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자 대표에 권력 집중돼
각종 비리의 온상 된 아파트
입주자들의 적극적 개입 필요

▲ 이재명 사회문화팀장

지인이 살고 있는 울산의 모 아파트는 400여가구가 입주해 있지만 인터넷 홈페이지 하나 없다. 주민자치위원장에게 물어 보았더니 “이 아파트에는 노인들이 많이 사는데, 인터넷을 모르기 때문에 만들지 않았다”고 답했다고 한다. 할말이 있으면 아파트 각 동 출입구에 있는 소리함에 글을 써서 넣으라고 했다. 어처구니 없는 대답에 지인은 항의를 했지만 돌아오는 건 냉소뿐이었다.

이 아파트에는 차량과 사람이 오가는 큰 출입구 4군데 말고 노인들이 자주 드나드는 이른바 샛길 같은 길이 하나 있다. 낮은 담장이 쳐져 있어 노인들은 블록을 놓고 이를 발판삼아 넘나들고 있다. 이 곳을 통하지 않으면 아파트 정문을 돌아 한참이나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인은 노인들의 통행이 불편하고 위험하니 담장을 1m만 헐어 편안하게 출입토록 해 주자고 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도둑이 들어올 수 있으므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뒤 이 샛길에는 삼팔선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무시무시한 철조망이 이중삼중으로 둘러쳐졌다. 참고로 이 오래된 아파트단지는 전면적으로 개방돼 있어 누구나 아파트 마당으로 들어올 수 있다. 도둑이 들어 온다면 아무도 막지 않는 큰 문으로 들어오지 샛길로 눈치보며 들어오겠는가.

기가 찬 지인은 이 아파트에서 이사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다. 외국인들이 국내에 들어와 가장 먼저 놀라는 것이 초고층 아파트가 산처럼 빽빽하게 둘러싸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특히 울산은 시가지를 그린벨트가 둘러싸고 있어 가용 토지가 모자라는 바람에 일찍부터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런 아파트가 권력과 비리의 온상이 된 것은 이미 오래 전이다.

아파트 비리는 거의 대부분이 입주자대표회의와 위원장의 권력이 비대해지면서 발생하고 있다. 이들의 권력이 비대해지는 것은 이들을 감시할 기구가 없는데다, 입주민들이 아파트 운영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해가 뜨기도 전에 출근해 깜깜 밤중이 돼야 귀가하는 아파트 주민들에게는 먹고 사는게 더 급하다.

대규모 아파트에서 권력을 얻게 되면 아파트 도색이나 리모델링, 수리, 물품구입 등의 과정에서 엄청난 금액을 만지게 되고 업자들에게는 ‘갑’으로 군림할 수 있다.

이들을 견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미 권력집단을 형성하고 있는데다 직장에 매어 있는 주민들이 여러 입주민들을 규합해 이들에게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아파트 비리는 독버섯처럼 시 전역 구석구석으로 번져가고 있다.

울산시가 23일 발표한 2개 공동주택에 대한 감사 결과는 이러한 아파트의 부패구조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입주자대표들은 주민들이 낸 관리비로 개인의 통신요금과 경조사비, 자가용 기름값을 내는 등 마치 자기 돈처럼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시는 개인 경조사비 등에 쓴 돈 8300만원을 환수조치했다. 시는 조만간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른 조례를 공포하는 등 앞으로 아파트 비리를 강력하게 근절하겠다고 밝혔다.

울산에도 물론 아파트를 위해 희생하는 양심적인 입주자 대표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나이든 사람들은 인터넷을 사용할 줄 모른다면서 400가구나 되는 아파트에 홈페이지조차 만들지 않는 불통(不通)의 아파트가 있는한 비리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비리를 저지르는 데는 아파트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입주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이재명 사회문화팀장 jmlee@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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