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세계 암각화유산이 주는 교훈
국제기구·전문가 지원 여부 검토
관람객 입장에서 유적관리 모색
국립공원·사적지구 지정 등 통한
체계적인 보존·관리 방안 마련을

▲ 발카모니카 암각화의 관람객용 나무데크.

지난 여름 필자는 함께 연구하는 동료들과 유럽의 세계유산 암각화 현장 몇 곳을 둘러볼 기회를 가졌었다. 암각화 전문가가 아닌 사람으로 세계유산에 등재된 암각화 현장이 어떻게 관리, 활용되고 있는지가 우리의 관심 사항이었다.

세계유산은 한 민족 한 국가에서만 보존되고 전승되어야 할 유산이 아니라 전 인류가 공동으로 지키고 전승해야 할 유산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세계유산은 특정 국가와 민족이 개별적으로 보존해 온 유산 중에서 특별히 탁월한 가치를 지닌 유산으로서 세계적 관점에서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는 유산을 의미한다.

유네스코는 ‘세계유산협약’에 의거 1975년부터 문화유산, 자연유산, 복합유산 등 3가지 유형으로 나눠 세계유산 목록(world heritage list)을 유지해 오고 있다. 지금까지 160개국의 1000점 이상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유네스코의 관리를 받고 있다.

지금까지 암각화( Petroglyphs, Rock-Carving), 암채화Rock-Paintings) 등 바위그림으로 세계유산에 등재된 유적은 20개 정도다. 160개국 이상 지구상 도처에 걸쳐 7만 곳에 이르는 바위그림 유적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는 것이 쉽지 않으며, 암각화는 최소 몇 천 년 이상의 역사와 주변의 지리적 환경과 밀접한 관련을 갖기 때문에 다른 유산과 구별된다고 하겠다.

20개의 유네스코 등재 암각화 세계유산 유적에서 반구대 암각화, 천전리 암각화와 비교할 수 있는 엄밀한 의미의 암각화는 발카모니카 계곡 바위그림, 코아 계곡과 시에가 베르데 선사시대암각화, 타눔 암각화, 알타 암각화 등 8개가 있다.

▲ 포즈 코아 암각화 유적 인근 빌라노바 마을 전경.

발카모니카 계곡의 암각화는 이태리 북부 롬바르디 지방의 6개 소도시에 2500여개의 암각화 바위가 산재해 있다. 세계암각화유적에서 가장 크고 25만개 이상의 많은 표현물로 구성되어 있는 발카모니카 암각화는 이태리의 최초 세계유산이면서 암각화 유적으로서도 최초로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유적이다. 이 유적의 보편적 가치는 8000년간 긴 세월 계속되어온 인간의 표현 행위 속에 선사인들의 생활 풍습과 관습, 신앙은 물론 사고방식과 같은 것이 오랫동안 시공을 넘어 계속되어 왔다는 점과 그것이 암각화라는 조형적인 기록물에 고스란히 반영되어서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6개 지역 중 카포 디 폰테시의 나꾸아네 암각화 국립공원에 있는 암각화 유적은 마을에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고 낮은 구릉에 위치하고 있어 4유로의 입장료를 내고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쉽게 찾는 곳이다. 방문객이 쉽게 암각화를 볼 수 있도록 탐방로가 개설되어 있고 바위 주변에 관람용 나무데크가 설치되어 있어 누구나 눈앞에서 그림을 볼 수가 있다. 입석이 아니고 누워있는 바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겠지만 망원경으로도 식별이 어려운 반구대 암각화 관람과 비교가 될 수밖에 없다. 발카모니카 암각화 유적은 대부분 국립공원, 지방공원, 문화재 보존지구 등으로 사적 공원화하여 관리되고 있는 점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 지역에 국립선사박물관이 있지만 암각화와 관련한 연구와 발굴조사활동은 민간연구소가 중심이 되어 있는 것도 특징적이다. 발카모니카 암각화는 1906년에 지역의 지리학자에 의하여 처음으로 발견되었지만 50년이 지난 1956년에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아니티박사가 카포 디 폰테에 선사학연구소(CCSP)를 설립하면서부터 체계적인 발굴 조사와 연구가 시작되었다. 연구소는 암각화 연구의 세계적 중심으로 부상하였고 세계전문가들의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토론하는 ‘발카모니카 심포지엄’을 매년 개최하고 있으며 금년에는 지난 9월 26회째를 개최하였다. 연구소 연구원들을 만나 우리의 반구대 암각화를 얘기해 봤지만 너무나 모르고 있어 안타까웠다. 우리 암각화 연구 전문가들도 국제무대에서 지속적인 활동을 해야만 우리 암각화가 널리 알려질 것은 자명해 보인다.

최근 울산에서도 전시된 포르투칼의 포즈 코아 암각화 유적은 포르투칼 북동쪽 코아계곡에 위치한 1000여개의 바위에 1만점 이상의 그림으로 구성된 대규모 야외 구석기유적이다. 코아 암각화 유적은 반구대 암각화의 보존 문제를 논의할 때 자주 인용, 비교된다. 암각화가 물에 잠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댐 건설을 중도에 포기한 포르투갈과 식수원인 사연댐의 수위를 낮추어야 하는 우리 처지가 공통점을 갖기 때문이다. 보존방법을 둘러싼 전문가와 이해 당사자들 간의 갈등도 유사한 점이 많다. 당시 포르투갈에서는 댐건설로 수물 위기에 놓인 암각화를 구출하기 위하여 바위표면을 떼어내서 보관하자는 의견, 유리나 플라스틱으로 보호막을 싸거나 보호벽을 설치하자는 주장으로부터 아예 수장을 시키자는 의견 등 전문가들 사이에서 설전이 오갔다고 한다.

포르투갈 정부는 당초에 코아 암각화 인근 마을인 빌라노바에 일자리를 제공하고, 겨울철 우기를 제외하면 40도가 웃도는 고온다습한 기후에서 경작하는 포도밭과 올리브 농장의 농업용수를 위하여 수력댐 건설을 계획한 것이었다고 한다. 우리가 만난 빌라노바 시내의 슈퍼 주인은 주민들이 댐건설 계획이 발표될 당시만 해도 댐건설이 일자리도 창출하고 충분한 농업용수도 확보하여 지역경제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암각화 보존을 통한 관광객 유입이 지역발전에 더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번 유럽 암각화 세계유산 현장 방문과 암각화 보존·관리와 관련된 전문가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첫째는 우리의 반구대 암각화를 너무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최소한 암각화 업무가 일상인 사람들은 반구대 암각화를 이야기하면 알고 있을 것으로 내심 기대하였지만 실망스러웠다.

둘째는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암각화의 두 개의 바위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올라 있는 대곡천암각화군의 유적면적, 바위 개수, 바위에 새긴 표현물 규모 등 전반적인 유적규모가 우리 일행이 방문한 세계유산과 비교하여 너무 왜소하다는 점이다.

유럽의 암각화유적은 보통 수백개 내지 수천개의 방대한 지역에 산재한 바위에 수만개 내지는 수십만개의 표현물이 새겨져 있었다. 과연 우리의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암각화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떨칠 수 없었다.

셋째로 대부분 암각화유적의 발굴조사, 보존·관리를 위하여 유네스코 등 국제기구를 통한 전문가 지원, 재정적 지원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점이다. 반구대 암각화의 보존을 위하여 국제기구나 국제적인 전문가의 지원이 필요한지 검토해 볼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다.

넷째는 포즈 코아와 같이 지형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 아닌 경우 스웨덴 타눔 암각화처럼 암각화 문양에 색칠을 한다든지, 바위그림 바로 옆에 붙여서 나무데크를 조성하는 등 관람객의 입장에서 암각화 유적을 관리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 김재홍 울산대 행정학과 교수

마지막으로 많은 암각화 유적들이 국립공원, 국립박물관, 사적지구 지정 등으로 국가가 일차적 책임을 갖고 효과적으로 보존관리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도 대곡천암각화군의 중장기적인 보존관리 대책으로 국립공원화, 국립박물관 건립 등이 반드시 심도 있게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유적규모가 왜소한 반구대암각화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하여 시급한 것은 질적인 내용면에서 반구대 암각화가 세계 암각화와 비교하여 무엇이 우수한지를 학문적으로 밝혀 널리 알리고 중장기 보존관리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다.

김재홍 울산대 행정학과 교수

(반구대포럼·울산대공공정책硏 재능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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