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치부장
백화가 만발하고 생명이 용솟음치는 봄은 젊은이들에게는 환희를 가져다 주지만 병들고 나이든 사람들에게는 늙어감의 슬픔과 이별의 예감을 더욱 짙게 한다.

…아내 앞에서도 내 팔짱을 끼며 우리는 친구지,/사랑은 없고 우정만 남은 친구지,/깔깔 웃던 여자 친구가/꽃이 좋으니 한 번 다녀가라고 전화를 했습니다…/우리 생에 사월 꽃잔치 몇 번이나 남았을까 헤아려보다/자꾸만 눈물이 났습니다/그 눈물 감추려고 괜히 바쁘다며/꽃은 질 때가 아름다우니 그때 가겠다. 말했지만/친구는 너 울지, 너 울지 하면서 놀리다 저도 울고 말았습니다…‘사월에 걸려온 전화’(정일근)

몸이 많이 아프다 보면 불길한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봄날 무릉도원 같은 길을 걷다가도 혹 올해가 마지막일까 하는. 아름다운 꽃을 보며 세월의 무상함을 뼈저리게 느끼는 이도 있다.

세세년년화상사(歲歲年年花相似, 해마다 꽃은 같은 꽃이건만) 년년세세인부동(年年歲歲人不同, 해마다 꽃구경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니구나)

당(唐)나라 때 유정지(劉廷芝)가 지은 시 ‘대비백두옹’(代悲白頭翁·백발노인의 슬픔을 대신 읊다) 중의 백미다. 이 시의 배경에는 사연이 많다. <당재자전(唐才子傳)>에 따르면 유정지의 외삼촌이자 당대의 시인인 송지문(宋之問)이 이 구절을 보고는 절창이라 탄복하며 달라고 했다. 이에 유정지가 잠시 허락했다가 마음을 바꿔 다시 거절하자, 화가 난 송지문이 하인을 시켜 조카를 흙주머니로 압살했다고 한다.

젊은이에게도 봄은 꼭 환희의 계절만은 아니다. 이별에 내몰린 스무살 청년은 애증의 붉은 신열을 뿜어내고, 갓 소녀티를 벗어난 처녀들의 가슴은 연분홍 꽃닢과 함께 타들어 간다.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면/말에 취해서 멀미가 나고,/꽃들을 너무 많이 대하면/향기에 취해서 멀미가 나지/살아 있는 것은 아픈 것,/아름다운 것은 어지러운 것…‘꽃멀미’(이해인)

이재명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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