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공부하는 노인들 - ④ 검정고시 준비하는 노인들

교육을 통해 얻은 능력, 이를 응용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능력이 학력(學力)이지만 우리는 대부분 개인이 거쳐 간 학교의 이력인 학력(學歷)에 집중한다.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보다 어떤 대학을 나왔는지 더 중요한 시대다.
이런 사회적 인식 속에 가난, 전쟁 등으로 배움의 시기를 놓친 노인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진정한 학력(學力)을 쌓으며 학력(學歷)도 얻는 이들이 있다.
바로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노인들이다.

5년간 60세이상 검정고시 합격자 47명
지역 야학 3곳에서 노인 대상 고시강의
평생교육기관 등 학력 취득 통로로 활대

◇졸업장 지름길은 검정고시= 어떤 노인들은 졸업장을 받기 위해 뒤늦게 학교에 재입학하기도 한다. 그러나 매우 드문 경우다. 정규학교를 다니는 것 외에 졸업장을 따기 위한 지름길이 검정고시다.

▲ 27일 울산대학교 문수야학에서 노인들이 검정고시 수업을 듣고 있다.

검정고시는 중고등학교 및 대학교의 입학자격과 그 자격에 필요한 지식 학력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를 검정하기 위해 실시하는 국가고시다. 매년 4월과 8월, 2번의 시험이 있다. 전 과목 평균 60점을 넘으면 합격이다. 시험은 필수과목과 선택과목으로 나눠 실시된다. 중입검정고시가 필수 4과목(국어, 수학, 사회, 과학)에 선택 2과목, 고입검정고시가 필수 5과목(국어, 수학, 영어, 사회, 과학)에 선택 1과목, 고졸검정고시가 필수 6과목(국어, 수학, 영어, 사회, 과학, 국사)에 선택 2과목이다.

검정고시는 일단 한과목이라도 60점이 넘지 않으면 평균 60점이 넘어도 합격을 인정하지 않는 과락 제도가 없다. 또 평균 60점에 미달이지만 시험 친 과목 중 60점이 넘은 과목은 합격으로 인정해 다음번에는 시험을 치지 않는 과목합격제도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뒤늦게 학력을 취득하고자 하는 노인들이 응시한다.

하지만 정규과정으로 몇 년이 걸리는 중등, 고등교육 과정을 단번에 합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울산시교육청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60세 이상 전체 검정고시 합격자는 매년 10명 안팎. 중입, 고입, 고졸검정고시 합격자를 모두 합친 숫자다.(표 참조)

▲ 한글을 공부하는 노인의 손에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다.

◇전문 학원? 지역 야학!=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노인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은 바로 학원이다. 암기과목은 독학으로 공부할 수 있지만 수학, 과학 같은 경우는 혼자서 공부하기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남구 달동의 한 고시학원 강사는 “고입 검정고시의 경우 우리 학원에는 40~50대가 대부분이지만 60대 어르신도 3명 있다”며 “교과서, 문제집, 모의고사, 동영상까지 합격에 무리가 없도록 노인들을 가르친다”고 했다.

하지만 짧게는 1년, 길게는 수년이 걸리는 검정고시 준비에 월 25만원의 수강료는 노인들에게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럴땐 지역 야학을 찾으면 된다. 울산에서 노인들을 위해 검정고시 강의를 하는 야학은 남구 무거동 울산대학교 동아리인 문수야학, 중구 반구2동에 위치한 울산시민학교, 북구 양정동의 동광 새마을학교 등이다. 울산대학교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운영하는 문수야학은 전액 무료이며 다른 곳은 월 5만원의 수강료를 받는 대신 노인들을 위한 중식을 제공하고 있다.

울산시민학교의 김동영 교장은 “처음엔 졸업장이 무슨 대수냐며 검정고시를 기피하던 어르신들도 막상 졸업장을 받는 순간 눈물을 글썽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누구에겐 종이 한 장이지만 늦깎이 공부로 어렵게 얻은 졸업장이 어르신들에겐 큰 의미”라고 말했다.

문수야학 이우영(25·울산대 일본어학과 4학년) 교장은 “지역 사회를 위해 대학생들이 나서서 무료로 하는 강의인 만큼 많은 분들이 오길 바란다”고 했다.

◇학력 인정받는 또 다른 방안은= 최근 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던 검정고시 외에 다른 방안도 제기돼 눈길을 끈다. 2009년 개정된 ‘평생교육법’은 평생교육기관에서 취득한 학력을 인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평생교육시설에서 각종 교양과정이나 자격취득에 필요한 과정을 이수한 자에 한해 학력을 인정해 준다는 것이다. 올해 초 서울에서부터 시범적으로 실시됐으며 조만간 부산, 울산 등으로 확대될 계획이다.

이 방안이 활성화 된다면 노인들은 굳이 검정고시가 아니더라도 평생교육기관에서 일정 교육을 이수해 학력을 취득할 수 있다.

울산시민학교 김동영 교장은 “어르신들이 봉사활동 등 노년에 새로운 활동을 하고 싶어도 학력이 미진해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며 “다양한 학력 취득 방법이 마련돼 어르신들이 제2의 인생을 사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박소영기자 sysay@ksilbo.co.kr

■최근 5년간 울산 60세 이상 검정고시 합격자

  중학교 입학 고등학교 입학 고등학교 졸업
2007년 1명 4명 3명
2008년 4명 1명 6명
2009년 4명 1명 3명
2010년 2명 4명 6명
2011년
(4월시험)
4명 3명 1명

‘멋쟁이 어르신’을 소개합니다 - 고입 검정고시 준비하는 유말송 할머니

“공부해야 한다는 오기로 달려들었죠”

“어르신, 이런건 굳이 다 안 적어도 됩니다.”
“선생님, 그래도 하나하나 다 적어놔야 나중에 기억을 하지요.”


지난 27일 울산대학교 문수관 강의실에서 난데없는 실랑이가 벌어졌다. 칠판에 빼곡히 적힌 내용을 한 글자도 빼먹지 않으려는 학생과 오늘 예정된 진도를 나가야 하는 교사의 ‘귀여운 싸움’이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유말송(74·사진) 할머니가 학생, 손자뻘인 우원석(26·울산대 물리학과 4학년)씨가 교사다. 조금은 특이한 사제지간인 이들은 울산대학교 동아리인 ‘문수야학’을 통해 처음 만났다.

유 할머니는 문수야학의 최고령 학생이다. 할머니의 목표는 오는 8월에 있을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하는 것. 지난 2002년에 독학으로 고입검정고시를 치뤘지만 영어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절했다. 그러다 지난 5월 울산시노인복지관에서 “야학에서 노인들을 위해 무료로 검정고시 공부를 가르쳐준다”는 얘기를 듣고,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검정고시를 치고 싶은 마음에 학원도 생각했지만 비용이 부담돼 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문수야학을 알게 됐고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

늦은 나이에 다시 책을 펼친 이유는 다름 아닌 ‘오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졸업장은 있지만 전쟁 통에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여자는 공부보다 집안일을 도와야 한다’는 사회의 인식도 걸림돌이었다. 결혼을 하고 두 아들을 키우면서도 배움에 대한 열망은 커져갔다.

“처음 용기를 내는 것은 어려웠지만 그 후엔 일사천리입니다. ‘꼭 공부해야만 한다’는 오기로 똘똘 뭉쳐 달려드니 안되는 게 없었습니다.”

2002년 영어 이외의 과목은 모두 합격한 유 할머니는 오는 8월 영어 시험만 통과하면 고입자격이 주어진다. 다음 단계인 고졸 검정고시도 준비하고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3시간 국어, 영어, 수학 등 여섯 과목을 공부한다.

“수업에 따라가기 위해 하루 종일 집에서 복습을 해도 야학에 와 선생님이 물어보면 우물쭈물합니다. 돌아서면 잊어버려요. 그래도 기운 만큼은 팔팔합니다. 한평생 하고 싶었던 공부를 맘껏 할 수 있는 지금 이 시간에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박소영기자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