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산 골짜기는 내와리 탑골을 거쳐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 미호리로 흐른다. 백운산과 잇닿아 있는 아미산과 천마산의 사이로 흐른 물줄기는 가매들이라는 큰 골짜기를 형성한다. 미호리는 그 골짜기를 젖줄로 살아가고 있다.

 미호리는 경북 경주군 남면에 속해있을 당시 사음이라 불리던 곳이었으나 사음이 지주가 소작료를 받고 관리한다는 뜻을 가졌다 해서 1914년 행정개편때 아미산의 미(尾)자와 가매들의 크고 작은 호수에서 호(湖)자를 따 미호리로 고쳐 부르게 됐다.

 일명 마리골로도 불린다. 맑은 골짜기라는 뜻에서 "맑은골"이 내려오는 동안 마리골로 변했다는 설도 있다.

 상동마을 뒤편 가매들에는 두서면에서 가장 규모가 큰 미호저수지가 지난 85년 착공돼 91년에 완공됐다. 미호리뿐만 아니라 인근 복안리와 전읍리, 멀리 대곡댐 수몰예정지인 삼정리까지 품고 있다. 미호저수지는 계곡형저수지로 수심이 가장 깊은 곳은 30여m에 이를 정도로 수량이 풍부하고 수질이 깨끗하다. 계획중인 복안댐이 완성되면 울산의 상수도원으로 전환될 예정이다. 가매들은 가마솥 형상을 한 골짜기라는 뜻에서 유래되고 있다.

 강옥순씨(53)는 "가매들에 큰 저수지가 생기면서 물걱정없이 농사를 짓게된 것은 물론이고 물이 넘쳐나면서 인심도 덩달아 넉넉해졌다"며 "이제 우리 마을에서는 개울가에서 빨래하는 모습이 아주 익숙한 풍경이 됐다"고 말했다.

 풍광이 좋은 자리에 저수지가 생겨나자 부작용도 생겨났다. 외지 방문객들의 발길이 농번기와 상관없이 이어지고 또 방문객수가 늘면서 쓰레기가 늘어 골치를 앓았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차량 통행을 금지시켰다. 이도학씨(57)는 "놀러 온 사람들이 쓰레기를 마구 버리고 심지어 건축폐기물까지 버리는 바람에 두서면사무소에서 조사를 나오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미호리는 상동과 하동 2개의 행정마을로 나뉘어져 있다. 상동은 60.2ha 면적에 61가구 남자 84명, 여자 82명 등 166명이, 하동은 51.2ha 면적에 78가구 남자 92명, 여자 103명이 거주하고 있다.

 미호리는 상·하동 사이로 경부고속도로와 경주~언양간 국도가 관통, 아래와 위쪽마을의 사는 모습이 판이하게 다르다. 상동은 논·밭을 경작하는 농촌마을인 반면 하동은 농사 외에도 닷새장으로 장사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상동마을 이선희씨(72)는 "물맑고 아미산 자락의 농토가 넓어 한때 100가구 이상이 살았으나 세월이 지날수록 교통불편을 이유로 하나 둘 마을을 떠났다"며 교통불편을 호소했다.

 상동은 경부고속도로에서 약 2㎞가량 위쪽에 위치해 노선버스가 한번도 배정된 적이 없다. 이 마을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울산시에서 보조를 하든지 정부에서 나서든지 노선버스가 하루빨리 다녔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다. 교통불편 해소 차원에서 현재 전읍리~미호리 상동~복안리 음지를 잇는 군도 공사가 한창이다. 지난해 전읍리~미호리 구간은 완공돼 이 마을 사람들이 출입이 조금은 편해졌다.

 교통이 불편한 탓에 이 마을에는 자가용이 집집마다 한 대꼴에 이른다. 나이가 많아 운전할 수 없는 가구를 뺀 45가구가 트럭이나 승용차를 소유하고 있다. 지리적 위치 탓에 생겨난 특징이다.

 상동에는 두서면에서 유일한 젖소목장이 있다. 마을 오른편인 아미산 기슭에 동화 속같은 풀밭이 펼쳐져 있다. 한때 3개의 목장이 운영됐으나 현재 신우목장뿐이다. 지난 78년부터 남편과 함께 목장을 운영하고 있는 하광자씨(62)는 "울산지역에서 목장을 쉽게 볼 수 없는 점 때문에 방문객들이 성가실 정도로 많지만 찾아오는 사람들을 거절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15만여평의 규모에 한우 100여마리와 젖소가 240여마리를 키우고 있다.

 신우목장 인근에는 현재 양계장과 돼지축사, 개 사육장까지 생겨나 멀리서 보면 동네를 형성하고 있는 듯하다.

 도시에 인구를 뺏기기 전에는 상동마을에 두서초등학교 미호분교가 있었다. 지난 93년 3월 폐교돼 현재 울산문화재연구원이 임대해 사용하고 있다.

 하동은 국도 아래쪽과 위쪽으로 나누어진다. 위쪽을 중동마을이라고도 한다. 경주최씨들의 집성촌으로 형성됐으나 지금은 타성받이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최씨는 20여가구뿐이다. 10년 전만해도 중동마을 가구수가 40여가구로 30여가구의 하동보다 규모가 컸다. 그러나 논농사를 위주로 하는 중동은 인구가 차츰 줄어든 반면 하동은 그대로 유지, 마을규모가 지금은 뒤바뀌어 있다. 중동은 빈집이 10여채에 이를 정도로 인구유출이 심한 편이다.

 중동 마을앞에는 수령 400년의 느티나무가 버티고 있다. 고사직전까지 이르렀으나 지난 82년 울주군 보호수로 지정되면서 완전히 되살아 났다. 하동마을 이장 최두식씨는(60)는"일제시대때 원줄기를 베내 마을의 정기를 흐트렸지만 꿋꿋이 버텨 마을을 지키고 있다"며 "정월대보름이면 마을사람들이 당수나무 앞에 모여 동제를 지내고 풍년과 마을 평안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중동 뒷산에는 6·25때 공비들을 막기위해 만든 초소인 돌 산성이 있다. 제법 규모가크고 형태를 온전하게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관리가 제대로 안된 탓에 점차 수목속에 파묻혀 가고 있다.

 그 아래에는 조립식 패널을 제작하는 중소기업이 입주해 있다. 그러나 마을주민들과는 융화가 잘 되지않는다. 최이장은 "주민 2명이 직원으로 다니고 있는 것 외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정도로 마을 일에 비협조적"이라며 "패널 절단 소음만 요란하다"고 푸념했다.

 하동은 중동과 달리 고속·국도변에 위치, 교통이 편리한 이점을 살려 장사하는 주민들이 많다. 언양장과 봉계장, 멀리 경주장까지 다니며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다보니 떠나는 인구가 거의 없다. 1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가구수 변동이 거의 없다. 도로변에 위치한 탓에 78년 주택개량사업 대상으로 지정돼 대부분의 집도 구조를 현대식으로 고쳐 생활에 어려움도 적다. 최석복기자 csb7365@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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