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선임기자

오늘부터 울산에서도 장마가 시작된다. 장마와 함께 논물을 막고, 돌리고, 트고, 가두는 ‘물꼬전쟁’의 막이 오른다. 물꼬는 위쪽 논의 물을 빼는 동시에 아래 논에 물을 대는 물꼬가 되고, 그 아래 논은 또 아래 논의 물꼬가 된다. 반대로 가물었을 때는 위쪽 논의 물을 가두는 물꼬가 되고 아래 논의 물을 끊는 장벽이 된다. 물꼬전쟁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비가 너무 많이 와도 탈, 안 와도 탈이다. ‘6월 장마에 돌도 큰다’는 속담은 비를 적절하게 내려주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을 내포하고 있다.

장마는 흔히들 ‘장마(長魔)’라고 알고 있으나 순우리말이다. 한자로는 장림(長霖), 임우(霖雨), 적우(積雨), 구우(久雨), 황매우(黃梅雨) 등을 쓴다. ‘霖(림)’이라는 한자는 키큰 나무들처럼 빗줄기가 주룩주룩 내리는 모양을 하고 있다.

‘梅雨’라는 말은 매실이 익어갈 이 즈음 내리는 장맛비를 이른다. 오랫동안 내린다는 뜻의 ‘구우(久雨)’는 <동의보감>에서 병의 원인으로도 지목된다. 음습한 기운이 생기면 설사 등의 병이 된다고 동의보감은 적고 있다. 이밖에 ‘여름비’라는 뜻의 ‘서우(署雨)’, 줄기차게 내린다는 뜻의 ‘적우(積雨)’ ‘장우(長雨)’…. 정약용은 장마로 인한 서민들의 곤궁한 삶을 시로 읊었다.

“괴로운 비, 괴로운 비, 쉬지 않고 내리는 비/아궁이 불 꺼져 동네 사람 시름 많네/아궁문에 물이 한 자 깊게 고였는데/어린아이 돌아와선 풀잎 배를 띄우네’­‘고우행(苦雨行)’(정약용)

▲ 무자위(일명 무자새, 물을 퍼 올리는 기구) 출처:벽골제농경문화관박물관

‘장맛비’는 순우리말이지만, 혹 삼대(麻)처럼 내리꽂히는 장대비로 은유해 ‘長麻’라는 말을 만든 것은 아닐까. 쌀도, 땔감도 없는 백성의 궁핍한 삶을 다산은 ‘고통의 비’라고 표현했다.

장마기간에 비가 안오면 곳곳에서 싸움이 난다. 평야가 많은 인도는 물싸움이 다반사였다.

어느날 석가족(석가모니 씨족)과 골리족간에 큰 싸움이 났다. 로히니강(江)이 마르자 조금이라도 물을 더 많이 끌어오기 위해 물꼬를 막아버렸던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지팡이(몽둥이)를 잡았다. 사람들의 얼굴은 공포로 일그러졌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지팡이를 버려라. 그러면 공포에서 해방될 것이다”(숫타니파타)

석가는 두려움에 떨던 사람들에게 ‘지팡이를 든 연유로 두려움이 생긴다’고 일갈했다. 지팡이는 두려움을 더 커지게 해 종국에는 공포가 공포를 낳게 하고 파국으로 치닫게 한다고 말했다. 바야흐로 남(南)과 북(北)이 큰 물꼬를 텄다. 이재명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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