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현숙 척과초등학교 교사
전국에 한파주의보가 내린 가운데 도시 외곽의 한 시골 학교에서는 내일로 다가온 개학 준비로 분주하다. ‘혹시 밤 사이에 눈이라도 내리면 어쩌나’하는 노파심에 모든 교직원들은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지만 개학을 앞두고 이런저런 문의를 해 오는 아이들의 목소리에는 이미 따뜻한 봄햇살 같은 온기가 담겨 있다. 그러나 많은 교사들은 방학이라는 시간을 지나온 아이들의 또 다른 문화로 인해 내심 조마조마하다.

혹시라도 긴 방학 동안 긴장이 풀려있었던 아이들이 몸에 벤 나태함을 교실로 옮겨와 방학 전과는 사뭇 다른 해이함을 보이지나 않을까? 몇몇 말썽꾸러기들이 교사의 눈길이 뜸했던 방학 기간 동안 걱정스러운 행위양식을 더욱 강화하여 교실의 이곳저곳에 마구 풀어헤쳐 놓으면 어쩌나? 그도 그럴 것이, 어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이러한 동료교사들의 걱정이 결코 단편적인 우려로만 치부될 수는 없음을 은연 중에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우리 아이가 개학하기 전에 머리 염색을 해달라고 자꾸만 조르는데…, 그것도 노란색으로. 서울에서는 그렇게 해도 된다는데 울산에선 아직 안되나요?”

그러고보니 지난 26일에 발표된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안’에는 복장·두발 등 용모에 개성을 실현할 권리 뿐만 아니라 물리적·언어적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가족상황·종교·임신·성적 취향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소지품 검사 및 압수 금지, 교내외 집회 개최와 참여 보장, 종교행사 참여 및 행위 강요 금지, 학생인권옹호관 임명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던 것 같다. 이미 울산교육에서도 작년 11월에 ‘울산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시민모임’의 활동이 목격되었고 앞으로도 이와 연계된 논의가 계속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여 개학과 함께 아이들과 부대끼며 살아갈 또 다른 시간을 계획하는 한 교사는 문득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인 유전자(The Selfish Gene)’라는 책에서 언급하였던 ‘밈(Meme)’의 개념을 불현듯 떠올리게 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Meme은 ‘비유전적 문화 요소 또는 문화의 전달 단위’이다. 즉, 문화의 전달에도 유전자처럼 복제역할을 하는 중간 매개물이 필요한데 이 역할을 하는 정보의 단위·양식·유형·요소가 바로 Meme으로 정의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학교와 같은 특정 사회 구조 속에서의 Meme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포착될 수 있는데 그것은 학생들이 사용하는 언어 양식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복장이나 외모, 특정 습관이나 버릇, 일상에서 사용하는 생활용품 등에서도 포착될 수 있다. 때문에 긍정적인 학교 문화 조성을 위해 일선 학교에는 은연 중에 전달되는 이러한 Meme의 다양한 움직임을 정밀하게 탐색해 전반적인 학교문화풍토는 물론, 공식·비공식적으로 조성되는 다양한 소집단 또래문화가 가능한 바람직하게 형성되도록 하기 위해 늘 고심을 한다.

하지만 ‘학생인권조례’와 같은 기준이 점차 확대된다면 앞으로의 학교에서는 ‘학생문화 전달 단위로서의 Meme에 대한 교육적 제어’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학생이 어떤 옷을 입든, 어떤 머리 모양을 하건, 그리고 어떤 물건을 가지고 와서 무슨 짓을 하건, 어떤 장소에서 어떤 모임을 갖든, 그리고 그러한 자기표현 양식에서 포착되는 Meme이 어떤 의미를 지니든, 그것은 이제 교육적 제어 범위 밖의 일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므로.

때문에 그 어느 시기보다 왕성한 모방성을 보이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초등학교 교사의 입장에서는 학생들에 대한 인권 존중 만큼이나 교실에서 포착되는 문화 전달 단위로서의 Meme에 대한 교육적 제어 기능도 함께 보장될 수 있어야 올바른 학생 지도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감히 해 본다. 오늘 하루 만큼은 교실이라는 공간 안에서 결국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허수아비처럼 멍하게 서있게 될 지도 모르는 교사로서의 나의 모습일랑은 절대 상상하지 않으려 애를 써본다.

권현숙 척과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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