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본 울산정치사’ (64)울산 정치인과 명당

▲ 6·25때 서울의대 학생신분으로 납북되었던 이동준씨가 북한에서 유명 과학자로 영웅칭호를 받은 후 1992년 어머니 김봉순 여사를 평양으로 초청해 그의 집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그의 옷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훈장이 인상적이다.

이달 초 5대 총선과 관련, 김태호 국회의원 글을 쓰면서 김 의원의 생가를 마을 사람들이 ‘명당’이라고 부른다고 했더니 의외로 풍수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이 많았다. 최근 들어 풍수와 관련된 명당 얘기가 시선을 끄는 것은 정주영 전 회장의 집과 무관치 않은 것 같다.

최근 언론은 서울 가회동에 있는 정 전 회장의 집이 400억원이라는 고가에 거래가 될지도 모른다는 보도를 했다. 언론은 이 가격이 주위 다른 집 보다 높은 이유로 정 전 회장이 살았던 집이 명당으로 소문났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흔히들 지방의원이라도 하려면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 나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선출직에 당선되려면 그 만큼 후보의 자라온 환경이 중요하고 어렵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지방의원이 이처럼 어려울진데 국정에 참여하는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서는 이 보다 좋은 환경이 필요할 것 같다.

울산 출신 정치인들 중에도 명당과 관련된 얘기가 많다. 풍수에서 명당은 조상의 산소나 혹은 자신이 태어나고 살았던 집이 발복해 후손들이 번창하는 것을 말한다.

울산 출신 국회의원 중 조상의 명당 덕을 본 인물이 3대 정해영 의원이다. 정 의원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내가 태어난 집에서 멀지 않은 무룡산 기슭에 선산이 있다. 경주와 울산지방에서는 선산이 있는 자리를 명당이라고 한다”고 써놓고 있다.

풍수가들은 이 산소를 ‘보검장갑형’으로 자손대대로 부귀가 이어진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인지 정 의원은 7선 의원으로 국회부의장까지 역임했고 그의 아들 재문도 부산에서 5선 의원을 지냈다. 정해영 의원은 경제적으로도 탄탄해 의원생활을 하는 동안 ‘야당의 돈줄’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박정희 정권 때 2인자 소리를 들을 정도로 중앙의 실세로 활약하면서 10대 국회의원을 지냈던 우석 이후락이씨 역시 명당의 정기를 받았다. 울산에서 ‘석계 이씨 고가’로 알려진 학성 이씨 문중 터에는 남창 삼일운동을 주도했던 만석꾼 이재락씨가 살았다. 일제강점기 치열하게 항일운동을 펼쳤던 심산 김창숙과 사돈 간인 이 씨는 군자금 모금에 앞장서다가 구속까지 되었다.

풍수가들은 석천 마을이 둥근 소쿠리처럼 산에 둘러싸여 있는데 ‘석계 이씨 고가’ 터가 소쿠리 안 붕어 모양을 하고 회야강으로 헤엄쳐 나갈 형상을 하고 있어 이 터에 힘이 모인다고 말한다. 이 집안에서는 조선 말 근오(覲五)와 석진(錫縉)씨가 대과에 급제했고, 장찬(璋燦)과 규노(奎魯), 규용(奎龍)씨가 진사를 지내기도 했다.

실제로 울산에서 여러 번 낙선했던 이복씨는 이재락 어른의 손자뻘이 되는데 “할아버지가 살았을 때만 해도 울산 양반들이 할아버지를 만나려면 문 밖에서 큰 절을 세번이나 해야 할아버지 집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고 큰 소리 친다.

이런 명당에서 살았던 이재락씨는 우석의 8촌 형이다. 우석의 경우 자신은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후손들이 조상의 후광을 영광으로 잇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후손의 발복에서 본다면 제헌 선거에 낙선한 이완수 후보도 명당 덕을 보았다. 이 후보는 8명의 자녀를 두었다. 장남 동준씨는 해방 후 서울의대를 다니던 중 6·25때 납북되어 부모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런데 북으로 간 동준씨는 북에서 유명 과학자가 되어 영웅칭호를 받은 후 1992년에는 미국에서 영주권을 갖고 살고 있던 80세의 노모 김봉순(金鳳順) 여사를 평양으로 초청해 금강산 구경까지 시켜주었다.

둘째 동목씨는 서울의대 졸업 후 미국에서 정신과 의사로 활동하면서 정구, 진구, 태구씨 등 3명의 아들을 두었다. 정구씨와 진구씨는 하버드대 졸업 후 정구씨는 의사로, 진구씨는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태구씨는 미시건대 졸업 후 하바드대 교수로 있는데, 고교 졸업 때는 수석을 해 레이건 대통령의 상을 받기도 했다.

셋째 동훈씨는 국내에서 무역진흥공사에서 일하다가 캐나다로 가 사업가로 성공했다.

장녀인 넷째가 4선 의원으로 내무부 장관을 지냈던 김태호 의원 부인 연숙씨다. 이들 부부는 3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장남 영세씨는 미국 버클리대 졸업 후 영국 캠브리지대 교수로 활동하다가 국내로 돌아와 현재 연세대학 기획실장으로 있다. 새누리당 3선 이혜훈 의원이 그의 부인이다. 둘째 영록씨는 서강대를 졸업하고 현재 모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다섯째 부미씨는 부산여고와 이화여대 약대를 거쳐 서울대를 졸업한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가 현재 LA에서 사업을 해 돈을 많이 벌었다. 여섯째 동량씨의 아들 둘도 버클리대를 졸업했는데 첫째 진욱씨는 실리콘밸리 인근에 컴퓨터 회사를 설립해 크게 성공했고, 진서씨는 샌프란시스코의 제일 높은 빌딩 51층 전체를 세내어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게임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일곱번째 정미씨도 공부를 많이 했지만 일찍 타계했고 경남고와 동아대, 부산대학원을 거친 동성씨가 8번째 막내로, 서울에서 활동하다가 90년대 중반 울산에 와 현재 태연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이씨 집안 사람들은 이 후보의 후손들이 번창한 것이 이 후보의 할아버지 승의 어른의 산소를 잘 모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승의 어른은 조선시대 진사를 지냈는데 그의 산소가 무룡산 정기를 온전히 받았다고 말한다. 용이 춤추고 있는 형국을 보이는 무룡산은 백두대간의 꼬리로 울산의 진산이다. 승의 어른 산소는 화봉동 사거리 현 한우리 아파트 자리에 있었는데 산소 터만 해도 400여평이나 되었다. 이 산소가 얼마나 명당이었나 하는 것은 당시 화봉사거리에 있었던 버스정류장 이름이 ‘산소 앞’으로 불렀다는데서 알 수 있다.

명당 관련 풍수로 보면 선거에는 여러 번 낙선했지만 송철호 변호사 역시 명당의 정기를 받았다. 임진왜란 때 왜와 결사항전을 하다 순국한 송상현 동래부사의 16대 후손인 송 변호사 집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법조인을 배출했다.

송 변호사는 자신이 변호사인데다 민정씨와 지연씨 두 딸이 2008년 모두 사법고시에 합격해 우리나라 사법고시 역사상 자매가 함께 합격하는 최초의 기록을 남겼다.

두 딸들은 모두 법조인과 결혼했다. 현재 KT&G 변호사로 있는 큰 딸 민정씨는 서울법대를 졸업한 김영준씨와 결혼했는데 김씨는 서울에서 엘리트 검사로 활동하고 있다. 둘째 딸 지연씨는 현재 김앤장 로펌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이며 그의 남편 차태강씨 역시 서울대 졸업 후 서울에서 송 변호사와 함께 법무법인 ‘정우’를 차려 놓고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이에 더해 송 변호사의 아들 동현씨는 미국에서 국제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중학교 때 국가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으로 가 미국 최우수 고교생들도 넘보기 힘든 시카고대학 경제과와 시카고 로스쿨을 졸업한 그는 현재 시들리오스틴 로펌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시들리오스틴 로펌은 대통령이 되기 전 오바마 대통령 부부가 근무했던 로펌으로 오바마와 미셀이 이곳에서 만나 결혼했다.

송 변호사 형 정호씨 역시 국내에서 알아주는 법조인이다. 김대중 정부 때 법무부 장관을 지냈던 그는 고려대 출신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대학 동기 동창이다. 현재 서울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이 전 대통령의 재산 관리인이기도 하다.

풍수가들은 송 변호사 집안에서 법조인이 많이 배출된 것이 그의 부친 송기환(宋基煥) 어른이 명당에 묻혔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기환 어른은 1993년 영면 후 양산 석계 오룡산 공원묘지에 묻혔는데 이 자리가 오룡산의 배꼽 부분이 되어 오룡산 정기를 모두 받아 후손들이 발복했다고 말한다.

▲ 장성운 울주문화원 이사 전 경상일보 논설위원

송 변호사 두 딸이 한꺼번에 사법 고시에 합격하자 전국 풍수가들이 송 변호사 집터가 얼마나 명당이기에 이런 경사가 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갖고 모여들었다고 한다. 당시 송 변호사는 신정동 모 아파트에 살았는데 이 아파트 터가 문수산 정기가 은월봉을 타고 삼산으로 가는 명당인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풍수가들은 이 터를 본 후 그곳이 명당이라는 것을 확인했지만 천기를 잘못 누설할 경우 아파트 값만 올리게 된다면서 쉬쉬하면서 돌아갔다는 후문이다.

이 집터는 2008년 송 변호사가 노무현 대통령이 이끄는 참여정부에서 장관직인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됨으로써 다시 한 번 명당임을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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