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 - 울산의 뒤안길](6)우체통과 공중전화

밤을 새하얗게 지새우며 쓴 편지, 막상 우체통 앞에 서면 차마 밀어넣을 용기가 나지

않아 그냥 돌아서던 시절이 있었다. 공중전화 앞에 줄을 서서 몇십분을 기다린 뒤 마침내 수화기를 들었지만, 차마 번호를 누를 용기가 나지 않아 수화기를 내려놓던 시절이 있었다.

우체통과 공중전화는 사람과 사람간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었을 뿐 아니라 사랑의 메신저이기도 했다. 우체통과 공중전화는 그리운 사람에게로 이어진 마음의 통로였다. 지금의 인터넷 메일과 휴대폰에 비하면 느리고 불편했지만 밤새 육필로 꾹꾹 눌러 편지를 쓰는 시간,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마을 공중전화를 찾아 걸어가는 시간은, 상대를 향한 마음을 더욱 깊고 애틋하게 했다. 그렇게 숙성된 사연들은 글자 한자 한자의 몸속에 스며들어 그리운 이에게 전달됐다.

밤새 육필로 꾹꾹 눌러 편지 쓰는 시간,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마을 공중전화를 찾아가는 발걸음은
님 향한 마음을 더 깊고 애틋하게 했다

아날로그 시대의 풍경은 마치 흑백사진처럼 늘 추억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지금처럼 눈깜짝할 사이에 보내는 이별의 문자같은 참을성 없는 세대들은 이해할 수 없는 아날로그만의 빛깔이었다.

그러한 우체통과 공중전화가 울산지역에서도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다. 아니 시민들의 마음 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다. 아직도 곳곳에 공중전화와 우체통이 더러 서 있지만 시민들의 마음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니 눈에 보이지가 않는다.

▲ 한때 정겨운 편지와 엽서가 가득했던 우체통은 이제 텅 비었고, 줄이 끊이지 않았던 공중전화는 휴대폰에 밀려 세월의 뒤안길로 멀어지고 있다. 김경우·김동수기자

울산지역 각 우체국에 따르면 현재 북구와 언양, 강동 일원을 관장하는 울산우체국 산하에는 115개, 남구지역을 관장하는 남울산우체국 관할에는 97개의 우체통이 있다. 울산우체국의 경우 한 때는 200개를 훨씬 넘었으나 빈 우체통이 속출하면서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공중전화도 현재 울산지역에 2300여대가 설치돼 있다. 10여년 전에 비하면 20%수준이다. 그나마 건물 밖에 부스로 만들어져 있는 것은 1600개에 불과하다. 지난해 90곳을 철거한데 이어 올해 166곳을 철거할 계획이다.

우체통과 공중전화는 이렇게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지만 찾는 이는 거의 없다.

남구 무거동 신복로터리에는 동전과 카드를 각기 사용하는 2개의 공중전화부스가 나란히 서 있다. 한시간 동안 지켜봤지만 공중전화 부스로 들어가는 이는 한명도 없었다. 문을 닫으면 은밀한 대화가 절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는 ‘나만의 공간’이었던 전화부스에는 바람만 저홀로 들어갔다 나왔다 했다. 사랑과 미움, 슬픔과 환희가 전선을 타고 전국 각지로 퍼져나갔던 그 플랫폼은 이제 과거로 가는 이정표로 남았다.

우체통도 눈물자욱 번진 연서나, 타향에서 집을 그리워하는 어머님 전 상서 대신에 빈 우유팩과 배어 먹고 남은 과일만이 쌓였다. 어떤 우체통에는 업체가 고객들에게 보내는 엽서나 상업적인 우편물, 홍보물이 가득 차 있다.

남울산우체국 우편물류과 홍향순 운영팀장은 “한달 내내 우편물이 하나도 없는 곳이 많다”며 “그렇지만 만의 하나 시민의 불편이 우려돼 실제 철거를 결정하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린다”고 말했다. 몇 달 동안 우편물이 전무한 상태가 계속되면 일단 우체통을 철거하겠다는 계고안내를 하고 그래도 일정 기간 민원이 없으면 최종적으로 철거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다.

울산우체국 우편물류과 박기영 주임은 “어떤 우체통에는 우편물은 하나도 없고 대신 시민들이 주운 지갑 등이 들어있는 경우도 많다”면서 “우편물이 없는 지역의 우체통은 새로 들어서는 아파트단지 등으로 옮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1990년대 중반 삐삐가 전 국민의 필수품이었을 때 공중전화의 주가는 최고에 달했다. 주머니나 허리춤에서 삐~하는 소리가 들려오면 사람들의 눈은 가장 먼저 공중전화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공중전화를 찾지 못해 전화를 제 때 못하면 또 다시 삐삐가 울린다. ‘8282’(빨리빨리). 그래도 전화가 안 오면 욕이 터진다. ‘1818’. 그러던 공중전화도 휴대폰이 등장하면서 기세를 잃었다.

우체통은 크리스마스나 신년벽두를 앞두고 카드로 넘쳐났다. 우체국에서는 수거한 우편물을 정리하느라 아르바이트를 수십명씩 썼다. 그러나 역시 e메일의 등장으로 이제는 청소년들이 자신의 필체마저 잃어버리고 있다.

모든 사라지는 것은 여백과 여운을 남긴다. 그 여운은 추억이 되고, 추억은 다시 세월이 흘러 퇴색되게 마련이다. 세월이 낙엽처럼 쌓일 때 지금의 디지털 세상도 그 낙엽 중 한장이 되어 쌓여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 영원히, 그리고 절대로 변하지 않는 진리는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다.

이재명기자 jmlee@ksilbo.co.kr

간절곶 소망우체통
그리운 이에게 보내는 마음의 통로

우체통이 사라지는 요즘의 경향과는 반대로 울산에는 세계 최대의 우체통이 만들어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바로 간절곶 소망우체통이다.

▲ 간절곶에 있는 소망우체통 전경.

소망우체통은 지난 2006년 전국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간절곶에 높이 5m, 너비 2.4m 크기로 세워졌다. 우체통 옆에는 ‘간절곶에 해가 떠야 한반도에 새벽이 온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엽서가 비치돼 있다.

엽서는 소망엽서와 우편엽서 두가지다. 배달되지 않는 소망엽서는 울산시청으로 접수되고, 우편엽서는 정답고 애틋한 사연을 적어 연인이나 가족, 친구에게 보낼 수 있다.

최근까지 20여만장의 엽서가 이 우체통에 담겼다. 그 중에는 하늘나라에 먼저 가신 아버지에게 보내는 엽서도 있고, 고향에서 우유배달을 하며 고생하는 엄마에게 보내는 엽서도 있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해드리지도 못한 채 돌아가신 아버지, 딸을 위해 궂을 일을 마다하지 않는 어머니에게 보내는 애틋한 사연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소망우체통을 본 시민들은 이런 공중전화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상대방이 없어도 좋고,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좋다. 그저 자신이 떠올리는 사람이 듣고 있다고 생각하고 간절한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공중전화가 한 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하는 우체통과 공중전화의 또 다른 모습이 궁금하다.

이재명기자 jmlee@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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