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치부장
몇년 전 봄 회재 이언적이 기거했다는 안강의 독락당(보물 제413호)을 찾았다. 한국의 대표시인인 조지훈과 박목월이 봄날 이 독락당 대청마루에 누워 놀았다는 말을 듣고 궁금증이 발동해서였다. 계곡을 낀 독락당 계정의 대청마루에서는 청아한 물소리가 들리고 봄꽃들이 훤히 내려다 보였다. 선경이었다.

26살의 박목월과 22살의 조지훈은 1942년 봄 경주에서 처음 만났다. 조지훈은 <사상계>에 ‘1942년 봄에 나는 성지순례와 같은 마음으로 경주를 다녀왔고, 시우(詩友) 목월을 거기서 처음 만났다’고 썼다. 조지훈은 또 목월의 시집 <산도화>의 발문에서 ‘…불국사 나무그늘에서 나눈 찬술에 취하여 떨리는 봄옷을 외투로 덮어주던 목월의 체온도 새로이 생각난다. 나는 보름 동안을 경주에 머물렀고, 옥산서원의 독락당에 눕기도 하였으며…’라고 썼다. 조지훈은 경북 영양 주실마을 고향으로 돌아와 목월에게 ‘완화삼(玩花衫)’이란 시를 보내 고마움을 표시했다.

…구름 흘러가는/물길은 칠백리(七百里)//나그네 긴 소매/꽃잎에 젖어/술 익는 강마을의/저녁 노을이여//이 밤 자면 저 마을에/꽃은 지리라…

시를 받아든 목월은 한없이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화답으로 ‘나그네’를 밤새 써서 보냈다.

강(江)나루 건너서/밀밭 길을//구름에 달가듯이/가는 나그네//길은 외줄기/남도 삼백리//술 익는 마을마다/타는 저녁놀//구름에 달가듯이/가는 나그네

나그네에서 목월은 완화삼의 대구(對句)를 완벽하게 만들어내는 천재성을 발휘했다. ‘구름 흘러가는’은 ‘구름에 달가듯이’로, ‘물길은 칠백리’는 ‘남도 삼백리’로, ‘술 익는 강마을의’는 ‘술 익는 마을마다’로, ‘저녁 노을이여’는 ‘타는 저녁놀’로 받아냈다. 지음(知音)란 바로 이런 것인가. 올 봄 다시 백화만발하니 독락당이 새삼 그리워진다.

이재명 정치부장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