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공부하는 노인들 - ② 문수실버복지관 ‘실버 바리스타’ 교실

2011 대한민국은 말 그대로 커피공화국이다.
아침을 시작하는 모닝커피, 노곤한 잠을 깨우는 사무실 커피믹스, 5000원 짜리 백반 값을 위협하는 커피전문점까지. 시장 포화와 원가 문제 등 수많은 논란에도 커피를 즐기는 문화는 여전히 확산되고 있다.
최근 한 식품업체가 공개한 ‘한국 커피 소비통계’를 보면 지난해 국민들이 마신 커피는 무려 228억잔이다.
한사람씩 계산하면 1인당 452잔, 잔수를 기준으로 우리 국민이 마신 음료의 절반 이상(55%)이 커피다.
이렇게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잡은 커피. 노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울산의 중심에서 ‘아메리카노’를 외치며 노인들의 커피문화를 퍼뜨리는 ‘실버 바리스타’ 교육 현장을 찾아갔다.

스타벅스 지원사격 커피만들기 강의
처음 생소한 이름 외우기 어려웠지만
원두 선별법에서 로스팅까지 ‘열공’
관련 문화도 배우며 실습으로 마스터

◇커피 전문가를 꿈꾼다= 지난달 26일 남구 무거동에 위치한 문수실

▲ 스타벅스코리아 직원이 노인들에게 커피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버복지관에서 특별한 수료식이 열렸다. 석달동안 커피 향에 취했던 18명의 노인들이 ‘실버 바리스타 교육’을 마친 것이다. 바리스타(Barista)란 커피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사람을 뜻한다. 젊은이들의 전유물로만 느껴졌던 ‘캐러멜 마키아또’, ‘에스프레소’ 등 생소한 이름의 커피를 노인들이 직접 만드는 것이다.

문수실버복지관의 노인들은 복지관 내 마련된 ‘실버카페’ 덕분에 전문적으로 바리스타 교육을 받는다. 지난 2008년 3월 복지관 내 문을 연 이 카페를 노인들이 직접 바리스타가 돼 운영한다. 하지만 처음에는 전문적 교육이 아닌 주먹구구식 단발성 바리스타 교육때문에 카페 운영에 한계가 있었다. 노인들의 이러한 애로사항을 알게 된 복지관 측에서 울산 시내 커피전문점에 바리스타 교육 지원을 요청했고, (주)스타벅스커피 코리아가 ‘재능기부’라는 사회적 공헌 활동으로 대답했다.

▲ 문수실버복지관에서 진행된 실버바리스타 과정에서 한 할머니가 직접 커피를 만들고 있다.
(주)스타벅스커피 코리아는 평소 다문화 결혼이민여성, 장애우,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바리스타 양성 교육을 실시해왔다. 사내 강사 자격을 갖춘 스타벅스 직원들이 재능기부 형태로 커피 지식, 음료 제조법, 서비스 및 위생 관리, 매장 실습 등을 직접 지도하는 것이다. (주)스타벅스커피 코리아 울산성남동점 진명갑 점장은 “지역사회의 실버 바리스타를 육성하는 것이 사회공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회사의 생각과도 같아 제안을 받아들이게 됐다”고 했다.

그렇게 12주간의 정식 교육은 시작되었다. 첫 시작은 호칭의 변경이었다. 노인들의 자존감을 높이고자 수십 년간 불리던 아무개 엄마가 아닌 ‘들국화’, ‘줄리엣’ 같은 바리스타 자신만의 이름을 가지게 했다. 커피에 대한 공부도 확실하게 했다. 좋은 원두를 선별하는 법부터 로스팅, 커피전문용어까지 전반적인 커피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노인들만 찾는다는 ‘다방분위기’를 없애고자 커피와 관련한 음악, 문화 등도 함께 배웠다. 실습 교육도 중요했다. 커피의 가장 기본이 되는 에스프레소, 달콤한 맛과 향을 지닌 캐러멜 마키아또 등 다양한 커피를 만들며 노인들은 실버 바리스타에 한 발짝 다가갔다.

▲ ▶지난달 26일 문수실버복지관에서 실버 바리스타 수료식이 열렸다.

하지만 모든 과정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정부에서 복지관에 지원된 보조금이 부족해 교육에 쓰이는 재료들을 충분히 구비하지 못하는 것이다. 교육에 참가한 한 노인은 “선생님이 두 번 따라 붓고 남은 우유는 버리라고 했는데 아까워서 버릴 수가 없었다”며 “우유 한 통 더 있으면 카페라테 두 잔 더 연습할 수 있는데 안타깝다”고 아쉬웠던 일을 회고했다. 문수실버복지관에서 노인들을 가르친 진명갑 점장은 “복지관에선 커피를 만드는데 쓰이는 우유, 생크림 등이 한정돼 실습을 충분히 하지 못해 아예 가게에서 재료를 들고 갔다”며 “바리스타 교육에선 실습이 생명인데 이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많아지면 어르신들이 좀 더 많은 연습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전문교육 지원이 노인일자리 창출한다= 문수실버복지관에서 노인 일자리 사업을 맡아 관리하는 이영권 복지사는 실버 바리스타 교육이 결국 노인 일자리 사업을 거쳐 사회적 기업, 시장형 창업으로 발전하는 것이 근본적인 목적이라 말했다. 결국 노인들 스스로 홀로서기가 가능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실버 바리스타가 운영하는 테이크아웃(Take-out) 커피전문점인 ‘실버커피토마토1호점’이 부산도시철도 수영역에 처음 문을 열었다. 부산지역 향토기업인 (주)커피토마토가 지역 사회공헌의 일환으로 실버 바리스타 교실을 운영한 뒤 이어 직접 커피전문점을 연 것이다.

전국적으로 각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실버카페는 활성화됐지만 커피토마토처럼 민간에서 노인들을 교육시키고 카페까지 운영하는 것은 이곳이 처음이다. 현재 이 카페를 꾸려나가는 노인 6명은 모두 55세에서 65세의 여성으로 커피토마토가 마련한 실버 바리스타 8주 교육과정을 이수했다.

커피토마토의 김문성 과장은 “바리스타 교육은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한글교육이나 컴퓨터 교육과는 다른 전문인 양성교육”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전문인 교육을 활성화 시킨다면 잡초 뽑기 등이 대부분인 노인 일자리 사업이 좀 더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박소영기자 sysay@ksilbo.co.kr

‘멋쟁이 어르신’을 소개합니다
“카페라테 자신 있어요”

다방커피가 최고였던 김이순 할머니
바리스타 교육 후 실버카페 팀장 활동
“이곳에서 경력 쌓아 카페 열고 싶어”

“방실이, 여기 아메리카노 두잔 주세요.” “네, 손님. 금방 준비합니다.”

요즘 김이순(66·사진) 할머니는 본명보다 ‘방실이’라는 별명을 더 많이 듣는다. 방실이는 문수실버복지관 내 실버카페에서 불리는 애칭이다.

“결혼하고 나서 남편과 함께 다방을 수시로 다녔습니다. 설탕 둘, 프림 두스푼의 다방커피를 참 좋아했지요. 그렇게 주부로 40년을 살다가 우연히 문수실버복지관 실버카페를 알게 되고 그 후로 학교 다니듯 실버카페를 다녔죠.”

커피가 좋아 시작된 실버카페와의 인연은 지금의 실버 바리스타 팀장이라는 중책으로 이어졌다. 전문 바리스타로서 활동하려니 커피에 대한 전문적 지식의 한계를 느꼈고 결국 복지관에 지원 사격을 요청하게 됐다.

12주 교육동안 한 번도 결석하지 않고 꼼꼼히 메모도 해 가며 열심히 배웠습니다. 이젠 카페라테가 가장 자신 있는 메뉴입니다.”

실버카페는 정식 교육을 받은 15명의 할머니가 꾸려간다. 이는 복지관에서 시행하는 노인 일자리 사업과도 연결된다. 매주 9시간 한 달에 36시간을 카페에서 보내면 월 20만원의 지원금도 나온다.

김 할머니가 직접 내린 커피를 맛보는 손님들은 대부분 복지관을 찾은 노인들이지만 근처 우신고등학교 학생과 선생님도 싸고 맛있는 커피 맛에 반해 종종 온다. 이날 컴퓨터 교실을 마치고 실버카페를 찾은 유익자(70·남구 무거동)할머니는 “이 곳에서 아메리카노를 처음 접했다”며 “이제 아메리카노 없이는 못산다”고 실버카페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동석한 홍봉서(67·남구 무거동)할아버지도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시내의 카페에선 마음 놓고 커피를 마실 수 없었다”며 “우리가 마음놓고 웃고 떠드는 유일한 아지트”라고 엄지를 추켜세웠다.

“이 곳에서 경력을 쌓아 꼭 나만의 카페를 열고 싶어요.”

김 할머니가 마음 속 고이 접어두었던 꿈을 수줍게 전했다. 박소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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