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적으로 얼어붙은 조선업계 현실
노사 불안으로 뒷걸음만 치다간 공멸
경영진·노동자 한뜻으로 위기 타개를

▲ 김창식 경제부장

삭풍(朔風)이 몰아치는 12월, 울산 조선업계에 또다시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시발점은 삼성중공업의 ‘적자 커밍아웃’과 대규모 유상증자 발표다. 삼성중공업은 최근 올해와 내년에 걸쳐 7000억원이 넘는 적자와 1조원 이상의 대출금 상환이 우려되자 1조5000억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대규모 적자를 보전코자 자금수혈에 나선 것이다. 정부도 STX, 성동조선 등에 7조원 이상의 공적자금을 쏟아 붓고도 청산가치가 높게 나오는 조선업체의 퇴출을 미루며 시장의 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다.

조선업계의 불확실성이 다시 커지자 주가도 요동치고 있다. ‘불황형 흑자’에 간간이 수주를 이어가며 경기 회복세에 안간힘을 써오던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주가도 덩달아 급락했다. 조선업계는 ‘수주절벽’ ‘선가하락’ ‘환율하락’ 등 어느때보다 엄중한 상황에 놓여있다. 수주 선박의 가격(선가)은 여전히 바닥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현재 수주 선가는 2008년 고점 대비 60~70%에 불과할 정도로 낮은 수준이다. 선박을 수주하더라도 적자를 면하기 어려운 구조다. 물가, 인건비, 자재비 인상 등을 감안하면 적자 폭이 커지는 상황이다.

수주환경도 최악이다. 현대중공업의 수주는 지난해 역대 최저 수준에 머문데 이어 올해도 40여척에 그쳤다. 연간 100여척을 건조할 수 있는 규모인 현대중공업의 현재 수주잔량은 겨우 70여척. 8개월 치 일감에 불과하다. 호황기에 일감수주 잔량이 3년~2년6개월 치까지 확보하던 것과 비교하면 현재 업계가 처한 환경이 어떤지 극명하게 알수 있다.

대외 환경도 악화일로다. 원달러 환율 1100원 붕괴 등 급격한 환율 하락으로 매출손실이 심각하다. 현대중공업은 환율 10원 하락 시 524억의 매출손실이 발생한다. 게다가 최근 원가의 20~30%를 차지하는 후판(厚板)가격도 t당 5만원 가량 올라 척당 20억원 이상의 추가비용을 부담해야할 처지다. 금리 상승기 차입금이 많은 조선업체로선 추가 이자비용 부담도 눈덩이 처럼 커진다. 내년에도 예전에 경험하지 못한 ‘보릿고개’가 예고되고 있다. 오죽하면 삼성중공업이 선제적인 자금 확보를 위해 ‘적자 커밍아웃’까지 했을까? 구조적인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는 게 조선업계의 생존과제가 됐다. 유휴 인력과 생산설비, 임금 등 내부적인 위험요인 해소에 역량을 집중해야할 시기다.

이런 엄중한 상황에서도 빅3의 맏형격인 현대중공업 노사는 2년째 임단협을 매듭짓지 못하고 있다. 노조는 지난 2년간 극한 투쟁만 외치다 실기했다. ‘7분기 연속 흑자’와 ‘수주 증가세’는 자산 매각 등에 따른 ‘불황형 흑자’와 ‘기저효과’라는 냉혹한 경영현실을 외면하는 모양새다.

조선업계가 뒷걸음질 치는 사이에 중국 업체는 다시 멀찌감치 앞서가고 있다. 중국은 우리나라의 독무대였던 초대형 컨테이너선마저 집어삼키더니 올해 전 세계 누적 수주량에서 7년 연속 1위를 지켰다. 한국은 수주잔량조차 엔저에 힘입은 일본에 뒤져 3위로 추락했다.

제3의 경쟁자도 출현하고 있다. 최근 국제 해양플랜트 입찰에서 싱가포르 셈코프마린은 2년째 임금동결,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국내의 절반 수준인 제 3국 근로자들의 임금 경쟁력을 앞세워 잇따라 국내 조선업계를 따돌리고 있다. 물량 감소와 유휴인력 발생으로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조선업체들은 과도한 고정비 부담 탓에 가격 경쟁력이 하락일로다. 말 그대로 내우외환이요 설상가상인 상황에 직면했다. 울산이 보유한 세계 1위 조선사의 신화는 이대로 주저앉고 말 것인가 . ‘말뫼의 눈물’이 ‘저주’로 둔갑할지 걱정이 앞선다.

지금은 겨울이지만 내년엔 혹한이다. 냉혹한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철저하게 대비하는 것이 절실한 시점이다. 현대중공업 노사가 새로운 체제에서 위기를 공감하고 있다는 다소 희망의 소리도 들려온다. 현대중공업 근로자와 가족, 수많은 협력회사와 지역사회의 눈이 모두 여기에 쏠려 있다. 하루빨리 희망의 망치 소리가 들려오길 울산시민의 한사람으로서 간절히 기원한다.

김창식 경제부장 goodgo@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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