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디지털미디어국 선임기자

소나무는 천 년 산다지만 끝내 말라 죽는데(松樹千年終是朽)
무궁화는 하루일망정 영화를 누리는구나
(槿花一日自爲榮)

중당(中唐) 시인 백거이는 시 ‘거침없이 말하다(放言)’에서 ‘삶을 길이로 말하지 말라’고 일갈한다. 백거이는 ‘요절한 안회(공자의 수제자)는 장수한 팽조(요임금의 신하로 700살까지 삶)를 부러워 않는다(顔子無心羨老彭)면서, ‘죽고 사는 일이나 오고 가는 인생사 모두가 꿈이다(生死去來都是幻)’고 했다.

손을 데일 정도의 가마솥 더위가 울산을 비롯한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공단과 가로에는 무궁화(無窮花)가 연일 피고 있다.

무궁화는 모두 250여종. 봄 뭇꽃들이 앞다투어 필 때 무궁화는 침묵을 지키다 화무십일홍의 요란한 꽃잔치가 끝난 뒤 비로소 꽃잎을 연다. 꽃은 사람 키만한 작은 나무에 하루에 50송이 정도 피는데, 100일 동안 개화를 지속한다. 한 그루가 도합 5000송이를 피워낸다.

무궁화는 태양이 떠오르면 신비로운 세계에 눈뜨고, 어둠이 깔리면 꽃답게 죽는다. <산해경>에 ‘군자의 나라에 훈화초가 있는데,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진다(君子之國 有薰花草朝生暮死)’라는 내용이 있다. 무궁화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무궁화 ‘백단심’.

무궁화는 중심부에 붉은색(丹心)을 갖고 있는 단심계(系)를 가장 먼저 쳐준다. 흰색 바탕에 단심이 박힌 백(白)단심, 분홍과 붉은색 바탕에 단심이 박힌 홍(紅)단심, 자색 또는 청색 바탕에 단심이 박힌 청(靑)단심 등 3종이 있는데, 그 중 애국가 후렴과 함께 나오는 무궁화는 1~3절 모두 홍단심이다. 마지막 4절에 가서야 비로소 백단심(白丹心)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의 대미를 맺는다.

“…슬퍼도 땅 한번 치고 가슴 한번 치지 못하고, 분해도 발악 한번 하지 못하고, 숨막혀도 산발하고 뛰어다니지 못하고, 그렇게 그 모습으로 마음을 접고만 있었던 것이다…”

이규태 칼럼 ‘하얀 무궁화’

필자가 어렸을 적 자주 했던 놀이 중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것이 있었다. 술래가 눈을 감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이 다른 친구들이 조금씩 술래 가까이 다가가서 잡힌 친구들을 풀어주는 놀이였다.

산해경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진다(朝生暮死)’고 했지만, 달천마을 코흘리개들은 한송이 한송이 5000년 동안 무궁화를 피워올렸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이재명 디지털미디어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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