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여성이 살기좋은 도시를 위해 - ② 미혼모의 아픔

▲ 미혼모의집 물푸레는 지난해 12월 지원사업 중 하나인 멘토링 프로그램의 평가회를 갖고 미혼모와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위한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미혼모의집 물푸레 제공
울산에서 6개월이 된 아기를 키우고 있는 A(여·20)씨는 19살때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찾아간 병원에서는 어린 나이 때문에 낙태하기를 권유했다. 아이를 지우기 위해 필요한 돈은 35만원. A씨는 병원 계단에서 울면서 생명을 죽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 배가 불러오자 A씨는 미혼모의 집에 입소했다. 병원 검진과 규칙적인 생활을 이어가던 A씨는 아이를 지울 수 없는 상황이 다다르자, 결국 부모님에게 고백해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다. 부모님은 아이를 입양시키라고 했지만 A씨는 그럴 수 없었다. 지금은 아이와 미혼모 공동생활가정에서 살면서 누구보다도 ‘최고의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편견·부정적 시선에 시달리고
가족관계 단절·학업포기도 많아

울산 유일 미혼모의집 ‘물푸레’
1년간 숙식·의료·자립 등 지원
공동생활가정 2년간 숙식 제공

정부, 경제적 지원방안으로
고운맘·맘편한카드 발급도

◇미혼모를 둘러싼 여전한 시선

지난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진행된 세계가치관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미혼모를 인정하는 사람의 비율은 단 3.5%에 불과했다. 36개 조사대상국 중 35위였다. 1위인 안도라(유럽 서남부에 위치)는 82.6%, 2위 칠레 74.5%, 6위 프랑스 62.3%로 나타났다. 하위권에 속하는 일본은 21.6%(29위), 베트남 14.7%(33위), 인도네시아 2.8%(36위)가 미혼모를 인정했다.

미혼모는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로 임신을 했거나 출산 후 혼자 힘으로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여성을 말한다. 보통 청소년과 10대를 미혼모로 생각하기 쉽지만, 미혼모는 10대부터 4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미혼모의집 물푸레 박금화 사무국장은 “보통 미혼 중 임신을 하게 되면 가족들의 반응은 크게 낙태와 입양 두 가지로 나뉜다”며 “가족과의 관계도 단절되고, 그 과정에서 지원과 원조가 끊겨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경제적 지원이 없다보니 미혼모들이 사금융과 대출 쪽으로 의지해 빚이 늘어나는 경우가 있어 문제가 악순환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편견과 부정적 시선, 냉담한 반응은 가장 가까운 가족 뿐만아니라 학교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박 사무국장은 “보통 임신을 하고 난 뒤, 학교에서 퇴학을 당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미혼모의집 물푸레에 1년에 50~60여명이 입소를 하는 데, 그 중 학교를 다니던 상태를 유지하고 들어오는 사람은 5명도 채 안된다”고 밝혔다. 어려운 가정환경에 노출되면서 학업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방황을 하다 임신에까지 이르게 됐다는 것이다.

박 사무국장은 “가정과 학교 둘 중, 한 곳이라도 미혼모를 잡아주는 곳이 있었다면 미혼모 문제가 사회적으로 크게 불거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장기적인 지원과 대책 필요해

전국의 여성가구주 중 미혼인 여성가구주의 수(표1 참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지난 1975년 10만300가구에서 2010년에는 100만2831가구로 10배가 넘게 증가했다.


울산에서 유일하게 미혼모를 지원하고 있는 미혼모의집 물푸레도 설립된 이후 매년 50~60명의 미혼모가 꾸준히 시설을 이용하고 있다. 입소자수(표2 참조)는 지난 2010년 56명, 지난해에는 58명으로 조사됐다.

미혼모의집 물푸레에서는 크게 미혼모의 집과 공동생활가정(안단테)을 통해 미혼모를 지원하고 있다. 미혼모의 집은 미혼의 임신부와 출산 후(6개월 미만)일정 기간 아동의 양육지원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입소할 수 있으며, 1년 동안 지낼 수 있다. 모든 비밀이 보장되며, 숙식 무료제공과 분만 의료혜택(임산부 건강관리, 산전후 정기검진, 분만지원), 자립지원(직업교육, 학업지원, 문화체험지원), 상담심리치료(일상생활지도, 개별상담, 성교육, 심리치료), 지역사회연계(멘토링 프로그램)등을 실시하고 있다.

공동생활가정은 미혼인 상태에서 24개월 미만의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여성이 이용할 수 있으며, 2년(6개월 연장 최대 2회까지)동안 지낼 수 있다.

정부에서는 미혼모를 위해 출산지원비(18세이하 산모 120만원, 일반 40만원)와 아동양육비(24세 이하 산모 월 15만원, 24세 이상 월 10만원)등을 지원하고 있다.

박금화 사무국장은 “정부에서 미혼모를 지원해주기 위해 고운맘·맘편한카드 발급을 통해 경제지원을 해주고 있지만, 카드를 발급 받기 전에 충분한 상담과 교육 절차가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맘편한카드의 경우 18세이하 산모를 지원하는 카드로, 120만원(1일 10만원 이내)을 사용할 수 있다. 박 사무국장은 “청소년 미혼모들이 당장의 경제적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해 카드를 발급받고 있지만, 금융권에서 카드를 발급받으려면 임신확인서와 주민등록등본 등 개인 정보를 내야 한다”며 “청소년 미혼모들은 카드를 발급받고 난 뒤, 추후에 생길 문제에 대해 주변에서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미혼모의집 물푸레에서는 이를 대비해 산모를 위한 카드 등도 무기명 번호 등으로 표기해 비밀이 보장되도록 발급을 도와주고 있다. 박 사무국장은 “미혼모에 대해 경제적인 지원 뿐만아니라 사회적인 관심과 지지도 필요하다”며 “최소 5년정도 이들에 대한 안정적인 서비스와 지속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은정기자 new@ksilbo.co.kr

“지속적 관심·지원 아픔 함께 나눠야”
미혼모의집 물푸레 - 박금화 사무국장

미혼모의집 물푸레 박금화(32) 사무국장은 지난 2006년 시설이 설립됐을 때부터 미혼모와 함께 울고 웃어왔다. 5년이 넘는 시간동안 숱한 일들을 겪으며 미혼모의 아픔과 성장을 고스란히 지켜봐 왔다.

1년에 50~60명의 미혼모들을 만나는 박 사무국장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미혼모’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미혼모 중에서는 보통 참고 지내는 것을 연습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한 미혼모는 남달랐다”며 “검정고시에 5번이나 떨어졌지만,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해 지금은 6개월째 미용사로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경제적인 어려움과 편견을 딛고 사회에 나가 제 몫을 하고 있는 미혼모들을 볼 때면 오히려 내가 더 고마움을 느낀다”며 “직업훈련을 하고 있는 미혼모들이 힘든 과정을 잘 이겨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가 생기면 남자와 여자가 같은 책임을 져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미혼부에게 양육비를 요구하기 힘든 구조다. 설사 양육비를 요구하더라도 미혼부가 경제적인 능력이 따라주지 않을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양육비를 대납하고 미혼부가 경제적인 능력에 도달했을 때 양육비를 청구하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한국은 이런 시스템이 없다”고 아쉬워했다.

박 사무국장은 미혼모의 문제를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말아달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혼모는 청소년과 여성, 가정, 학교 등 전반적인 문제와 맞물려 있다”며 “사회 전체에서 미혼모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은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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