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기대공원

왜란때 두 기녀가 적장을 안고 투신했다는 이기대
문화부 지정 동해안 탐방로 ‘해파랑길’의 시작점
해운대·달맞이고개·오륙도까지 부산 절경 한눈에
출렁다리 건너도보고 영화 ‘해운대’ 촬영지 구경도

접경지역에는 꽃이 핀다. 파도는 바위를 만나 꽃으로 피고, 바위는 부서지는 포말을 안고 억겁 세월을 안으로 쌓아 마침내 신화가 된다.

이기대에 가면 신화가 된 기암괴석과, 바위를 연모하며 쉼없이 하얀 꽃을 피워올리는 동해 파도를 만날 수 있다. 이기대(二妓臺), 두 명의 기생이 임진왜란 때 적장을 안고 바다로 뛰어들었다는…. 두 여인의 꽃다운 모습이 하얀 포말로 꽃피어 지금 현신하고 있는 것일까.

▲ 오륙도 앞 언덕배기는 거제 ‘바람의 언덕’을 능가한다. 시원한 해풍과 철썩이는 파도, 장엄한 기암괴석은 그대로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부산시 용호동의 이기대는 울산­해운대간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30여분만에 다다를 수 있는, 그야말로 울산의 앞마당이나 다름없다. 오륙도를 끼고 있고, 광안대교와 센텀시티, 해운대, 누리마루, 달맞이고개 등을 한 눈에 조망할 수있어 부산 최고의 둘레길로 각광받고 있는 곳이다.

울산의 대왕암공원에 비견할만 하지만 이기대에는 대왕암공원과는 또 다른 묘미가 있다. 유람선과 쾌속정들이 동백섬을 돌아 광안리 앞바다를 거쳐 오륙도까지 경쾌한 운항을 거듭하고, 바람을 만나 신이 난 갈매기들은 하늘로 솟구쳤다 바다로 내리 꽂혔다 곡예를 한다. 국민가수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이 절로 나온다.

▲ 이기대는 장자산 정상과 주차장, 어울마당 등으로 이어져 있어 어디서나 산책코스를 잡을 수 있다. 농바위는 마치 농짝 3개를 포개어 놓은 듯 아슬아슬하게 세워져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스릴마저 느끼게 한다.

한 철 격정으로 불타올랐던 여름이 마침내 스러져 가는 8월말, 가을과 여름의 접경에 선 이기대에는 벌써부터 가을 야생화가 장자산 능선을 덮어가고 있다. 푸른 창공과 쪽빛 바다의 경계에서는 뭉게구름이 뭉실 피어나고, 억만년 침묵의 바위를 연모하여 달려온 파도는 포말을 뿌리며 꽃으로 산화한다.

이기대의 산책로는 어디에서 출발해도 좋다. 이기대 주차장에서 장자산 능선을 넘어 오륙도 선착장까지 갔다가 해안 산책로를 따라 돌아와도 좋고, 시간이 많지 않은 이들은 오륙도 선착장에서 곧바로 해안산책로를 따라 걸어도 된다. 아니면 어울마당에서 출렁다리 쪽으로 산책해도 볼만한 것들이 많다.

어느 코스를 택하든 이기대는 만족스런 풍경을 안겨다 준다. 시간이 있다면 도시락을 챙겨 풀코스를 걸어보는 것도 일주일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좋은 방법이다.

이기대는 군작전지구 육군문서보존소로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다 군부대가 이전하면서 1993년에 관광객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지정한 동해안 탐방로 ‘해파랑길’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총 688㎞를 잇는 ‘해파랑길’ 가운데 이기대 산책로는 4.7㎞를 차지하고 있다.

해안 산책로는 모든 구간이 절경이지만 군데 군데 스타카토처럼 방점을 찍는 명소가 있다. 삼단의 옷장을 포개어 놓은 듯한 농바위, 치마자락을 펴놓은 듯한 치마바위, 백악기(6500만년전) 공룡의 발자국, 해녀막사, 해운대 영화촬영지, 출렁다리, 오륙도 선착장 등.

어울마당에서 동성말 쪽으로 얼마 안가면 ‘해운대’ 영화촬영지가 나온다. 영화 해운대에서 엽기적인 코믹커플로 나오는 희미와 형식이 이기대에서 광안대교 야경을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그대로 사진으로 출력돼 세워져 있다.

▲ 이기대에서 바라보이는 광안대교와 센텀시티 등은 초현대식 인공물이어서 이기대와는 대조를 이룬다.

농바위를 보노라면 마치 해금강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아슬아슬한 기암괴석을 이루고 있다. 아득한 절벽 아래 바위 틈새에는 자세히 보면 대어를 탐하는 낚시꾼들이 군데 군데 신선처럼 낚싯줄을 드리고 있다.

오륙도 선착장에는 해녀들이 바다에서 갓 건져올린 각종 해산물을 고무대야에 담아 팔고 있다. 멍게, 해삼 등 싱싱한 해산물은 지나는 산책객들의 발목을 잡고야 만다.

최첨단의 센텀시티와 거대한 광안대교는 아득한 공룡시대의 이기대와 맞물려 묘한 대조를 이룬다.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는, 인공과 자연이 교차하는 이기대는 그래서 하나의 거대한 예술작품이다.

울산에서 가려면 내비게이션에 이기대 주차장 또는 오륙도 선착장을 치고 울산~해운대 고속도로를 타면 된다. 글=이재명기자 jmlee@ksilbo.co.kr 사진=임규동기자 photolim@ksilbo.co.kr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