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산에서 여천천을 지나 여천고개를 오르다 정상에서 왼쪽에 화성건업 간판이 보인다. 화성건업을 알리는 간판의 반대쪽으로 난 길을 찾아 들어가면 송호(松湖)마을을 만날 수 있다. 마을 남쪽에는 사방으로 큰 길이 새로 생겼지만 마을로 들어가는 길을 이곳이 가장 좋다. 현재 마을로 들어가는 길을 넓히는 공사가 한창이다. 좁은 길을 따라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왜 마을 이름을 송호(松湖)라 붙였는가 쉽게 짐작이 간다. 수령이 몇 백년은 족히 됨직한 소나무들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배수장이 자리한 삿갓산을 뒤로 하고 마치 호수처럼 움푹 패인 곳에 집들이 앉아 있다. 소나무 호수라는 뜻의 송호라는 이름이 제격이다.

 아름드리 소나무 숲이 싸인 20가구 안팎의 송호마을 풍경은 지척인 울산도심과는 너무도 다르다. 삿갓봉 너머로 보이는 롯데호텔 등 빌딩숲과 아파트 단지, 마을 앞 4차선 대로와 공장 모습과는 달리 좁고 구불구불한 길이 마을의 집과 집을 연결해 주고 있을 뿐이다. 그 집들 또한 2층구조는 찾아보기 힘들고 시멘트기와를 덮은 오래된 집들이 대부분이다. 아마도 오래전 공원지구로 개발이 제한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송호마을이 청송심씨 인수부윤공파 내금위공파(內禁"公派) 후손들이 500년을 넘게 살아온 곳으로 청송심씨의 집성촌이다.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는 삼산동 현대백화점 맞은 편 건물 이름도 송호빌딩이다. 흔히 울산사람들은 이 곳 청송심씨들을 야음심씨라고도 부른다. 이 지역을 대표하는 문중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청송심씨들이 이 곳에 터를 잡은 것은 연산 4년 1498년 조의제문으로 인한 무오사화때 시조 심홍부(沈洪孚)의 10세손인 심광형(沈光衡)과 장자인 황(滉) 부자가 울산의 을숙도란 곳에 귀향을 온 뒤이다. 후손들은 을숙도를 지금의 돗질산 부근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 4품의 예문관(한림원) 학사를 지낸 학사공 광형 할아버지가 울산의 입향조이다.

 조선조를 통들어 3집밖에 없는 3대정승 집안의 한 집인 명문세족으로 훈구파에 속한 학사공 부자가 귀향을 오게 된 것은 학사공이 연산임금에게 사초의 열람과 사관을 벌함은 가당치 않은 것이라고 강력 주청했기 때문이다. 학사공과 장자인 내금위장 황은 훈구파이면서도 원칙론을 들어 연산의 잘못을 꼬집는 바람에 귀향살이의 고초를 겪은 뒤 중종반정으로 신원이 복작됐다. 그러나 귀경하지 않고 송호마을에 정착했다. 지금으로부터 505년전 일이다. 입향조와 그의 아들인 내금위공의 묘소는 남구 신정동 시리봉에 있으며 묘소아래에 재실인 갈현재(葛峴齋)가 있다. 신원복작뒤 입향조인 학사공의 차남인 훈도공 광(洸)도 울산으로 옮겨왔다.

 입향조의 증손인 심환(沈渙)은 울산교수로서 임진왜란때 창의해 많은 전공을 세워 울산충의사에 임란공신으로 위패가 봉안돼 있다. 교수공의 묘소는 송호마을 앞 야음동산에 있으며 재각으로 여천당(麗泉堂)이 있다. 여천당의 건물은 과거 병영 청사의 일부였던 것을 70년전 문중에서 사들여 이곳으로 옮겨 놓았다.

 입향조의 후손 가운데 장자인 내금위장 황의 후손들이 야음동 송호마을을 중심으로 번성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후손들은 인근인 선암동 부곡동과 태화강을 건너 중구 유곡동, 농소면 호계 송정, 청량면 하정, 삼동면 금곡, 밀양군 삼랑진, 양산군 하북면, 기장군 그리고 경기도 동두천으로 세거지를 확대해 나갔다. 울산시승격이전인 1960년에만 해도 야음동에 100가구, 선암동에 80여 가구가 집단으로 살았다. 현재 전국적으로 1천200여명이 내금위공파 종회의 회원으로 등록돼 있다.

 송호마을의 심씨들은 학문중시라는 선조의 유훈에 따라 중앙관직에 진출하기 보다 교수, 촬방, 좌사 등 지방관직에 머물렀다. 1930년대 신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해 작고한 심근식(沈根植)과 진주사범을 나온 심휴구(沈烋求), 그리고 현재 문중회장인 심경식(沈炅植) 회장의 부친인 심준구(沈準九)씨 등 9명이 진학계를 만들기도 했다.

 입향조의 13세손인 상·종자 항렬과 19세손인 녕자 항렬이 함께 하고 있으며 선조들의 학문중시에 따라 많은 인물이 사회 각계각층에서 활동하고 있다.

 국회의원과 울산광역시장을 지낸 심완구(沈完求) 전 시장을 비롯해 심춘보(沈春輔)전 안기부관리관, 심부용(沈富龍) 전 울주부군수, 심수식(沈守植) 울산동부경찰서장을 비롯해 심봉구(沈奉求) 전 경남도의원, 심화보(沈和輔) 전 경남도의원(밀양)과 심규화(沈揆華) 울산시의원이 내금위공파 출신이다. 또 법조계에서는 작고한 심영식(沈永植) 전 부장판사와 심규명(沈揆明) 변호사와 심규찬(沈揆贊) 군법무관이 있다.

 교육계에는 심진구(沈璡求) 전 인천교육위의장과 심원오(沈元五) 전 울산교육위 부의장이 있으며 작고한 심용식(沈鏞植) 전 교육장과 심정구(沈正求), 심칠구(沈七求·작고), 심보구(沈甫求) 전 교장은 초등출신이며 심종성(沈鍾聲), 심우형(沈愚亨·작고) 심손(沈遜·작고) 전 교장과 심대식(沈大植) 홍명고 교장은 중등출신이다. 이와 함께 심순식(沈舜植·경상대), 심경보(沈敬輔·서울교대) 전 교수와 심경구(沈慶求·성균관대), 심인보(沈仁輔·부산대), 심걸보(沈杰輔·천안대), 심규박(沈揆博·동국대), 심재용(沈宰用·상명대) 교수도 문중회원이다. 심현식(沈賢植), 심정칠(沈正七), 심상완(沈相完), 심성규(沈聖揆), 심창용(沈昌用), 심재정(沈哉廷) 박사도 있다.

 의료계에는 심원보(沈元輔), 심성보(沈??, 심우성(沈愚星), 심규목(沈揆穆), 심규빈(沈揆斌), 심기용씨가 개업의로 활동하고 있으며, 심우빈(沈愚斌·작고) 전 농협 군조합장, 심덕구(沈德求) 전 조흥은행 상무, 심규보(沈圭輔) 전 농협중앙회 이사, 심경보(沈炅輔·경남은행), 심정보(沈正輔·부산은행), 심윤보(沈允輔·서울은행), 심규동(沈揆東·감정원) 전 지점장이 금용계에서 활동했다.

 심완조(沈完祚) 덕원그룹회장, 심규수(沈揆秀) 한진그룹 이사와 더불어 심화(沈和) 공인회계사, 부산시청에 있는 심규락(沈揆洛) 건축기술사 등도 문중이며, 군에서는 심홍보(沈弘輔), 심덕보(沈德輔) 해군대령이 장군진급을 앞두고 있다. 서찬수기자 sgij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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