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치부장

중국 송(宋)나라 때 조변(1008~1084)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관리들의 불법행위를 적발하는 직책을 맡게 됐는데, 권세있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탄핵해 철면어사(鐵面御史)라는 별명을 얻었다. 얼굴이 쇠처럼 단단해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어사(御史)라는 의미다.

그런 조변에 대해 신종황제는 “조변은 촉(蜀)으로 부임할 때 거문고 하나(一琴)와 학 한마리(一鶴)를 가지고 갔는데, 그의 이런 청렴결백한 정사는 칭찬받을 만하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는 ‘일금일학(一琴一鶴)’이라는 성어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관직에 부임한 사람들에게는 청렴을 상징하는 금과옥조로 읽힌다.

이 조변의 학(鶴)이 조선시대 때 울산 중구 북정동 동헌으로 날아왔다. 울산 동헌은 숙종 7년(1681) 울산부사 김수오가 지었는데, 김수오는 때마침 울산을 방문한 아들 김호에게 동헌의 편액글씨를 쓰고 기문도 지으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이유로 뜻을 받들지 못하는 사이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뒤 김호는 우연히도 울산부사가 돼 내려 왔다.

▲ 일학헌, 반학헌.

그는 옛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 ‘일학헌(一鶴軒)’이라는 이름을 지어 동헌의 현판으로 내걸었다. 고려 성종 임금이 지어준 울산의 별호(別號)가 ‘학성(鶴城)’임을 감안해 송나라 조변의 일금일학(一琴一鶴)을 차용한 것이었다. 이 현판은 이후 영조 때 홍익대 부사에 의해 ‘반학헌(伴鶴軒)’으로 바뀌었다. ‘학과 함께(伴) 한다’는 뜻이다. 이같은 내용은 송수환 박사가 지난해 펴낸 <나의 울산사 편력>에 상세하게 나온다. 송 박사는 “거문고로 부르는 노래는 교화를 뜻하고 학은 선비의 고고한 기상을 상징한다”며 현재 울산의 최고 관청인 울산시청에도 이런 편액을 하나쯤 달았으면 하고 희망했다.

울산 남구청이 울산의 학을 관광콘텐츠로 만드는 사업을 추진한다고 한다. 때마침 울산대곡박물관도 울산시 승격 20주년을 맞아 지난달 30일 올해 첫 특별전 ‘학성, 학이 날던 고을 울산’을 개막했다. 울산이 학 고을로 변하는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이재명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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