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 조사위 구성 검토…“구속력 없지만 대법원서 무겁게 받아들일 것”

▲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 사진출처:사법연수원 홈페이지

전국 법원의 ‘대표 판사’들이 모인 ‘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일각에서 제기된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직접 조사하기로 결의했다.

일단 형식상 ‘판사회의’가 조사할 권한은 없어 향후 실제로 조사하는 과정에서 별도 조사기구나 위원회 구성 등 어떤 형태가 될지는 더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판사회의 공보 간사인 송승용(43·사법연수원 29기) 수원지법 부장판사는 19일 경기 고양시 일산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첫 회의 도중 브리핑을 열고 “회의는 사법행정권 남용 행위의 기획, 의사결정, 실행에 관여한 이들을 정확하게 규명하기 위해, 그리고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의 존재 여부를 비롯한 여러 의혹을 완전 해소하기 위해 추가 조사를 시행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송 부장판사는 “현재 추가조사 대상, 범위, 방법 등을 논의하고 있다”며 “의결이 구속력이 없는 만큼 대법원장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법관 대표회의가 의결한 사안이라고 하면 대법원이 무겁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진행 중인 회의에서 추가조사 대상의 하나로 ‘법원행정처에서 사법행정 업무를 담당하던 판사의 컴퓨터’ 등을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회의는 오후 6시께 종료되며 추후 2차 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이란 양승태 대법원장 산하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이 대법원장이나 사법부에 비판적인 입장, 견해 등을 개진해온 판사들의 명단과 정보를 만들어 관리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앞서 이인복 전 대법관이 이끄는 법원 진상조사위원회는 사실무근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일각에선 조사 당시 기조실에 근무하는 담당 심의관(판사)의 컴퓨터를 조사하지 않는 등 충분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송 부장판사는 “전면조사를 뜻하는 ’재조사‘가 아니라 첫 조사에는 부족한, 미진한 부분이 있기에 추가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진상조사 소위원회 등을 꾸리는 방안 등이 검토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전국 법원에서 선발된 대표 판사 100명은 이날 오전 10시 사법연수원 3층 대형 강의실에 모여 이성복(57·16기) 수원지법 부장판사를 의장으로 선출하는 등 본격 활동에 들어갔다.

이 판사는 과거 2009년 신영철 전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원장 시절 촛불집회 관련 재판 진행에 간섭했다는 ‘촛불 파동’ 의혹 때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을 맡아 신 전 대법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등 핵심적 역할을 했던 개혁 성향 인물이다.

송 부장판사는 “고등법원 부장부터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출신으로 갓 임용된 판사까지 100명이 모였다”며 “’법원장‘, ’부장‘ 이런 호칭을 빼고 ’어느 법원 판사‘라는 호칭 하에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격의 없이 토론하고 있다”고 했다.

앞서 법원 진상조사위원회는 대법원 양형위원회 고위 간부인 이규진(55·18기) 전 상임위원이 이 판사를 통해 법원 내 최대 학술단체인 국제인권법연구회의 ‘법관인사 개혁’ 관련 세미나를 축소하도록 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 전 위원은 올 초까지 연구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 판사들이 블랙리스트 등과 관련해 조사가 미진했다고 반발하자 양승태 대법원장은 지난달 17일 법원 내부망에 ‘현안과 관련해 판사들이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해 회의가 열리게 됐다.

한편 이와 별도로 시민단체 투기자본감시센터가 이달 15일 양 대법원장과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 이규진 전 상임위원 등 전·현직 고위 법관 8명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심우정 부장검사)에 배당됐다.

검찰은 고발 취지와 자료 검토 등을 거쳐 본격 수사에 나설지를 판단할 전망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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