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암각화 보전·홍보정책의 복기와 반성

김대중 전 대통령; “대곡천의 암각화를 관광자원화 하도록 지원하겠다.”

이명박 전 대통령; “대곡천 물길을 돌리는 토목사업이 바람직하니 서둘러라.”

박근혜 대통령; “암각화 수몰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 반구대와 천전리 암각화 사이에 있는 후배의 집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갔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퇴임 뒤 박진구 전 울주군수와 한 바퀴 산책했다.

▲ 반구대와 천전리 암각화가 있는 대곡천의 항공사진. 긴 회돌이 지형이 연속돼 있다. 과거에 물길을 막던 산이 잘린 곳에 반구대가 있다. 요철(凹凸) 지형이 음양을 이루고 구절양장(九折羊腸)같은 지형을 보여준다.

대통령들은 두 개의 국보가 있는 대곡천의 보전과 홍보에 나름대로 관심을 표명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국가의 핵심민원과제 40개 항목에 넣어 수습을 서둘렀다. 그 결과가 가변형물막이(카이네틱댐)란 실험이다.

지난 15년간 대곡천을 둘러싼 두 개의 큰 다툼이 있었다. 하나는 암각화박물관 위치와 관련된 성소(聖所)훼손 논란이었고, 또 하나는 반구대암각화 수몰과 관련된 국보(國寶)훼손 논란이었다. 두 논란은 반구대암각화의 보존과 홍보 정책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사안이다.

제한적 방문 의견 나오던 15년 전
암각화박물관 건립으로 관광 우선해
신성 구역 보존 논란 아직도 이어져
학자들마다 다르게 발표된 관련자료
언론·정치권서 무차별적 수시 인용
결국 검증되지 않은 긴급처방인
가변형 물막이 실험 진행 중

◇암각화박물관 위치가 촉발한 성소훼손 논란과 파장

성소훼손 논란은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울산시 초도방문때 싹텄다. 필자는 김 대통령이 방문하기 2주전쯤 청와대 문화수석팀에서 파견한 김찬 비서관을 시 공보관 소개로 만났다. 나는 김 비서관에게 대곡천 암각화와 영남알프스에 전개된 천주교의 신앙흔적을 문화관광자원으로 정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그때는 지방주재기자의 의견이 반영될 줄 몰랐다.

김 대통령은 대곡천 암각화의 관광자원화를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발표했다.

▲ 반구대암각화 옆에서 진행되고 있는 가변형물막이댐 실험장. 지난 6월 착수해 내년 1월 완료하기로 돼있으나 앞으로 4개월 안에 실험을 마칠지 의문이다.

나는 지금 관광자원화 일변도는 곤란했다고 반성한다. 그전에 대곡천 암각화에 대해 좀 더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학습의 필요성은 시민사회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짐작한다.

대통령 지시사항으로 울산시가 100여억원의 중앙예산을 받아 암각화박물관을 지을 구상을 하고 있을 때, 나는 이어령 박사를 반구대암각화 앞에 모실 기회를 얻었다. 물이 가득 차 수심이 30m에 달한 호수에 작은 배를 띄웠다.

이날 이 박사는 “아득하고 깊다. 이런 곳에는 드나들 수 있는 대상을 선별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6개월전쯤 예약하고 제한적으로 출입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성소로 여기고 신성하게 보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박물관이 보존과 홍보 역할을 도모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근본적인 역할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너무 열어놓고 너무 많이 보도록 함으로써 대곡천의 신성을 깨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암각화박물관 건립은 학계를 포함한 문화단체와 행정 간에 수년간 공방을 불러일으켰다. 그 싸움의 골자는 850m와 1300m의 간격이었다. 문화단체는 대곡천 옆 박물관 부지가 암각화에서 850m 거리여서 경관을 저해한다며 1300m 떨어진 현재의 주차장 자리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50보 100보’ 다툼이었다.

이때 관광자원화에 대한 반감이 싹텄다. 자원화하기 전에 보존을 우선해야 한다는 견해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명승’ 또는 ‘사적지’로 지정해야 한다는 대안이 제기됐으나 깊은 논의 없이 유야무야됐다.

박물관 부지는 문화재로부터 500m 거리이격을 충족했기 때문에 울산시의 주장대로 지금의 위치에 설립됐다.

지금 박물관의 주차장 부지는 놀리고 있다. 걸어가도록 설계된 호젓한 길은 유명무실하다. 지금의 주차장 자리에 박물관을 세우고 걸어 갈 사람만 들어가게 했다면 신성한 구역을 보존하고, 또 이어령 박사가 주장한 제한적 방문을 어느 정도 실현하지 않았을까? 울산시가 학계 및 민간단체와 보다 깊은 협의를 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암각화 훼손 위기감이 만든 기묘한 실험

암각화에 대한 이해와 가치평가가 저마다 다르다. 암각화의 훼손 정도와 주변 경관보존에 대한 이해도 다르다.

반구대암각화는 물길 너머 거무스레한 모습이다. 저 그림이 연간 5000억원의 브랜드가치가 있다는데, 어떻게 계량화하는지도 모호하다.

바위그림이 자극을 주고 울림을 주는가? 그런 것 같지만 않다. 그림은 망원경으로 봐도 뚜렷하지 않다. 전망대 옆의 그림판을 봐도 고래, 짐승, 인물, 배들의 배열이다. 실제 바위에 그려진 그림을 보면 실감이 날까 싶어 여러 명사들이 다가가 봤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다.

어떤 실용주의자 시선에는 형상이 몇 개 새겨진 커다란 바위일 뿐이다. 그런 시선에는 댐을 허물고 수자원을 포기하라는 주문이 납득되지 않는다.

‘아는 만큼 보인다’ ‘그림도 공부해야 보인다’는 말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억만금의 고호의 풍경화도 뒤틀린 나무고, 고갱의 인물화도 입술 부르튼 뚱보다.

초등학교때부터 알타미라동굴의 채색 벽화를 배웠지만, 대곡천 바위에 새긴 벽화에 대해서는 깊이 배우지 못했다. 물고기를 먹은 뒤 뼈를 추려 강에 넣는 원시부족의 소망을 비롯 환경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열망을 벽화로 남기려한 마음을 깊이 배우지 못했다. 교육에 결함이 있었고, 그렇게 된 데는 학자들의 책임이 크다.

역사 이전 즉 선사의 일은 문명화 될수록 이해가 힘들다. 그래선지 학자들의 오류가 많았다. 사물을 식별할 때 X선, CT, MRI가 다르다. 카메라도 천차만별이다. 암각화 사진도 촬영기기에 따라 차이가 난다. 암각화의 세밀한 선은 햇빛의 각도에 따라 선명도가 다르다. 바위면의 이끼를 닦아낸 것과 그렇지 않은 차이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같이 비교해버렸다. 하나는 선명하고, 다른 것은 희미하니까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고 세상에 알렸다. 언론 조차 이런 차이를 판별하지 않고 보도했으니 암각화가 마치 숨넘어가는 것처럼 보일 수 밖에 없다. 생활용수를 아껴서 반구대를 구하자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가 울산시의 역적으로 매도되기도 했다.
 

▲ 김한태 문화도시울산포럼 이사장

어떤 학자는 암각화를 구성하는 암석의 특정 구성물질을 부각시켜 급속하게 풍화된다는 위기감을 조성했다. 또 다른 연구팀은 암각화면이 무려 27%나 줄었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그것이 수몰 이후에 발생했는지, 아니면 7000년동안 탈락된 전체 비율인지도 분명하지 않게 내놓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어떤 연구는 사연댐 수위를 조금 낮추면 녹조 때문에 물 한방울도 먹을 수 없는 죽은 댐이 된다고 맞장구 쳤다.
 

이같은 착각과 오류는 연구과정과 판단의 실수만이 아닐 것이란 의문이 있다. 문화권력 다툼일 수도 있고 용역예산을 차지하기 위한 선취권 다툼일 수도 있다.

이런 조급하고 부주의한 발언과 발표들은 정치인까지 수시로 인용함으로써 결국 카이네틱댐이란 검증되지 않는 긴급처방을 채택하게끔 촉진했다.

카이네틱댐은 문화재 전문가들은 물론 많은 일반인들도 마땅찮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하니까 마지못해 지켜보는 입장이다. 이로 인해 댐 수위를 낮추고 대체 용수를 모색하는 노력이 수그러들었다. 근본적인 처방을 논의할 장이 사그라지고 있다. 울산의 물이 얼마나 모자라는지 왜 모자라는지 울산에서 물을 구할 방법은 없는지 제대로 된 논의도 연구도 없었다. 근본적 처방이 없으면 박 대통령의 ‘아픈 가슴’도 치유하기 어렵고, 국보의 위상도 갖추기 어렵다. 지금이라도 울산이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자문 해보는 진정한 반성이 있어야겠다.

김한태 문화도시울산포럼 이사장

(반구대포럼·울산대공공정책硏 재능기부)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