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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이성호]감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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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2.31  17: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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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남자(30대 중반)
 엄마(60대 후반)
 아내(30대 초반)
 TV소리(여러 명이 나눠 해도 무방하다.)

 

 

 

 *TV소리는 실제 화면처럼 처리하여도 좋고, 소리로만 처리하여도 무방하다.
 *엄마와 아내는 한 명의 배우가 연기하여도 무방하다.

 무대

 평범한 아파트의 가정집 거실.

 큰 TV가 덩그러니 놓여 거실을 차지한다.

 소파 뒤로 베란다로 통하는 커다란 유리문이 보인다.

 왼편에 현관문.

 오른편에 안방문.

 한쪽 구석은 주방이다.

 

   
▲ 일러스트: 윤문영


 1장.

 불 꺼진 어둑한 저녁.

 베란다 너머로 비가 내리고 있다.

 철컥거리며 열쇠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현관문이 열리면,

 남자, 퇴근하는 차림으로 우산을 들고 들어온다.

 

 남자 : (습관처럼 내뱉는) 다녀왔습니다.

 

 남자, 거실의 불이 꺼져있자 짧게 한숨을 내쉬며 거실을 바라본다.

 손을 뻗어 거실의 불을 켠다.

 가방과 웃옷을 벗어 소파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뒤,

 리모컨으로 TV를 켜자, 요란한 홈쇼핑 광고가 나온다.

 

 TV : 이 구성으로 마지막 찬스! 놓치지 마시고 지금 주문하세요. 잠시 만요! 지금 주문 전화가 폭주하고 있습니다. 꼭! 자동주문전화 걸어주세요. 1인가구시대에 꼭 필요한 제품입니다!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란 걸 꼭! 명심하시고요. 저희가 정말 힘들게 런칭한 제품이란 걸, 한번 더 말씀드리고요. 이번 기회 놓치시면! 정말 후회하십니다! 자동주문전화 꼭! 걸어주세요.

 

 남자, 소파에 앉아 양말을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뒤,

 TV 채널을 돌리자 뉴스가 나온다.

 

 TV : 단독주택에서 혼자 잠을 자던 30대 남성이 또 숨졌습니다. 23일 오후 1시30분 경 서울 성북구에 있는 한 단층주택에서 혼자 잠을 자던 이모씨가 사망한 상태로 발견됐습니다. 이로서 1인가구의 사망률은 오늘까지 5만4천명으로 증가하였으며, 이에 경찰은 정확한 사망원인을 조사 중에 있습니다.

 

 철컥거리며 열쇠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현관문이 열리면,

 엄마, 여행에서 돌아온 차림으로 들어온다.

 

 TV : 정부가 24일 온라인에 공개한 한국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의 1인가구는 1037만가구로 전년 대비 1만 8천명이 증가했습니다.

 

 엄마 : 소리 좀 줄여.

 

 엄마, 여행용 가방을 끌고 안방으로 향한다.

 

 TV : 이에 세대수는 1419만 4천세대로 늘었지만, 세대원수는 413만 8천명이

 엄마 : 소리 좀 줄이라니까!

 TV : 줄어든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남자, 그제야 고개를 돌려 엄마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본다.

 

 TV : 남녀 비율은 45세 미만은 남성이, 45세 이상에서는 여성 비율이 높았습니다.

 엄마 : 보지도 않는 텔레비전을 왜 자꾸 틀어?

 TV : 특히, 65세 이상에서는

 남자 : 왜 이리 일찍 왔어?

 TV : 여성이 남성보다 1.3배 더 많았으며,

 엄마 : (퉁명스럽게) 재미가 있어야지.

 TV : 1인 가구는

 남자 : 우리 엄마, 심통이 단단히 나셨네.

 TV : 매년 증가해 남자 이번엔 또 뭔데?

 TV : 5명 중 3.7명에 달했습니다.

 엄마 : 네 이모 때문이지!

 TV : 초, 중, 고, 대학교 다닐 연령대인

 엄마 : 아니, 딴 사람도 아닌,

 TV : 만 6세에서 21세의

 엄마 : 친언니가 보험 좀 들라는데,

 TV : 학령인구는

 엄마 : 놀러 와서 왜 일을 해요?

 TV : 190만 명에서

 엄마 : 그게 뭐 예의에 어긋나?

 TV : 163만명으로 감소하였으며,

 엄마 : 생각하니 열 받네.

 TV : 특히 초등학생의 경우,

 엄마 : 그래도 내가 제 언닌데,

 TV : 59만 9천명이었던 것이

 엄마 : 사람 맘에 염장을 질러.

 TV : 45만 8천명으로 14만 1천명이 줄었습니다.

 남자 : 이모 그러는 거, 어제 오늘이야?

 TV : 이에 따라 초등학교 교원 1인당 학생 수는

 남자 : 웬만하면 참고 있지.

 TV : 20.6명에서 15.4명으로,

 남자 : 오랜만에 가족여행이었잖아.

 TV : 학급당 학생 수는

 엄마 : 가족도 오래되면 남이야 남.

 TV : 28.9명에서 24.3명으로 각각 5.2명, 4.6명 감소했습니다.

 엄마 : 낯 뜨겁게, 괜히 보험 얘길 했어.

 TV : 15세 이상 인구 851만 9천명 가운데, 경제활동인구는 538만 2천명이었으며,

 엄마 : 참, 어땠어?

 

 엄마, 남자를 바라본다.

 남자, 엄마의 시선이 불편해 TV로 시선을 돌린다.

 

 TV : 고용률은 10.4%,

 엄마 : 남들 다 하는 취직이 넌, 그리 어렵니?

 TV : 실업률은 45.4%로

 엄마 : 엄마 나이도 좀 생각해.

 TV : 전년 대비 각각 0.9%포인트.

 엄마 : 나이가 드니, 보험일도 슬슬 한계가 와.

 TV : 0.4%포인트 상승했습니다.

 엄마 : 다 큰 아들, 먹여 살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TV : 노인들의 한 달 평균 용돈은

 엄마 : 나도, 이제 아들한테 용돈 좀 받으며 살자.

 TV : 13만 3천원으로 집계됐으며

 엄마 : 내가 뭐 많은 거 바라니?

 TV : 학력이 높을수록, 용돈을 더 많이 쓰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엄마 : 난, 그저 남들처럼만 했음 좋겠다. 남들처럼.

 

 남자, 계속 TV만 바라본다.

 

 TV : 취업하려는 동기에 대해서는 69.9%가 경제적 이유라고 응답했으며, 9.6%가 건강을 위해, 6.5%가 일이 좋아서, 4.9%가

 엄마 : 시간 무한히 있는 거 아니다.

 TV :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라고 답했습니다. 한편 오늘 하루 동안

 엄마 : 언제까지 노총각으로 살래?

 TV : 178쌍이 부부가 되었고

 엄마 : 집에 홀아비 냄새가 풀풀 풍긴다. 풍겨.

 TV : 253쌍이 이혼을 했습니다.

 남자 : 알았어요.

 엄마 : 대답만 하지 말고, 실행을 좀 해!

 TV : 또한 129명이

 엄마 :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이지만

 TV : 태어나고,

 엄마 : 통 속을 모르겠다. 난.

 TV : 25,442명이

 엄마 : 왜 또 대답이 없어.

 TV : 병원을 방문했으며,

 남자 : 대답하지 말라며?

 TV : 4,742명이 퇴원하였고,

 엄마 : 내가 앓느니 죽지. 죽어.

 TV : 217명이 사망했습니다.

 

 엄마, 안방으로 들어간다.

 

 TV : 사망요인으론 화재가 22명, 교통사고가 21명, 건강요인이 57명, 자살이 81명, 원인불명이 36명이었습니다.

 

 남자, 무표정한 얼굴로 리모컨으로 TV채널을 돌린다.

 

 TV : 대한수의사회가 1인가구와 유기견을 한 가족으로 연결해주는 사업을 시행합니다. 1인가구의 증가율이 80%에 이르며, 1인 가구 사망률이 전년에 비해 6배 증가하자, 유기견 안락사 비율도 증가하는 점에 착안하여

 

 아내, 안방에서 잠에서 막 깬 듯, 나온다.

 

 아내 : 소리 좀 줄여.

 TV : 1인가구와 유기견을 연결해 주는 사업을 구상하였습니다.

 아내 : 얘들 방금 잠들었어.
 

 “속보입니다!
 1인가구의 사망원인이
 감염에 의한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남자, 아내의 말에 반응하지 않는다.

 TV : 이는 1인 가구의 외로움을 보상하여 사망률을 줄이고, 유기견의 안락사도 줄이자는 취지로, 유기견이 1인가구의 반려 동물이 되어 함께 생활할 경우,

 아내 : (길게 하품하며) 깜빡 졸았나봐.

 TV : 삶의 활력소가 될 수 있다는 기획에서 착안된 것으로,

 아내 : 동화 읽어달라고 하도 졸라서…

 TV : 속보입니다! 1인가구의 사망원인이 감염에 의한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이에 당국은 감염 원인을 파악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아내 : 소리 좀 줄이라니까.

 TV : 감염 증상을 공지하여 발견 시, 즉시 신고할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감염 증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분명 1인 가구가 분명한데,

 

 남자, 그제야 TV를 끈다.

 아내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 남자.

 사이.

 아내, 남자가 소파에 벗어놓은 옷과 양말을 정리한다.

 

 아내 : 양말 좀 뒤집지 말라니까! 꼭 이런다.

 

 남자, 계속 아내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본다.

 

 아내 : 오늘은 일찍 들어왔네. 그 좋아하는 술도 안마시고.

 

 잠시.

 

 남자 : 일하다 보니, 그런 거지.

 아내 : 그러다 몸 상해. 눈치껏 마셔. 밥은?

 남자 : 먹었어.

 아내 : 같이 먹음 좀 좋아?

 

 남자, 아내를 유심히 바라본다.

 긴 사이.

 

 남자 : 뭐 했어. 오늘은?

 아내 : 똑같지, 뭐. 청소하고 빨래하고... 참! 오늘 이불 세탁했어. 햇살이 너무 좋아서. 오늘 햇살이 아주 부드러웠거든. 마치 당신이 날 만지는 것처럼. (밝게 웃으며) 뽀송뽀송할 거야. 오늘 이불.

 

 남자, 베란다 너머로 비가 내리는 것을 바라본다.

 

 아내 : 당신은?

 남자 : 뭐, 똑같지.서류 작성하고, 퇴짜 맞고, 또 결제 받고…

 아내 : 너무 한다. 당신 같은 인재를 그렇게 막 부려먹고.

 남자 : 뭐, 처음에 잘 배워두면, 나도 좋고. 좀 모질게 해도, 일은 느는 것 같아.

 아내 : 당신 너무 착해. 착해서 탈이야! 사람이 좀 독하고, 거친 면도 있어야 하는데, 그래야 남들이 우습게 안 보지. 착한 사람, 별로잖아. 사회에선.

 남자 : 언젠 내가 착해서 좋다며?

 아내 : 거야, 연예할 때 얘기고.

 남자 : 지금은 아냐?

 아내 : 누가 아니래? (할 말을 고르는) 단지...

 남자 : 단지?

 아내 : 현실은 냉혹하잖아. 경쟁이고. 그래서 마냥 착한 게 좋은 건 아닌 것 같아. 옆집 203호 봐. 그 집 아줌마, 까칠하잖아. 자기 집 쓰레기봉투는 터지기 직전까지 밀어 넣고, 남는 건, 남의 집 쓰레기봉투에다 집어넣고, 공동요금도 꼬박꼬박 따지고. 첨엔 돈 몇 푼에 너무 까칠하게 군다. 눈살 찌푸렸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게 맞는 것 같아. 땅 파서 돈 나오는 건, 아니잖아. 당신 고생하는 거, 보는 것도 미안하고….

 남자 : 뭘 미안해? 당연한 걸 가지고.

 아내 : 내 맘은 안 그래. 얘들은 커 가는데, 돈 들어갈 땐 많지. 나도 벌어야 하나 싶은데, 현실은 안 그렇지. 그럼, 어떻게든 아껴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남자 : 당신은 그냥, 얘들이나 잘 신경 써.

 아내 : 말이나 못하면.

 남자 : 그래서 싫어?

 아내 : 누가 싫대? (잠시) 그래도 싫긴 하다.

 남자 : 응?

 아내 : 남의 집 쓰레기봉투 벌리는 건, 구차스러워. 그러니까! 당신. 돈 많이 벌어 와야 . 당신 마누라 구차하게 안 만들려면!

 남자 :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남자와 아내, 환하게 웃는다.

 

 남자 : 엄마는?

 

 아내, 남자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본다.

 

 남자 : 왜? (잠시) 아….

 아내 : (피식 웃으며) 건망증 있어? 왜 그래?

 남자 : 그러게. 벌써 치매가 오나?

 아내 : 말이 씨 된다 그랬어. 참! 민식이가 그림 그려왔어.

 

 남자, 당황스런 표정으로 아내를 바라본다.

 

 아내 : 당신도 봐야 하는데, 내가 그걸 어디다 놔 뒀더라?

 

 아내, 일어나서 그림을 찾는데, 보이지 않는다.

 

 아내 : 아이 참! 어디다 뒀는데, 어디 뒀지? 민식이 그림이 장난이 아냐. 우리 얘지만, 천재 아닐까 몰라. 포인트만 딱 집어서 그렸다니까! 당신도 그림 보면, 내 말 알건데….

 남자 : 그렇게 잘 그렸어?

 아내 : 4살짜리 그림으론 보이지가 않아. 아무래도, 민식이 유학 보내야 할까봐. 그림은 프랑스가 젤 좋겠지?

 남자 : 이제 겨우 4살인데?

 아내 : 재능은 일찍 가꿔야 한다잖아. 부모가 뭐야? 자기 얘한테 헌신하는 게, 부모잖아. 당신, 우리 민식이를 고만고만하게 키울 거야?

 남자 : 그런 건 아니지만….

 아내 : 그럼, 프랑스 유학 확정!

 남자 : 나더러 얼마를 벌어오란 거야?

 아내 : 누가 혼자 벌래? 나도 벌면 되지.

 남자 : 아줌마를 누가 써?

 아내 :아줌마라니, 이런 아줌마 본적 있어?

 

 아내, 고혹적인 자세를 취한다.

 

 아내 : 어쭈, 대답이 없네. 오늘 밤. 혼자 잘 생각해!

 남자 : 당신이 결혼해서 애까지 낳았다면, 아무도 안 믿을 거야!

 아내 : 한번 봐 줬다.

 남자 : 고마워. (과장되게) 그나저나, 애 한명 키우다 등골 휘겠다. 그나마 다행이야. 애가 한 명 뿐이라서.

 

 아내, 남자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본다.

 

 남자 : 왜?

 아내 : 왜 애가 한 명 뿐이야? 태희는 왜 빼? 여자라서 빼는 거야? 당신 그런 사람이었어? 남녀 차별하는 그런?

 

 남자, 당황스런 표정으로 아내를 바라본다.

 

 아내 : 당신, 요즘 이상해.

 남자 : 회사 일에 스트레스를 좀 받았나 봐.

 아내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어떻게 자기애를 까먹어?

 남자 : 아니, 내 말은 그냥… 유학 갈 애가 한명 뿐이라서 다행이다. 뭐 그런….

 

 아내 : (발끈해서) 유학 갈 애가 왜 한명이야? 태희도 보내야지.

 남자 : 태희도?

 아내 : 그럼. 민식이만 보내고 태희는 안 보낼 거야? 그런 차별이 어딨어? 태희는 운동을 잘해. 특히 구기 종목을. 그러니까, 태희는 축구선수를 시켜야겠어. 프랑스 축구, 세잖아? 민식이는 그림. 태희는 축구! 그림 괜찮지?

 남자 : 어.

 아내 : 그럼, 약속했다. 민식이는 그림. 태희는 축구로 프랑스 유학!

 

 아내,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남자를 포옹한다.

 남자, 떨떠름한 표정으로 아내를 포옹한다.

 잠시.

 

 남자 : 프랑스라… 좀 멀긴 멀다.

 아내 : 뭐 당장 가나? 이것저것, 알아보기도 하고. 차근차근 해야지.

 남자 : 진짜 보내려고?

 아내 : 그럼 가짜로 보내?

 남자 : 건 아닌데… 아직 어리잖아.

 아내 : 그러니까, 나도 같이 가야지.

 남자 : 당신까지?

 아내 : 그럼 애 혼자 보내? 그 먼 타국을?

 남자 : …

 아내 : (들떠서) 프랑스어 공부해야겠다. 애들은 언어 일찍 배운다니 다행인데, 내가 문제야. 학원부터 등록해야겠어.

 

 남자, 아내를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본다.

 

 아내 : 아냐! 그래도 애들 인생인데, 우리끼리 정하는 건 좀 그렇다. 그치?

 남자 : …아무래도.

 아내 : 물어봐야겠다.

 

 아내, 안방으로 들어가려 한다.

 

 남자 : (다급하게) 여보!

 아내 : 왜?

 남자 : 저… 밤도 늦었고, 애들도 방금 잠들었다며? 그러니까, 내일 물어 보자.

 아내 : 싫어.

 남자 : (다급하게) 여보!

 아내 : 쇠뿔도 단김에 빼랬단 말야. (안방으로 들어가며) 민식아! 태희야!

 

 남자, 불안한 눈으로 안방을 바라본다.

 잠시.

 

 아내 :(안방에서 다급하게 나오며) 여보? (안절부절못하며) 없어졌어! 아이들이… 없어졌어. 방금까지 자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없어. 여보! 우리 얘들이 사라졌어.

 

 아내, 안절부절못하는 아이들을 걱정 한다.

 

 아내 : 어떡하지? 112 신고부터 해야 하나?

 남자 : (차분하게) 여보.

 아내 : 어떡해! 여보. 얘들이 사라졌어. 방금까지 곤히 자고 있었는데, 사라졌어. 흔적도 없이.

 남자 : 여보. 진정 좀 해!

 아내 :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얘들이 사라졌어. 우리 얘들이 사라졌다고!

 남자 : (아내를 돌려 세우며) 여보! 날 좀 봐! 날 좀 보라고.

 

 아내, 남자를 바라본다.

 

 아내 : (두려운 눈으로) 당신, 어쩜 이렇게 침착할 수 있어? 이 상황에서? 당신, 나에게 감추는 거 있지? 뭐야? 당신이 숨겼어? 우리 얘들.

 남자 : 내가 왜 숨겨?

 아내 : 아냐. 당신 이상해! 어딘가 이상해.

 

 아내, 뒷걸음질 친다.

 

 남자 : 여보!

 아내 : 가까이 오지 마! 이게 만약 당신 짓이라면, 나, 당신, 용서 안 해! 못해!

 남자 : 진정 좀 해! 나, 방금 집에 왔어. 그리고 지금까지 당신이랑 같이 있었어. 그런데, 내가 얘들을 숨겼다는 거야? 그게 말이 돼?

 아내 : 왜 그렇게 침착해?

 

 남자와 아내, 말없이 서로를 바라본다.

 

 남자 : 여보. 일단 여기 앉아. 앉아서 얘기하자.

 아내 : 싫어.

 남자 : 여보!

 아내 : 뭐야? 당신 내게 뭘 감추는 거야?

 남자 : 감추는 거 없어.

 아내 : 아냐. 있어.

 남자 :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아내 : 당신 그 눈빛. 눈이 말하고 있어. 나에게 감추는 게 있다고. 뭐야?

 남자 : 여보. (결심한 듯) 그만 좀 해! 이건!

 아내 : (귀 막으며) 아냐. 안 들을래. 듣기 싫어.

 남자 : 여보.

 아내 : 말 하지 마! 나, 안 들을 거야!

 

 남자, 아내를 안는다.

 

 아내 : (벗어나려하며) 이거 놔! 이거 놔!

 

 남자, 아내를 더욱 세게 껴안는다.

 아내, 갑자기 힘없이 주저앉는다.

 남자, 아내를 부축하듯 같이 주저앉는다.

 아내,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린다.

 

 남자 : (목 매인 목소리로) 이제, 기억이 났어?

 아내 : …

 남자 : 그래. 없었어. 원래 없었어. 처음부터.

 아내 : 그만! 더 이상 말하지 마!

 

 

“남의 집 쓰레기봉투 벌리는 건, 구차스러워.
그러니까! 당신. 돈 많이 벌어 와야 해.
당신 마누라 구차하게 안 만들려면!”

 


 잠시.

 

 남자 : (차분하게) 아니, 들어.

 아내 : 그만! 말 하지 말라고 했어. 안 들을래. 듣기 싫어.

 남자 : (달래듯) 들어야 해! 여보. 내 말 들어. 현실을 받아 들여!

 

 아내, 남자의 품을 파고든다.

 남자, 아내의 등을 쓸어내린다.

 

 남자 : 받아들여. (사이) 처음부터 없었어. 언제부터 시작 됐는지, 누가 먼저 생각했는지. 그래,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중요한 건, 처음부터 없었단 거야.

 아내 : …. 알아. 알고 있었어. 그런데, 계속하다 보니, 진짜 있는 것처럼. 진짜 살아있는 것처럼, 너무 생생하게, 뛰어다니고, 까르르 웃고, 투정 부리고, 동화를 읽어주고, 그렇게 잠들고. 너무 생생하게, 옆에 있는 것처럼. 진짜, 우리 아이가 생긴 것처럼….

 

   
▲ 일러스트: 윤문영


 두 사람, 서로를 껴안은 상태로 계속 속삭인다.

 

 아내 : 우리 아이, 언젠간 생기겠지? 그렇지? (밝게 웃으며) 당신 눈을 닮았음 좋겠어. 당신 코도 닮았음 좋겠구. 당신 목소리를 닮음 참 듣기 좋을 거야.

 

 베란다 창문 너머로 희미한 별들이 보인다.

 조명 서서히 암전.

 

 

 2장.

 

 다음날 아침.

 남자, 안방에서 출근하는 모습으로 나온다.

 

 남자 : (크게) 여보, 밥 먹자!

 

 정적.

 

 남자 : (크게) 민식아, 태희야, 밥 먹자!

 

 정적.

 

 남자 : (크게) 엄마! 밥 먹자!

 

 긴 사이.

 남자, 천천히 몸을 돌려 베란다 창문을 바라본다.

 구름이 아주 천천히 흘러간다.

 남자, 소파에서 일어나 베란다 창문으로 다가간다.

 베란다 창문에 남자의 모습이 거울처럼 비친다.

 남자, 거울에 비치는 자신을 한참동안 바라본다.

 

 남자 : (습관처럼 내뱉는) 다녀오겠습니다.

 

 조명, 서서히 사라지면서

 남자, 웃는 건지 우는 건지 구분되지 않는 표정으로 얼굴을 찡그린다.

 남자의 얼굴에 잔광이 머물다 사라진다.

 남자, 돌아서서 현관문으로 나간다.

 잠시 후,

 철컥거리며 열쇠 돌아가는 소리

 텅 빈 공간에 TV소리만 들린다.

 

 TV : 1인가구의 사망원인이 감염에 의한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이에 당국은 감염 원인을 파악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감염 증상을 공지하여 발견 시, 즉시 신고할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감염 증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분명 1인가구가 분명한데, 가족과 함께 사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둘째, 기상변화를 감지하는 능력이 떨어집니다. 셋째, 가상의 가족과 대화를 하다 현실로 돌아온 뒤, 극심한 상실감과 우울감에 휩싸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에 당국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각 자치단체별로 관할구역의 1인가구를 집중관찰, 주시하기로 명했으며, 감염증상을 발견 즉시, 가까운 보건소에 신고할 것을 당부하며, 접촉을 삼가라 권고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1인가구의 사망원인이 감염에 의한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본 감염은 전염속도가 유례없이 빠르며, 가급적 접촉을 삼가는 게….

 

 TV 소리 점차 사라지면서 무대 암전.  (끝)





[당선소감-이성호]소박하지만 맛있는 글 쓰겠다

   
▲ 이성호

감사합니다. 막상 당선 소감을 쓰려니, 이 말 외엔 떠오르지 않네요.

부족한 글을 늘 읽어주시는 이상우 선생님과 오은희 작가님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차이무 식구들과 부산대 극예술연구회 가족들, 연극원 선생님과 친구들, 늘 옆에 있어준 정일, 무혁, 우식, 문영, 태훈형, 경훈, 승호와 부족하고 더딘 작가 만나 고생하는 오페라 작곡가 재신을 비롯하여 우리 오페라 식구들인 난영누이, 천욱누나, 예승, 지홍, 석주형, 영선에게도 고맙다는 말씀 드립니다.

늘 지켜주신 어머니, 아버지와 여동생과 매제, 은우, 예린, 영지에게 사랑한다는 말, 아껴서 죄송합니다.

좋은 글을 쓰겠다는 장담은 못 드리겠지만, 소박하지만 맛있는 글을 꾸준히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약력-
●1975년 3월13일 부산 출생.
●1999년 부산대학교 경영학과 중퇴
●2004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출과 졸업
●전 극단 ‘차이무’ 단원
●현 극단 ‘소소한 일상’ 대표
●2012년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 제1회 대본공모전 대상 등 수상
●연극 ‘달의 뒤쪽’ ‘아일랜드’ ‘속속들이’ ‘가화만사성’ ‘그날, 우리는’ 등 연출

 


[심사평-이강백]1인 가족이라는 사회문제 독특하게 부각시킨 놀라운 작품

   
▲ 이강백

본심에 올라온 희곡은 모두 13편이다. 예심에서는 작품의 장점을 보고 본심은 작품의 단점을 보게 된다. 예심을 통과한 13편의 희곡들은 각자 돋보이는 장점이 있다. 그것을 꼼꼼히 살펴 단점을 찾아내는 악역이 본심위원의 역할이다. 그래서 예심을 맡으면 천국에 가지만 본심을 맡으면 지옥에 간다고 한다.

‘길 잃은 사람들’ ‘없는 연극’ ‘그녀의 여름’ ‘감염’이 본심 마지막까지 남았다. 이 4편은 매우 뛰어난 희곡들이다.

‘길 잃은 사람들’은 클라이막스를 향하여 점증적으로 긴장감을 증폭시키는 구성 솜씨가 놀랍다.

그런데 폭우가 쏟아지는 밤, 길 잃은 등산객들이 묵은 산 속의 폐가를 산사태가 일어나 덮치는 장면은 과연 무대 위에서 실현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다.

‘없는 연극’은 발상이 독특하다. 우리가 흔히 보는 연극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연극이란 무엇인가, 배우는 누구이며, 관객은 누구인지, 굉장히 흥미롭고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그러나 그 새로움을 감당할 만큼 대사와 지문이 신선하지 않다.

‘그녀의 여름’은 대사가 아름답다. 예전에도 사랑하였고 지금도 사랑하는 남녀 등장인물이 오랜만에 만나서 딸기쨈을 만들며 나누는 대사가 얼마나 정답고 아름다운지… 하지만 ‘그녀의 여름’은 딸기쨈을 만드는 사건의 시간과 연극이 진행되는 공연의 시간이 어긋난다. 즉 수확한 딸기를 씻고, 가마솥에 끓이고, 식히고, 병에 담았다가 깨뜨리는 사건의 시간과 이 단막극의 공연 시간(대략 50분)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공연 시간을 길게 하거나 가마솥에서 덜 끓이고 딸기잼을 만든 체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작품의 장점인 순수한 진정성을 치명적으로 훼손시킨다.

‘감염’은 단점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장점이 단점을 압도한다. 우리나라는 소위 1인가족이 급속히 증가하여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감염’의 주인공 역시 혼자 사는 1인가족이다. 그런데 그는 어머니, 아내, 아들, 딸과 함께 살고 있다고 착각하며 행동한다. 그것이 개인의 정신병적 증세를 넘어서 전염병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번진다.

이 희곡의 주제는 우리가 직면한 사회문제를 드러낸다. TV 소리와 대사를 배열한 극적 형식도 독특하지만 마지막 장면에 놀라운 반전이 있다. 가족은 허상이었음이 밝혀질 때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감염’을 당선작으로 뽑으며 새로운 극작가의 탄생을 축하한다.

-약력-
●극작가
●전 서울예술대학 교수
●‘파수꾼’ ‘결혼’ ‘동지섣달 꽃본듯이’ 등 공연
●<이강백 희곡전집>(7권) 발간
●동아 연극상, 서울연극제 희곡상, 대한민국 문학상, 대산문학상 등 수상

경상일보, KSIL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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