않을 정도다. 살고 있는 집마저 증·개축이 여의치 않은 것 때문에 자식들이 들어와 함께 살려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

 백천마을의 상징처럼 마을을 지켜오던 단감나무밭과 배나무밭도 마을 규모 만큼이나 줄어들고 있다. 송전탑과 고속도로 확장·신설로 올해들어서만 1천여 그루가 뽑혀져 나갔다.

 국도 24호선 건너편 장판들에는 4~5년전부터 화훼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해 지난해 4차선 확장공사가 끝나면서 부쩍 늘었다. 농토 주인은 대부분 굴화리 주민들이지만 전문 화훼농가들이 땅을 빌려 이곳에서 자리를 잡았다. 현재 10여곳이 도매와 소매 식물원을 운영하고 있다.

 태화강을 낀 풍요로운 굴화리의 모습은 도로와 아파트에 내몰려 울산시민들의 기억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최석복기자 csb7365@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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