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중기 임금, 대기업의 54% 그쳐
양극화 심화 땐 지역 사회 분열의 길
울산시, 현 상황 벗어날 해법 제시를

▲ 이재명 사회문화팀장

“회사가 전쟁터라고? 밖은 지옥이다.” 지난해 숱한 어록을 남기고 막을 내린 드라마 ‘미생’의 대사중 한 구절이다. 드라마는 우리의 신산한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온 국민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벌어놓은 돈은 없고 3년 넘게 적자를 보게 되어 이제는 사는 게 미련없다. 가족에게 미안하다….” 지난 17일 경영악화로 직원들의 월급을 제 때 주지 못해 괴로워하다가 자살을 선택한 한 대기업 협력업체 사장의 유서 일부분이다. 그가 죽은 날은 가족과 함께 외식을 하기로 한 생일날이었다.

지난 16일에는 중구 중앙시장의 한 횟집 주인이 장사가 안돼 임대료를 내지 못한데 대해 법원 집행관들이 명도집행을 하려 하자 홧김에 불을 질러버렸다. 전국에서 가장 잘 산다는 울산의 연말 분위기가 이렇다.

최근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울산의 중소기업 근로자 임금이 지역 대기업의 절반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월 기준으로 울산지역 대기업(300인 이상) 근로자 1명당 월 임금총액은 608만6800원이었고, 중소기업(300인 미만) 근로자는 328만7800만이었다. 울산지역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대기업 임금의 54.02%를 받고 살아가는 셈이다. 전국평균은 64.55%, 인근 부산은 73.36%, 서울은 70.08%였다. 그 어느곳보다 양극화가 심한 부자도시 울산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춥고 배고팠던 과거를 생각하면 지금 우리는 너무 잘 산다. 아파트 재활용 창고에는 멀쩡한 가구들이 나와 있고, 먹다 남은 음식물은 곳곳에서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또 다른 곳곳에는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는 시설들이 있고, 배고픈 사람들이 줄을 서서 음식을 배급받는다.

배고픈 사람 못지 않게 서러운 것은 자신보다 두배 또는 수십배나 많은 월급을 받는 사람들이 호화롭게 생활하는 것을 보는 일이다. 행복은 상대적인 것이다.

양극화는 자본주의의 숙명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못한다’는 말을 들며 시장경제의 원리가 작동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개인의 부지런함과 경쟁력을 강조한다.

그러나 양극화를 사회구조적 관점에서 보는 이도 많다.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여러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영향 때문에 가난이 발생한다고 본다. 양극화는 사회 구조와 권력의 분배가 왜곡돼 있어 생긴다는 것이다. 울산의 경우에 갖다 대 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라는 수직적이고 경직된 경제구조를 들 수 있다. 대기업은 경영환경이 어려워지면 하청업체의 납품단가나 노임을 무차별적으로 깎아내려 자신의 손해를 막으려 든다. 결국 불황에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것은 중소업체이고, 남는 것은 대기업이다.

최근 책 <가난이 조종되고 있다>를 펴낸 에드워드 로이스는 “사회제도의 결함으로 관심을 옮겨야 가난 또는 양극화의 구조적인 해법을 찾을 수 있다”며 정치·경제의 역학관계인 ‘구조주의’에 초점을 맞추라고 조언했다.

울산시는 김기현 시장이 취임한 후 올해 강동권 개발, 컨벤션센터 건립, 환승센터 건립 등 굵직굵직한 현안들을 쾌도난마처럼 잘 풀어냈다. 그렇지만 양극화에 대해서는 아직 손을 대지 못한 것 같다. 양극화가 심화되면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같은 계급론이 등장하고 지역사회는 분열의 길로 걷게 된다. 올 연말 가난 때문에 발생한 자살, 방화 사건을 보면서 ‘헬조선’이 아니라 ‘헬울산’이라는 말이 나오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이재명 사회문화팀장 jmlee@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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